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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채식인 Feb 07. 2021

맛없는 대화

"관계: 뒷담화" 시리즈 01편

평일 오후 사무실에서 직원 A 씨가 도넛을 팀원들에게 나눠줬다. 최근에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곳인데 인기가 너무 좋단다. 오후 3시가 넘으면 도넛을 살 수가 없다고 했다. 겉모양은 여느 도넛과 다를 것 없었다.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속에서 슈크림 같은 것이 나왔다. 이게 인기의 비결인가? 겉도 달고, 속도 단 도넛이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듯했다. 팀원들이 맛있다고 했다. 그런데 내 입맛에는 별로다. 이렇게 단 음식은 먹을 때는 잠시 즐거울지 몰라도 먹고 나면 꼭 탈이 난다. 소화가 잘 안된다. 그리고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맛있는 음식은 뒤 끝이 깔끔해야 한다. 충분히 먹어도 더부룩함도 없고 입 안도 깔끔한 음식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 도넛은 맛없는 음식이다.


5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회사 동료 3명이 모여서 저녁 술자리를 가졌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회사 이야기, 남 이야기가 전부 아닐까? 1차에서 회사에 대한 불만을 얼추 털어내고 자리를 옮겼다. 2차에서 한 명이 직장동료 B 씨 이야기를 꺼냈다. "걔는 왜 일을 그렇게 하냐? 단순한 일을 똑같이 수 년을 하는데 아직도 틀려. 나는 힘들게 일하는데 아직 비정규직이고, 걔는 정규직 낙하산으로 들어와서 대체하는 게 뭐야!." 당시 B 씨에 대해 비슷한 불만을 갖고 있던 나도 그의 말을 열심히 거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사무실 복도에서 B 씨와 마주쳤다. 평소 같으면 인사 정도는 했는데 나를 보더니 고개를 획 돌리면서 그냥 지나쳤다. "뭐야..." 첨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몇 주가 지나서 한 달이 넘게 그런 식으로 나를 피하는 B 씨가 이상했다. 당시 술자리를 같이 했던 동료에게 이야기했더니 B 씨가 본인한테도 그렇게 대한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동료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대박이야!! B 씨 있잖아. 그때 우리가 한 이야기 다 알고 있데!."

"어? 미쳤다. 어떻게?"

"그 어제같이 저녁 먹었던 여직원 있잖아. 걔가 B 씨를 짝사랑하는데, 그날 우리 이야기를 집에 가는 길에 B씨한테 연락해서 다 일렀다는 거야!"

"뭐라고? 넌 그거 어떻게 알았어?"

"그 여직원이 나한테 알려주던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특히 여직원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됐다. 평소 좋아하던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으니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 그래서 B 씨에게 일렀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다시 우리한테 이야기해준 건 뭐지. 그날 이후로는 복도에서 B 씨를 만날 때마다 내 얼굴을 화끈거렸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그 여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B 씨에게 사과를 하고 싶으니 저녁 식사를 같이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다행히 좋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B 씨와 여직원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함께 식사를 했다. 직장 동료 한 명은 아직 불편하다며 그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B 씨에게 그날의 일을 사과했다. B 씨도 나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날 저녁 B 씨도 자신의 이야기를 참 많이 털어놓았다. 수년 동안 계속 같은 일만 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 그리고 매너리즘. 그도 여느 누구와도 다를 바 없는 샐러리맨이었다. 나도 그도 다를 게 없었다. 그날 이후 B 씨와 복도에서 만나면 다시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 비밀 이야기하든 이뤄지는 뒷담화는 할 때는 재미있다. 그런데 뒤가 구리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도 했는데, 십 리도 못 가서 돌아와 내 발 등을 찍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뒷담화는 내겐 맛없는 대화다. 그렇다고 뒷담화를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인연을 맺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안에서 사람 간 불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먼저 시작하지 않고 오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동료들이 불만에 맞장구는 잘 쳐준다. "맞아, 그러면 네가 정말 힘들지.", "그럴 수 있겠다.", "그러게, 왜 그러나 몰라." 이런 식의 맞장구용 카드를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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