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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Jul 26. 2024

내 육아에 초심이 필요해!

#막내생일축하  #사교육시장 첫발 내딛기 #학원상담 이렇게

 분명... 아이가 숨만 잘 쉬어도 감사해야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난 큰애 입시를 치르며 그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버렸다. 아이 스스로 인내하며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운도 많이 작용하는 것 같고, 하여간 힘든 만큼 다 보상받는 시스템은 분명 아니었다. 그 불안을 견디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27주, 1080g 초미숙아로 태어나 이 고생 저 고생 다 겪은 우리 막내만큼은. 


분명 그랬는데...  아이가 예비 중학생이 되면서 처음으로 막내와 함께 영어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래, 오래 참았다!) 

집 근처 영어 학원에서 저학년 친구들과 함께 영어를 배우며 핼러윈 파티까지 즐겼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드디어 학원가의 영어학원을 찾아가 상담받아보았다.   


"우리 아이가... 어려서 많이 아팠거든요, 큰애 입시 하면서 너무 힘든 거 봤던 터라, 

 이 아이는 공부를 안 시키려고 했어요. 그래서 모르는 게 많습니다. "


변명을 하고 싶었던 거 같다. 아무래도 사교육을 일찍 많이 한 아이들과는 실력이 차이가 많이 날 테니까.

그런데 담당자가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 그런 어머니들 많으세요! 큰 애 입시가 아쉽게 끝난 분들은 둘째한테 더 올인하는 경우도 있는데

 큰애 입시로 어느 정도 만족을 하신 경우엔 둘째 공부 안 시킨다고 많이들.. ㅎㅎ"

"아!"


 현재 아이의 실력은 뛰어나진 않지만, 책 읽는 것과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난 솔직히 아이가 학원에서 너무 무시를 당할까 봐 걱정을 했던 거 같다. 

다른 아이들이 당연하게 알고 있는 걸 모를 수 있는데, 너무 놀라지 마시라, 그래도 잠재력은 있는 

아이랍니다! 하고 싶었던 거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초등, 중등의 경우엔 

책을 잘 읽는다는 게 아직은 먹히는 스펙인 거 같다. 고등학교에서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아이를 학원가에 있는 나름 힘든 영어학원에 보낸 이후, 벅찬 숙제와 놀라운 양의 단어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를 보며, 수학은 일단 제쳐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떡하나? 늘 마음엔 꼭 해야 할 숙제를 남겨둔 느낌이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e알리미에 2학기에는 시험을 본다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이 도착했다. 이대로 수학시험을 보면, 아이는 과연 몇 점을 받게 될까? 물론 숨만 쉬어도 감사를 해야 하는데...  왠지 그럴 수가 없어서 동네에서 함께 아이를 키운 육아동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동네 수학학원 어디 갈 데 있어요?" 

그렇게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상가 건물에 위치한 수학학원을 하나 추천받아 상담을 했다. 


"읽고 쓰는 건 그래도 잘하는 편인데, 수학은 힘들어하는 아이예요."

"수학 문제도 다 언어거든요, 잘 읽을 수 있는 아이가 수학문제도 잘 풀 수 있습니다. 내일 시간 어떠세요?" 


역시 아직은 읽고 쓰는 스펙이 먹히고 있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질 뿐이다.


"아무리 잘 읽어도 흥미로운 걸 읽지, 수학문제 읽는 건 별로 잘할 거 같지 않아요, 기대는 하지 마세요." 


그렇게 토요일 오전, 아이를 데리고 학원으로 가 레벨 테스트라는 걸 받았다. 

결과는 예상대로 아주 충격적이었다. 결과를 앞에 두고, 아이와 나, 그리고 학원 선생님이 마주 앉았다.  

그는 고등수학 사교육을 20년 정도하다가, 지금은 초중등 아이들을 개념 중심으로 가르친다고 했다. 

카리스마도 있고, 자신의 교육방식에 대한 자부심도 있어 보였다. 

