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라는 클라이언트, 딸이라는 스트레스, 딸이라는 숙제
냉장고를 열다가 깜짝 놀랐다.
"아! 보리굴비 있는 걸 깜박했네... "
식탁에 앉아 늦은 아침을 먹던 큰 딸이 묻는다.
"웬 보리굴비?"
"그런 게 있어." 나도 모르게 훗 웃음이 터졌다.
"뭔데? 왜 웃는 건데??"
내가 답을 안 하자 딸이 안달을 한다. 흥! 죽을 때까지 말 안 해주고 싶다.
지난 추석 명절, 시댁에 다녀왔다. 시댁은 큰집이라 명절 당일 아침에는 작은 집 식구들이 우르르 방문한다. 남편은 외아들이라 우리 가족은 시부모님, 그리고 그 수가 어마어마한 작은 집 식구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아침밥을 먹는다. 축제는 그 끼니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저녁까지 시댁에 남아 친정을 방문한 시누이 가족들과 저녁을 먹는다. 거의 모든 설거지는 며느리인 내 몫이다. 새댁 시절엔 억울해 죽을 뻔했다. 하지만 평소 며느리를 불러 뭘 시키시는 일도, 잔소리를 하시는 일도 거의 없기에 이제 난 명절 당일 어머님이 원하시는 걸 맞춰드리려고 한다. 하지만 온 가족이 먹은 그릇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할 때면 속이 상할 때도 있다. 그리고... 시누이와 시어머니의 단란한 모습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생긴다. 어떤 날엔 질투도 난다. 난 엄마가 없으니까. 시누이는 둘이고, 엄마를 정말 끔찍이 생각한다. 시아버지는 어마어마하게 가부장적인 분이라 그녀의 결혼 생활은 그리 무지갯빛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고생한 우리 엄마는 내가 지킨다! 하는 마음일지도. 명랑한 두 딸이 어머님의 인생을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어머님을 떠올리면 조용하고 깊은 아주 오래된 우물이 생각난다. 돌을 던져도 누가 풍덩 빠져도 조용히 다 받아냈을 거 같은 느낌. 엄마들 모임에서 시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면 난 늘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어머니는... 깊은 우물 같은 분이라 속을 알 수 없고, 하나뿐인 며느리인 나에게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분. 딸이 둘이나 있으니 딸 같은 며느리는 필요 없다고 하시는 거 같아 가끔 섭섭하다고. 당연한 말이지만, 며느리보다는 딸의 위상이 높고, 손주도 친손주보다 외손주를 더 귀여워하신다. 이 '느낌적인 느낌'은 명절 상차림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작은집과 우리 집이 함께 하는 아침상은 전형적인 명절 음식으로 기본만 하겠다는 어머님의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딸과 사위 외손주들이 함께 하는 저녁상은 다르다. 숨겨둔 메인 메뉴가 드디어 등장한다. 꽃게탕, 매운탕 뭐 그런 것들. 아침 일찍 도착해 준비한 갈비와 전을 꺼내 냉장고에 넣으려고 보니 어머님이 준비한 특별한 음식이 뭔지 알 거 같다. 매운탕과 보리굴비. 보리굴비의 요란한 비린내가 벌써 주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시누이가 없으니 집이 고요하다. 나 혼자 어머님이라는 우물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며 사투를 벌인다. 최근에 결혼식에서 만난 아버님의 누님 가족에 대한 인상을 나누고 누님과 아버님 사이에 동화, 아니 설화 같은 추억 이야기를 또 듣는다. 열 살 열두 살 때 이야기라고 하시며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흐트러짐이 없다. 25년 전 시집와서 처음 들었을 때와 똑같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며느리에게 아주 여러 번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은 잊고... 싶으신 걸까? 이젠 나도 모르게 아버님의 이야기에 추임새도 넣는다.
"그때 그 고모부님이 엄청 키가 크고 잘생기셨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랬지! 그래서 쓸데없는 짓도 많이 했지."
"하하하 어쨌든 그래서 그런 지 고모님 가족분들이 인물이 다 좋으시더라고요."
