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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롬 Nov 17. 2023

기다림 펜으로 적은 사인

<터미널>(2004)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페르소나 배우 톰 행크스와 함께한 작품들 중 하나인 <터미널>이다. 거장의 면목답게 스필버그식 영화라는 사인이 느껴진다. 영화의 모티프를 제공했고, 실제 공항에 18년 동안 생활했었던 故카리미 나세리를 위해 늦은 명복을 빌어 본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생존

뉴욕시 최대의 국제공항이자 미국 최대 공항 중 하나인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는 입국 심사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그의 조국인 크라코지아에서 쿠데타로 인한 내전이 발발해 크라코지아 국민의 모든 여권이 다 정지되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무국적자가 돼버린 그는 국제공항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공항 생활 모습은 마치 <트루먼 쇼> (1998) 속 ‘트루먼’을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공항 관계자들의 웃음거리로 소화된다. 빅터가 처한 ‘공항’이라는 환경은 <캐스트 어웨이> (2001) 속 무인도처럼 생존이 걸린 환경이다. 빅터는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모국어가 적힌 안내 책자와 비교하며 영어단어를 습득하고, 흘러가는 뉴스 자막을 읽어가며 해석한다. 공항 짐 카트를 정리하며 얼마 안 되는 돈으로 햄버거를 사 먹고, 일자리를 구하며 나은 생활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공항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기 바빴지만, 점차 그가 보이는 성실성과 진실한 태도에 매료된다. 빅터의 순수한 줏대에 절대적 선함은 모두가 그의 공항 생존을 응원하게 만들어 준다.


IMDB

관료제 역기능

공항은 빅터(톰 행크스)가 살아가는 낯선 생존지이자 거시적으로 바라본다면, 하나의 관료제 사회를 비춘다. 공항 내부 속 다양한 업무의 분업화 모습과 관세와 입‧출국 심사에서 이루어지는 문서주의 형태는 기본적인 관료제 형태를 보인다. 무국적자 신세가 된 빅터는 이러한 공항 속 관료제 형태에 어울릴 수 없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다. 여권과 비자가 정지됨으로써 문서의 효력을 잃고, 신분을 잃으니, 업무에 가담할 수도 없다. 공항의 책임자인 프랭크(스탠리 투치)는 관료제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의 능률은 매우 정형하고, 형식적이다. 러시아에서 병에 걸린 아버지를 위한 약이 공항에서 낼 수 없는 처지로 문제가 발생한 상황에 빅터와 프랭크는 대비되는 태도를 보인다. 프랭크는 반입할 수 없는 약이므로 러시아인을 다음 비행기로 서둘러 쫓으려 하지만, 빅터는 염소 약이라고 거짓으로 통역하며 약을 통과하게 도와준다. 동물을 위한 약은 허용할 수 있다는 조항을 이용한 빅터의 대책은 프랭크가 추구하는 문서주의를 역이용한 셈이자 프랭크를 한 방 먹인 셈이다. 빅터의 모습을 통해 <터미널>은 관료제 사회의 역기능을 풍자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공항 관계자들은 빅터를 ‘염소 사나이’라고 불리며 인정받는다. 사람들도 역시 알고 있다. 빅터라는 개인이 공항이라는 관료제 사회 속 역기능을 이긴 결과라는 것을 말이다.


IMDB

낭만

스필버그식 낭만과 희망이 묻어 나온다. 공항에서 만난 승무원 에밀리아 워런(캐서린 제타존스)과의 만남과 만날 때마다 나누는 나폴레옹과 조제핀 이야기는 둘 사이를 이어준 계기이자 관계를 은유한 내용으로 작용한다. 에밀리아를 위한 빅터의 순애보는 순수한 낭만을 보인다. 그리고, 빅터가 에밀리아에게 뉴욕에 온 이유를 처음 설명한다. 그가 뉴욕에 온 이유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했던 재즈 클럽 중 한 명이자 색소폰 연주자 ‘베니 콜슨’의 사인을 받기 위해 온 것이다.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공항에서 9개월이나 갇혀 생활한 빅터의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침내 크라코지아 공화국의 내전이 종전되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됐을 때, 빅터의 진실한 행동이 희망찬 결과가 되어 돌아온다. 공항 관계자들의 응원과 도움을 받으며 빅터는 영화 도입부부터 엉성한 발음으로 계속 언급했던 ‘택시’와 ‘렉싱턴 가 161번지’를 실현한다. 유창한 발음으로 택시를 부르고, ‘렉싱턴 가 161번지’ 장소뿐만 아니라 택시 기사와 가벼운 토크까지 나눈다. 그리고 아버지가 반했던 재즈 음악을 듣고, 고대했던 ‘베니 콜슨’의 사인을 받는다. 땅콩 깡통에 소중히 넣은 사인 종이는 빅터의 간절한 희망에서 비롯한 아름다운 성취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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