( 아, 솔직히 나 학원 상담 짬밥 몇 년인가? ) 

내가 그에게 원한 건, 현재 상황은 열악(?)하지만 그래도 잘해나가 보자! 그 정도 얘기 해주면 아이도 대충 끌려가 줄 건 같은데, 이야기가 흘러가는 상황이 뭔가 익숙하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를 혼낼 때, 처음엔 폼도 잡고 멋지게 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어느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고 열이 뻗치며 이성을 살짝 놓는 느낌이랄까?

그 시작은 

" 아니 그러니까, " 

그의 말이 점점 속도를 올린다. 개념만 알면 풀 수 있는 게 수학이고, 영어 단어 외우는 것보다 훨씬 쉬운 건데, 왜 이걸 틀리냐며 아이의 실수와 무지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검지 손가락이 시험지를 톡톡톡  치기 시작한다. 한숨을 쉰다. 많이 답답하신 모양이다. 이미 테스트를 보며 한번 기가 죽은 아이인데, 추가로 또 지적을 당하니 아이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게 느껴졌다. 이번 상담 전략은 잘못됐다. 아이가 책을 잘 읽는다는 얘기는 괜히 했나 보다, 그냥 아이가 아파서 공부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할걸... 솔직히 학원 상담할 때 내 아이가 잘났어요!라고 말하는 건 정말 바보짓 중에 바보짓이다. 난 솔직히 우리 아이가 잘났어요! 라기보다는 너무 바보 취급을 받을까 봐 어느 정도 존중해 주길 바라며 했던 말인데...  그렇다고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아주 중요한 단추가 제대로 끼워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너 책 잘 읽는다며? 요즘 무슨 책 읽어?"


기가 확 죽은 아이가 슬쩍 내 눈치를 본다. 상담 전에는 분명 고객인 내가 갑인 듯 느껴졌는데, 레벨테스트를 받고 나니 을이 된 느낌이다. 최대한 입꼬리를 올리며 아이를 향해 초승달 눈웃음을 보냈다. 


"헤르만 헤세요. 판타지도 좋아해요, 퍼시잭슨 시리즈도 다  읽고, 해리포터..."

"판타지 좋아해? 너 톨킨 알아? 반지의 제왕."

"아 그건 좀 어려워서..."

"야!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원서로 읽어야지!.... 책 좋아한다면서 어쩌고 저쩌고... "


아니, 반지의 제왕 원서로도 못 읽는 주제에 책을 잘 읽는다고 한 거냐?는 듯한 이 뉘앙스는 뭔가? 

짜증과 답답함, 그리고 무시가 깃든 그의 일장 설교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정말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이와 비슷했던 

어떤 순간이 떠올랐다. 큰 애 중3 때 수학 학원 원장을 만나 상담했던 그 순간!

 

(난 그 순간을 [엄마가 빨간 립스틱을 바를 때 https://brunch.co.kr/@zlzllzlz/13]라는 제목의 글로

브런치에 남겨두었다!) 


학원 상담 갈 땐 기죽지 말고, 어깨 펴고 당당하게 빨간 립스틱도 바르고, 최대한 잘 차려입고 가야 한다고 

글까지 써 놓고선, 자리에서 일어나는 내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코스트코에서 산 주름 많은 원피스에 무지개와 파인애플 지비츠가 달린 크록스 신발, 그리고 반짝 형광 에코백, 그날은 너무 더운 날이라 땀도 많이 나고 해서 난 화장도 못했다. 그나마 등근육을 최대한 조이며 허리라도 최대한 쭉 펴보았지만,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놈의 수학이 뭐라고? 그거 좀 못한다고 이렇게 짓밟힐 일인가?  

여름 방학 기간 동안 수학 공부가 필요해서 상담을 받는다고 얘기했는데,  당장 올 필요는 없고, 여름휴가를 즐기고 8월 6일에나 오라고 한다. 개학은 14일. 그냥 오지 말라는 건가? 


 다 그런 아닌데, 가끔은 이렇게 기선제압을 하는 학원 원장을 만나게 된다. 

