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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워킹맘 Mar 05. 2022

딸의 소원

애완견 입양


“엄마, 우리도 강아지 키우면 안 돼?"     


딸은 갑자기 날 잡아끌더니 귓속말로 물어본다. 집 근처 마트에 갔다가 딸아이 친구와 마주쳤다. 그 친구는 못 보던 까만 강아지를 데리고 있었다.      


‘아, 강아지 입양했나 보네.’     


딸의 눈길은 강아지를 졸졸 따라갔다.      


‘오늘도 강아지 타령하겠구나.’     


딸아이 소원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다. 어지간한 소원, 바람은 다 이루도록 도와줬지만 강아지 키우기는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늘 마음 한 켠에 고민이다. 이런 걸 고민이라고 하면 별 게 다 고민이라고 웃을 거 같다.  


처음에는 아파트 생활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 눈에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옆 집에서 래브라토 리트리버라는 대형견을 키웠는데, 강아지도 답답해 보이고, 날리는 털이 복도에 쌓여 불편해하는 이웃들을 보니 민폐다 싶었다. 아이 하나 키우는 만큼 노력과 돈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친정 부모님이다. 맞벌이로 육아 때문에 친정 부모님 댁에서 살고 있는데 부모님은 강아지 키우는 것에 반대한다. 위생적인 이유와 더불어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은 엄마의 건강을 생각하니 더 이상 이야기할 거리가 되지 않았다. 마지막 이유는 책임감이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갖고 싶다 하고는 막상 사주면 고작 일주일이다. 강아지에 대한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을까? 처음에만 좋아하고 일주일 후 그 관심은 사라지고 책임은 고스란히 어른에게 돌아갈까 걱정이다.


하지만 주변에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너무 좋고 귀엽다고 한다. 딸은 또 어떠한가? 책을 사도 강아지 책을 사고, 지나가는 강아지 종류를 척척 맞추며, 강아지 앞에서 한없이 밝아지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흔들리기도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사주고 싶은 마음에 남편을 떠보았는데 처음에 남편은 질색이었다. 깔끔한 성격이라 집 안에 털이 날리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남편도 강아지 맛을 봤다. 아이의 강한 요청에 애견 카페에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착 안기는 강아지들을 경험하더니 작은 강아지는 귀엽다며 못내 인정했다.


강아지를 키우면 좋은 점에 대해서도 따져 본다. 첫째, 외동딸은 외롭다. 모든 외동이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딸아이는 혼자 노는 걸 심심해한다. 외로운 아이에게 강아지라는 친구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 애완동물은 아이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된다. 같이 커가는 남매가 없으니 사람 사이에서 공감하고 배우는 게 부족하다. 동물은 또 하나의 가족이니까 키우면 분명 정서에 좋을 것이다. 셋째 이유는? 강아지를 키우면 어른들이 더 좋아한다는데 그걸 세 번째 이유로 삼을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잊고 있었던 어릴 때 기억이 났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날이었다. 아빠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왔다. 이제 막 태어난 까뭇까뭇한 그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종류도 모르고 키웠는데 이제 와서 보니 포메라니안이었다. 우리 가족은 강아지 이름을 ‘다롱이’로 지었고, 다롱이는 우리집에 터를 잡았다. 주택에 세 들어 살던 시절이었는데, 1층 우리집 옆에는 다롱이 집으로 내줄 만한 공간이 있었다. 다롱이는 초등학교 시절을 꽉 채워준 녀석이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저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짖으며 반기던 아이였다. 데리고 산책을 시키며 뛰어다닐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이후 중1 입학할 때쯤 우리 가족은 빌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빠가 첫 집을 장만했기 때문이다. 새집에다 내 방이 생긴다는 사실만으로 신이 나고 행복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 알고 다른 건 몰랐다. 다롱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지금은 아파트, 빌라 그 어디에서도 애완견을 기르지만, 당시에는 당연히 빌라에 이사 가니 강아지는 더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5년간 키운 다롱이를 시골 할아버지댁에 맡기자고 하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이별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다롱이를 시골로 데려다 주던 날, 울음이 끊이지 않았다. 살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하루였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몇 일간의 시름 끝에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롱이 이야기만 하면 울음을 터트리니 더 이상 다롱이 이야기를 하지 않은 부모님의 영향도 있으리라. 몇 년이 흐른 후 어느 날 다롱이 소식을 들었다. 목줄이 풀려서 어디로 도망간 이후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애써 덤덤한 척 행동했지만 마음 속은 헛헛했다. 지금도 다롱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애잔하다. 강아지를 키우면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이별해야 한다는 건 결정을 망설이게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으랴? 다롱이를 키우면서 내가 받은 사랑, 그 경험은 그 무엇으로도 사지 못한다. 아...그러니 딸에게 더욱 더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냥 질러?’     


당시 아빠처럼 엄마와 아무 상의 없이 그냥 한 마리 입양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일까? 이렇게 마음 속으로 백가지, 만가지 생각을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잊을 만하면 강아지 이야기를 꺼낸다. 이 글은 딸 아이 못 보게 잘 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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