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부하는 워킹맘 Sep 08. 2021

엄마와의 팔짱

"엄마 1시 50분에 와, 꼭 와.. 1시 50분이야."


항상 내 팔짱을 꽉 끼고 등교를 하는 딸 아이는 반복해서 하교 시간을 이야기한다. 이미 잘 알고 있는데 구태여 여러 번 반복하며 강조한다. 엄마가 그렇게 못 미더웠을까? 


나는 늦깎이 육아휴직을 낸 엄마이다. 초등학교 3학년 딸 아이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길고 알찬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휴직을 냈다. 그동안 우선 순위에서 밀렸던 아이 챙기기를 올해 1년은 앞자리에 두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등하교길 함께하기’라는 생각지도 못한 숙제가 있을 줄 몰랐다. 학기 초 한 번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등하교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인데 매일 아침 등교, 오후 하교, 학원 등하원까지… 항상 함께 하기를 원한다. 


작년에도 아이 하교길에 마중 나간 적은 있다. 휴가 중에 아이가 부탁해서 한 것인데, 1년 통틀어서 두 세번 정도였다. 엄마가 늘 함께 하는 아이들도 있으니 부러울 만하다 싶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엄마와의 등하교를 원하는지 몰랐다. 농담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데려다 주겠다고 하면 그건 싫다고 한다. 유치원 때 친구 하나가 할머니 머리가 희다고 놀렸다고, 그렇게 좋아하는 할머니도 등하교길에는 기피한다. 오직 엄마다. 


한 두 번은 할 만했는데 계속 하니 솔직히 귀찮고 번거롭다는 마음이 더 컸다. 아무리 육아휴직이긴 해도 내가 할 일도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있는데 무언가 하다 보면 또 마중 나갈 시간이다. 그래서 혼자 가면 안 되겠냐고 짜증 아닌 짜증을 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냥 엄마가 같이 있는 게 너무 좋단다. 그녀의 마음을 알 거 같다가도 또 귀찮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 그런 매일 매일이다.

 

한 번은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아이 친구 엄마와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을 일이 있었다. 아들이 OO엄마는 매일 등하교를 함께 해 준다며 부러워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언니도 작년 코로나가 한참일 때 육아휴직을 썼는데, 이제 복귀하고 나니 아이가 아쉬워하나 보다. 괜히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나 또한 영원히 육아휴직을 쓸 건 아니고 내년이면 돌아갈텐데, 복직 후에 아이는 또 어떤 느낌을 받을까?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교길에 보이면 같이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어야겠다 싶었다. 마침 다음 날 하교길에 같이 나오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딸 아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주니 쑥쓰러움 많은그 아이는 그걸 들고는 또 도망치듯 가버린다. 같이 먹고 가도 되는데… 한편으로는 괜한 행동을 했나 싶었다. 누구 엄마는 하교길에 아이스크림도 사 주더라면서 괜히 더 부러워하면 어떻게 하지? 


요즘 아이를 보면 예전보다 더 밝고 안정적으로 보인다. 나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엄마의 존재라는 게 크구나. 그냥 엄마와 같이 있는 게 너무 좋다는 아이는 삐쳤을 때 외에는 나에게 퇴사를 물어본다. 


“엄마, 회사 영영 안 다니면 안 되?”


회사에 복직한 후에 상실감이 더 큰 건 아닌지 괜한 걱정이 든다. 하지만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이 순간에 충실해야지. 어제는 문득 내 팔짱을 꼭 끼고 걷는 딸의 모습을 보니 흡사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짐이 아쉬워 집에 가는 길까지 동행하는 남자친구와 여자친구 말이다. 그럼 난 딸의 남자친구인가? 엄마를 항상 그리워하는 아이는 어제도 내 팔짱을 끼고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왜 부의 인문학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