과거 추억담과 현재의 에피소드를 연결해 드리자 아버님 얼굴에 웃음이 만개한다. 오래전 토크쇼 대본, 스튜디오 대본 썼던 가락을 이렇게 써먹는다. 난 자부심을 느꼈다! 드디어 오후가 되고 딸 가족들이 속속 도착해 서로 인사를 나눈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벌써 상을 차린다. 두 딸이 도착하자 소리 데시벨이 급격히 올라간다. 어머님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상기된 표정이다. 드디어 어머님의 진짜 실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두 딸이 어머님의 양쪽 귀 옆에서 종달새가 되어 지저귄다. 어머님은 여전히 깊은 우물처럼 반응이 없다. 그래도 딸들은 지치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 모습이 마냥 행복해 보이기만 했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나 혼자 피식 웃음이 났다. 지난 어버이날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 나눈 대화다.
"어머님이랑 저랑 공통점이 있어요."
"??"
"공통점이요, 저도 어머님도... 딸이 둘이에요."
"그렇지..."
"딸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잖아요."
"... 그렇지 뭐"
딸은 '양날의 검'이다. 좋을 땐 엄청 좋지만, 감당하기 힘들 때도 있다. 물론 좋기만 한 게 세상 어디 있나? 하지만 어린 시절의 딸과 성인이 된 딸은 차원이 다른 존재라 그 차이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내 또래 성인이 된 딸 하나 정도 갖고 있는 엄마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어려서는 말 잘 듣고 그렇게 예뻤는데 요즘은 아주 시어머니야! 시어머니!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이건 버려라 저건 놔둬라. 물론 딸이 없고 아들만 있는 엄마들은 그 또한 부러워하는 거 같기도 하다. 명절 저녁, 드디어 친청에 온 두 딸과 함께 있는 어머님의 모습은 당연히 행복해 보인다. 난 그 모습을 찬찬히 관찰한다. 가만히 보니 어머님께는 나한테 없는 아주 중요한 능력이 있다. 두 딸 그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놀라운 평형감각과 묘한 도도함. 한 마디로 자식 비위를 맞추려는 노력이 없다. 감정을 읽어주는 요즘 육아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데 어쩌면 저게 정답일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물론 그 때문에 어머님의 아들인 내 남편의 공감능력이 부족한가 싶어 속상하기도 하고. 드디어 어머님이 준비하신 딸을 위한 야심 메뉴 보리굴비와 매운탕이 접시에 담겼다.
"엄마! 보리굴비는 상에 놓지 마! 비린내 나고 별로야. 갈비 맛있겠네 갈비."
큰 딸의 매서운 지적에 어머님은 당황하신 거 같았다. 큰 딸의 손을 거쳐 며느리의 손에 의해 상에 놓여야 하는데 멈춘 것이다. 어머님은 이러지도 못하시고 저러지도 못하시고 주방 끝에 선 나를 바라보신다. 난 웃음이 났다. 어머님 마음을 너무너무 알 거 같다!
"어머님, 딸 말은 들어야 해요. 흐흐흐"
결국 보리굴비는 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날 상에 오르지 못한 보리굴비 두 마리가 우리 집 냉장고에 있다. 큰 딸이 또 묻는다. 무슨 보리굴비냐고, 왜 웃냐고.
"이 보리굴비는 대단한 보리굴비야. 할머니와 엄마를 처음으로 연결해 준 공감의 아이콘이랄까?"
오래전... 우리 엄마 최고, 우리 엄마 예뻐, 남편이랑 싸우고 울고 있을 땐 날 꼭 안아주며 엄마 사랑해하며 그 작은 손으로 내 등을 쓰다듬던 작은 아이가 이제 다 컸다고 엄마한테 잔소리를 한다. 라이프 코치를 자처한다. 가끔 눈치가 보이고 기분이 상한다. 그래 너 잘났다!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좋은 점도 있긴 하다. 오래된 책과 물건을 당근에 팔아 없애고, 방의 구조를 바꿔서 효율도 높여준다. 작업실에 있던 책상 두 개 중 하나를 막내의 방으로 옮기니 작업실이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날도 추워지고 써야 할 것도 많은데, 괜히 노트북 들고 이 카페 저 카페 돌아다니며 옆 테이블의 덜덜 떠는 발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거보다는 한동안 이 방에서 지지고 볶고 해야겠다. 이 정도면 모시고 살만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