생각엔 순응적인 학부모라면 학원 원장의 호구가 가능성이 높다. 아이를 채근, 닦달하며 학원 원장의 말만 믿게 된다. 아이도 점점 자신의 기죽은 상태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학원 선생님이 너무 싫다. 물론 이런 강한 스타일의 선생님이 맞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미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이렇게도 하지 않겠지만, 우리 아이는 수학을 못하니 무시와 천대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심지어 엄마를 앞에 앉혀두고도 그렇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붙잡고 있는 자존심마저 뭉개며 학원을 보내야 해? 물론 개념은 잘 가르친다고 했다! 자기한테 개념을 배우면 고등학교 가서 날아다닐 거라 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지만 (배우 윤여정 님이  한 말) 나 진짜... 남편, 부모, 심지어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사는데, 우리 막내 수학 선생님 하나 정도는 내 맘에 들면 안 되는 건가?  


...


나는 여기서 문득 '초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아이를 만난 2011년 7월 26일, 당장 인공호흡기가 없다는 제일병원 조산집중실을 나와 119 응급차를 타고 서울백병원을 향하며 뱃속의 아이, 과연 살 수 있을까? 숨 쉴 수 있을까? 걱정했던 순간... 이후로도 쭉 숨만 잘 쉬면 감사할 거라고 했던 말, 지금은 허공을 떠돌며 누가 했던 말인지도 모르게 돼버린 그 말들... 

그래, 그 말은 확실히 내가 했다!

너무 흥분했나? 흠흠


오늘은 7월 26일, 우리 막내의 생일이다.  

막내가 원한 저녁 메뉴는 엄마가 만든 유린기. 냉장고엔 이미 각종 재료가 준비되어 있다. 

영어학원에서 돌아오는 오후 6시, 적당히 허기진 아이가 현관문을 열면 고소한 기름내가 제일 먼저 

코끝에 도착할 것이다. 아이 입꼬리가 많이 올라가면 좋겠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이고, 함께 후~! 박수를 치고, 극적(?)인 우리의 만남을 감사하며 

이런저런 추억담을 꺼내놓고, 분명 눈물짓게 되겠지...  

아무리 힘들어도 맛에 아이를 키운다. 



사랑해, 우연아! 

판다가 대나무를 먹듯 책을 읽고, 

야생마처럼 거침없이 글을 쓰는 나의 막내딸. (네 나이 때 엄마는 너처럼 못 썼어!)

영원히 사랑할 거야, 넌 나의 소중한 아기, 엄마 행복 한 보따리. 


     




*우연이가 쓴 진로 관련 독후감 한편을 소개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 1]를 읽고    


이 세상에 필요한 건 무엇인가? 과연 실생활에 예술이 필요한가? 이 책은 이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요즘 헤르만 헤세의 책에 빠져있다. 유명한 데미안은 물론이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지와 사랑)를 읽고 그의 책에 빠졌다. 예술과 속세, 사고의 대립과 소년의 성장을 다루는 그의 공통된 주제는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나나, 양상은 다르다.   

 오직 지식만을 탐구하는 자들의 학교인 카스탈리엔. 주인공 요제프는 이 학교의 학생이다. 영재를 추천받아 평생을 수도원처럼 연구하며 살게 하는 카스탈리엔은 속세와 동떨어져 있다. 요제프가 카스탈리엔에서 추천서를 받고 원래 학교를 떠날 때 요제프의 심리묘사는 요동치는 문학의 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음악 명인에게 간택받고 정원에 나와 느끼는 색다름, 평소와 다른 풍경과 세세한 아름다움. 

요제프가 카스탈리엔에 들어가 유리알 유희를 배울 때, 그는 유리알 유희에 심취하게 된다. 명확히 유리알 유희는 이거다!라고 나오지 않았지만, 묘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철사에 유리알을 연결해 무언가를 돌리면 명상과 같은 상태에서 지식의 소우주를 체험하게 되는데(맞는지 모르겠다.) 수학과 음악을, 활자 체계와 서양 미술사를 합쳐 연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의 배경이 미래인데 나중에 발명되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를 품었다. 

 

 헤르만 헤세가 중국에 대해 아시아의 이국적 매력에 빠져있던 시기여서 '명상'을 깊게 다룬다. 

