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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워킹맘 Nov 25. 2021

국제시장의 추억

위인전 세트 

딸이 학교 숙제가 있다며 다급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다음주 수요일까지 슈바이처 책을 읽고 갖고 가야해. 책 좀 사줘.“


슈바이처에 대해서 배울 예정인 걸까? 꼭 그림이 많이 들어간 그림책으로 사달라고 부탁을 했다. 글밥 많은 책이 아직 부담스러운지 그림책을 선호한다. 뭐가 됐든 책을 읽겠다는데 그 종류가 문제이랴? 요즘은 인터넷 문고에서도 미리 보기도 가능하니 아이는 몇 분 만에 책을 골랐다. 


‘어떤 기준으로 골랐을까? 그림이 가장 많았나?’


아이가 고른 책을 주문하다 보니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부산에 살았던 우리 가족은 가끔 국제시장을 가곤 했다. 부모님이 계모임을 하셨는데 다른 분들이 모두 그 쪽에서 사셨기 때문에 자연스레 모임은 거기서 이뤄졌다. 어린 시절 나도 부모님을 따라 국제 시장을 갈 기회가 많았다.


한 번은 아빠가 국제 시장의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중고 책을 사 주셨다. 30권 가량의 위인전 세트였는데, 갑자기 왜 사주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운명적으로 만났던 그 책들은 독서라는 심해에 나를 빠뜨렸다. 아직도 기억 나는 장면은 내가 방 구석에 앉아 이 책을 읽던 모습이다. 중고라서 그런지, 그 당시 책들이 다 그런 건지 종이 질이 누렇고 좋지 않았다. 요즘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외국원서 페이퍼북 같았다. 하지만 외양은 중요하지 않았다. 위인전 속 위인들은 내 시선을 끌었고, 특히 김유신 장군, 이순신 장군을 좋아했다. 한동안 존경하는 인물에 김유신 장군을 얘기하고는 했다. 보통 위인전을 좋아하지 않을 텐데, 어린 시절 나는 위인전 속 영웅들에 매료되었다. 특히 이 위인전 덕에 책의 재미를 알았고, 아직도 책에 묻혀서 살고 있다. 딸도 이제 위인전을 접하게 되는 것인가? 어릴 적 위인전에 빠져든 나이가 지금 딸의 나이와 같다. 그동안 일부러 위인전은 안 사줬는데, 이제 그 재미를 알아갈까 싶다. 


아이가 책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았으면 해서 어릴 때부터 책을 참 많이 읽어주었다. 어린 딸을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면 좋아하고 잘 들었다. 이후 학교에 입학하고, 한글을 완벽하게 뗀 후에는 스스로 읽기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내 공은 어디 가고 딸은 책을 즐겨 읽지 않았다. 학교에 학원 일정으로 바쁘기도 하지만, 책이 TV만큼 재미있지 않기 때문이리라. TV는 어떻게든 짬을 내서 보지만, 책은 스스로 찾아 읽지 않는다. 도서관을 가도 학습 만화만 읽으려는 딸을 보면 머리 속이 복잡하다. 


‘학습만화는 독서가 아니라는데.’


학습만화 읽는 건 마치 유튜브를 보는 것과 같다는 어느 유명 강사의 이야기가 있었다. 안 읽는것보다는 낫겠지만, 일반적인 책을 읽을 때 개발할 수 있는 문해력 같은 건 키울 수 없다는 이유였다. 크게 공감하였고, 책을 읽혀야 할 이유로 충분했다. 책 읽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는 고상한 바램 이면에는 책을 읽고 문해력이 높아져서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던 것이다. 


‘자녀 교육은 모두 공부로 귀결되는건가?’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면서 결국은 공부와 책을 연결시켜서 생각하고 있었다. 


‘책이 재미있으면 말려도 읽을 아이인데.’


나에게 책은 언제 어디서든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이다. 외동딸인 그녀에게도 책이라는 든든한 친구가 있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알까? 인생 책을 만나고, 그 책을 항상 곁에 두고,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좀 더 풍성하지 않을까? 어느 부모나 그렇듯이 앞으로 그녀가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지혜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슈바이처라는 위인전 한 권을 구입하면서 그 책이 그녀의 삶을 뒤흔들 수 있는 책이기를 바라는 나의 원대한 희망에 웃음이 나왔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Das beste sollte das liebste sein. 
(가장 선한 것은 무릇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언젠가 딸도 인생책을 만나고, 가장 자연스럽고 선하게 책을 사랑하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좋아하고 빠져드는 책을 만난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을 것이고, 그 이후는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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