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 갈등
드라마의 힘은 무섭다. 결혼하면 무조건 시집살이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가까이 엄마를 봐도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엄마를 비롯한 다른 며느리들을 많이 힘들게 했는지 돌아가신 이후에도 좋은 소리를 못 들으셨다.
이렇게 여기 저기서 보고 들은 시집살이에 대한 공포는 내 결혼에도 영향을 미쳤다. 결혼 이후 시댁을 가면 왠지 조심스러웠다. 다른 곳에서 만난 어른이었다면 더 싹싹하고 편하게 대했을 텐데 오히려 거리를 두고 있었다. 혹시나 말 실수하면 책이 잡힐까 두려웠고, 적군에 인질로 잡혀온 사람 마냥 편하지 않았다. 집안 살림, 요리 뭐 하나도 잘하는 것이 없기에 혼날까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시어머니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임신 중이라서, 또 몇 년간은 어린 딸을 보라고, 이제는 아이도 좀 커서 시킬 법도 한데 전혀 안 시키셨다. 너무 안 시키니 오히려 미안해서 나서 보기도 했다. 요리는 잘 못해도 설거지는 잘 할 수 있으니 하겠다고 해도 애써 막는다. 아직까지는 내가 할 수 있으니 편히 쉬라고 한다.
“친정에 온 것처럼 편하게 쉬어!”
그러다 보니 며느리들이 느낀다는 명절 증후군도 없었다. 명절에 가면 시아버지와 아웅다웅 하시면서 전과 튀김을 부치고 계셨다. 나도 거들 수 있는데 죄송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 명절이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남편이야 내가 만나서 결혼까지 결심한 거지만 다른 가족은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냥 식구가 되었다. 서로 어색하고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크고 작은 일이 있었고 가족 간의 갈등도 있었다. 시어머니에게 섭섭한 일도 없지 않았다. 한 번은 용기내서 내가 섭섭한 것을 말씀드렸다. 감히 시어머니에게 이런 걸 말씀드려도 되나 많이 망설였지만 다행히 다 받아 주셨다. 이후에도 뭔가 아니다 싶은 건 솔직하게 말씀드렸는데 대화가 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시어머니가 본인은 어른이고, 시어머니라고 귀를 닫으셨다면 절대로 관계의 진전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얘기를 들어주셨고 있는 그대로의 며느리를 예뻐해주셨다.
언젠가 남편이 농담처럼 얘기했다. 내가 집안 일을 잘 못 하니까 시댁에서도 안 시킨다고 말이다. 하지만 난 너무 태연스럽게 대꾸했다.
“그게 아니라 내가 귀해서 그런거야.. 귀한 며느리니까 안 시키는거라고.”
남편은 너무 기가 찼는지 웃고 말았다. 이후 시댁에도 이 얘기가 전해졌고, 시댁에서도 귀한 며느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며느리로서 내 자존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며느리가 이렇게 느낀다는 게 시댁 어르신 두 분도 기분이 좋으신 듯했다.
아들 낳아서 아무 소용없다고, 남편은 친부모님께는 오히려 무심하다. 딸만큼은 아니겠지만 귀한 며느리인 내가 좀 더 살뜰하게 챙겨드려야겠다. 이번 주말에는 시부모님 모시고 맛집 나들이나 가야지!
“항상 딸처럼 귀하게 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