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며칠 동안 엄마 얼굴이 어둡다. 사실 무슨 일인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부산에 살고 계신 큰 아버지가 작은 질환 때문에 수술을 받으러 서울에 오셨기 때문이다.
“집에 와이프가 없는 것도 아니고, 부산에 좋은 병원 천지인데 왜 일산까지 오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오지랖은 진짜..”
그동안 수술이 무서워서 안 하고 계셨는데 아빠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서울까지 오시게 하셨다고 한다. 불현듯 한 달도 채 안 된 외삼촌 수술이 떠올랐다.
외삼촌은 최근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으셨다. 엄마는 본인 수술인 것처럼 힘들어하셨다. 안절부절 못하시는 게 보였다. 아마도 엄마 또한 큰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더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러시리라. 경상도 사람들이라 그런지 서로 감정 표현도 서툴고, 긴 대화도 나누지 않던 사이다. 하지만 암 진단 소식을 듣고 그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셨다. 그때 아빠도 엄마만큼 걱정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으셨나 보다. 3자인 내가 보기엔 아빠도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평소 외가보다 친가 일에 더 적극적인 모습이 못내 얄미운 가보다. 엄마가 하셨던 말이 기억이 난다.
“네 아빠가 뭐랬냐면 뭐 큰 일이라고 그렇게 걱정하냐고 한다.”
이러니 큰아버지 일로 며칠째 쫓아다니는 아빠가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외삼촌 대장암 수술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으니까. 엄마는 종종 이렇게 아빠 뒷담화를 하곤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 기분도 좋지 않아서 잘 안 받아준 적도 많다. 그 정도면 이혼하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던 나였다.
같은 가족끼리 뒷담화 할 수밖에 없을까? 뒷담화는 약자가 취하는 자기 방어의 일환이다. 다른 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내 경우를 봐도 상사 때문에 화가 나고 속상할 경우 뒤에서 입에 담았다. 앞에서 문제를 들춰내서 말할 자신은 없으니 뒤에 숨어서 마음 맞는 편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내 안의 분노를 표출하지 않으면 화병에 걸린다. 엄마가 나에게 하는 뒷담화는 화가 차서 머리 끝까지 올라왔을 때 하는 행동이다. 절대 가족 외 사람에게는 가족 뒷담화를 하지 않으신다. 내 가족을 남에게 욕보이고 싶지는 않으니 나를 붙잡고 하는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가끔은 부부 사이에서도 대화로 풀지 못한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그냥 덮어놓고 참기만 한다고 바뀌는 건 없는데 말이다.
나에게 한 뒷담화를 부부끼리 하면 그건 대화다. 간혹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부부간에는 마음속 응어리를 대화로 풀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대화의 물꼬를 트기 어려운 건 자기 생각이 너무 뚜렷한 아빠의 성격 때문일까? 아니면 말을 꺼내도 소용없다는 걸 긴 세월 동안 체화했기에 소심한 항변을 나에게 하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상사 앞에서 불만을 터놓지 못하던 내 모습도 오버랩된다. 엄마의 뒷담화를 들으면 회사 내 상사와 부하 같은 생각이 들어서 듣기 싫은 가보다. 뒷담화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제 맛인데, 잘 들어주지 않는 나를 붙잡고 하니 뒷담화 하면서도 스트레스도 잘 풀리지 않았을 거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제가 들어줘서 엄마의 화가 풀린다면 얼마든지 하세요!”
남의 뒷담화는 되도록 하지 않아야 하지만 엄마 뒷담화 정도는 웃으면서 받아 줄 수 있도록 내 마음의 곳간을 넓혀야 하겠다.
보도섀퍼의 돈에 나오는 구절이다.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이 당신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대해선 항상 책임이 있다. (중략) 책임은 영어로 responsibility이다. 이 단어에는 ‘대답(response)’과 ‘노련한 능력(ability)’이란 의미가 들어 있어 있다. 책임이란 ‘노련하게 대답하는 능력’이다.”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상황을 해석하고 대응할 능력은 갖춰야 한다. 남의 뒤에서 소심하게 뒷담화를 하지 않으려면 그 문제를 앞에서 해결하든지,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는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내 시각을 바꾸던지 해야 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둘 다 필요하고, 앞으로 키워야 할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