요제프가 학교에서 학생으로서의 연구를 마치고 카스탈리엔의 직무를 맡기 전, 그는 자신의 정신적 스승인 

음악 명인에게 명상을 배운다. 가만히 앉아서 스승의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명상하는 요제프. 

이 책에서는 명상도 하나의 정신적 탐구로 묘사된다. 음악을 느끼고 음악을 머리에서 형상화하며 그는 카스탈리엔의 명상을 느낀다. 그의 재학시절 중 이 책의 주제인 예술과 지식 탐구, 연구의 필요성이 직접적으로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카스탈리엔에 몸 담지는 않고 학창 시절이 끝나면 다시 속세로 돌아가는 청강생인 학생과 카스탈리엔의 대변인 요제프의 토론이다. 그 학생, 데시뇨라는 열정적 웅변가로 카스탈리엔의 필요성과 

돈을 벌지 않으며 연구만 하는 이들에게 회의적인 세상을 대변하는 그의 주장에 요제프는 불안감을 느낀다. 연구, 예술을 하는 삶. 과연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은 요제프가 무의식 중 해왔던 질문이기에 데시뇨라의 말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카스탈리엔에 대한 배반인가? 그들은 토론하며 각자의 주장을 검토하고 근거를 연구한다. 또 한 번의 성장이 일어난 것이다. 요제프는 이것을 각성이라 칭한다.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인지하는 것이다.  이 학창 시절이 끝난 뒤 그는 카스탈리엔과 사이가 우호적이지 않은 마리아펠스 수도원에 외교관으로 임명된다. 그는 그곳에서 저명한 역사학자 신부인 야코푸스신부와 토론한다. 그는 카스탈리엔이 수도회로  불리고는 있으나 진정한 종교를 추구하는 기관은 아니라는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한다 학창 시절 카스탈리엔의 대변인이 되어했던 토론과도 같이 요제프는 다시 대변인이 되어 카스탈리엔을 대변한다. 신부의 마음을 얻고 수도원에서의 임무를 마친 요제프는 대 유희회 전, 갑자기 병에 걸린  유희 명인 때문에 그의 대리인 그림자가 대신 진행하는 것을 지켜본다. 이후 그는 다음 유희 명인으로 지목받는다. 그는 평소와는 달라진 많은 책임이 생긴 이 생활이 썩 좋진 않지만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러나 카스탈리엔에서의 토론에 친구, 데시뇨라와의 재회로 그는 다시 한번 카스탈리엔의 명랑성과 유월감을 되새긴다. ‘카스탈리엔인’의 특유의 우월감을 데시뇨라는 친구와의 재회에서 느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이제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요제프는 친구에 대한 애정으로 그를 천천히 명상과 카스탈리엔의 유리알 유희로 되돌려 놓는다. 그에게 각성과 성장은 나 자신의 처지를 

아는 것, 교만하지 않는 것이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속세에 나가 살고 싶어진 요제프는 이 살얼음판에 놓인 바위와도 같은 카스탈리엔의 구시대성을 비판하며 명인직을 포기하고 데시뇨라의 아들을 가르친다. 

 

 헤르만 헤세가 결국 이 많은 책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하나이다. 

예술과 연구 즉 지성을 탐구하는 일은 속세의 권력이나 지위만큼 가치가 있으며 그것을 존중하라.  

 솔직히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요제프라는 캐릭터가 깊고, 마치 하나의 실존인물 같은 느낌이어서 나에겐 명인이 된 그가 마치 음악명인 같은 스승의 존재로 느껴졌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헤르만 헤세의 다른 작품 '지와 사랑')에서는 사고와 예술을, 이 책에서는 속세와 지성을 다루었다. 요제프와 그 주변인의 심리묘사는 마치 한 인물의 자서전 같이 생생했으며, 특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같이 ‘쾌락’ 추구적 삶이 안 나와서 참 안심되었다. 아직 2권을 다 읽지 못해 모르겠지만 일단 헤르만 헤세 특유의 자라나는 새싹에 대한 찬미와 신적인 존재의 묘사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당신은 예술이 필요하다 생각하는가? 질문하고 싶다. 다른 학생들은 그냥 자신을 우월적 존재로 생각하고, 

카스탈리엔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바깥 세계보다 더 진화한 무언가로 생각한다. 하지만 요제프는 끊임없이 

의심하며, 상기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이다. 1차원적으로 생각하면 1차원에 머물 수밖에 

없다. 생각을 더 확장하고, 비판하고 사고를 발전시킬 때 우리는 비로소 정신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의 정신에 다다르게 된다. 그래서 결국 '신'에 디디라는 것이 예술의 끝이고 유리알 유희의 끝이다. 이 짧은 책을 읽는데 몇 주가 걸렸던 이유에 방대함 또한 포함된다. 데시뇨라의 아들과 요제프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또 하나의 철학적 문제를 가지게 되며, 문장 하나마다 들어있는 무한한 의미와 비유, 

시간이 차고 넘칠 때 다시 읽고 싶다. 완주가 아닌, 속독이 아닌 오로지 독서를 위해서 읽고 싶다. 

우리의 주인공 요제프에 나는 큰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덕질 심리의 애정이라기보다는 경외심과 안도감? 

왼벽 한 유리알 유희 명인으로 칭송받는 요제프의 일대기에서 나는 그의 미숙함과 어리숙함을 엿볼 수 있었다. 제삼자의 입으로 전해 듣는 요제프의 감정과 심리는 객관적인 문체로 진짜 자서전 같다.  

 마지막에 다다르면 아예 내가 요제프가 되어 그의 내적갈등과 카스탈리엔에 대한 책임을 나도 느끼게 되는데, 요제프가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창작자들의 무쓸모에 대한 고민에 나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일반 학교에서 카스탈리엔에 들어간 요제프와 외교관이 된 요제프 그리고 명인이 되어가는 요제프의 일대기를 읽다 보면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요제프가 대견하고, 존경스럽다. 뭐 헤르만 헤세가 요제프에 자신을 대입해 쓴 것 같아서 조금 꺼림칙하지만 거대한 문학과 표현의 바다에선 모래사장의 글씨와 같이 깨끗이 망각된다고 한다! 모든 이가 읽어야 하며, 고전의 재미를 일깨워준 책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과학 발전에 이바지하고 뭐 사람을 고치는 일은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니까 언니 엄마 모두가 국문과인 이 집에서 내가 인문학적으로 자랐으면 자랐지 기계, 과학 이런 거와는 멀기 때문이다. 

이과가 취업하기 쉽다고 말하는 초등학교 과학선생님이 생각난다.. 하지만!(두둥 탁)  유리알 유희를 읽으면 

그런 고민 따위 쓰레기 소각장에 던질 수 있다. 

헤르만 헤세가 전체 책에서 강렬히 말하는 게 “예술은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 예술이다!” 여서.. 

뭐 이 세상에 각광받는 직업 빅데이터 전문가라니 블록체인 전문가라니 역사가 너무 짧지 않은가? 

쳇 gpt가 글을 뚝딱 만들어내는 세상에 아직 작가가 필요한 까닭은 인간이 만든 예술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 

아닐까? 역시 인문학이 최고다. 이 세상에 호모사피엔스가 만들어지고 걔네가 바로 1+1=귀요미 이런 거를 했을 것 같은가? 아니면 자기의 문자 체계를 만들고 동굴벽화를 그렸을 것 같나? 바로 인문학과 예술이 훠얼씬 역사가 길고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과여 졸지 말자! 유리알 유희는 예술의 한 양상이지만 그 속에는 

수학과 건축과 과학의 지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속 잠들어있던 꿈 하나를 깨웠다. 

바로 작가이다. 비록 내가 지금은 다른 꿈을 꾼다 해도 역시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글을 못써서 포기했지만 어쩌면 나에게도 작가의 역량이 있지는 않을까? 아직은 어리니까 다양한 꿈을 꾸며 살아야겠다. 

그중에 작가도 있을 것이고 화가 어쩌면 만화가 또 극작가도 있을 것이다.    




"우연아, 엄마의 생일 선물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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