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지막 이야기
9월 따듯한 봄날 새벽 고요한 수술실 앞에서 부디 와이프와 아들이 건강하길 바라며 기다렸다. 별생각이 다 들꺼라 생각했지만 솔직히 걱정도 안했고 나쁜 상상도 들지 않았다. 그냥 기다렸다.
5시 10분 쯤 마취사가 문을 열고 수술실로 들어 오라고 했고, 와이프는 몸은 마취되었지만 얼굴과 정신은 멀쩡 했기에 눈을 뜨고 벌벌벌 떨고 있었다. 에어컨 때문에 추워서 인지 무서워서 인지 많이 떨고 있는 와이프의 손을 잡고 수술은 진행 중이었는데, 수술 진행중에도 남편을 들어오게 해주니 신기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전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몸이 떨고 있어다라고 알려줬다.
2021년 9월 17일 오전 5시 21분
드디어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직 탯줄도 자르지 않고 정말 말 그대로 핏덩어리가 앙앙 울고 있었다!!!
원래 의사에게 탯줄 절단 지연(Delayed cord clamping)을 요청 했는데, 의도치 않게 수술이 진행 되면서 수고한 의료진에게 강하게 요청할 수가 없어 그냥 하는데로 두었다. 탯줄은 출산이 되고 나서 바로 자르면 태반(Placenta)에 아직 영양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른 의료나 미용 목적으로 사용되어 진다고 한다.
하지만 절단이 늦어지면 잔여 혈액과 영양소가 태아에게 계속 전달되기 때문에 아이에게 이롭다고 한다. 그러나 그 태반은 쓸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태반이 배출되고 아에 탯줄을 절단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말라서 떨어질 때까지 태아와 연결해두기도 한다고 한다. 한 일주일에서 이주일 붙어 있는다는데 태반을 소금으로 싸서 부패를 방지하고 자연 건조 돼서 자동으로 탯줄이 떨어지길 기다린다고 한다. 이건 좀 과한 경우고 보통 15분에서 30분만 있다가 잘라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들이 태어나는 순간까지도 이름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너무 고생하는 와이프를 위해 시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늘 엄마를 따듯하게 해주길 바래는 의미로 시온(詩温)으로 선택했다. 아이 이름이 고민이 된다면 출산의 순간을 느껴보시라 그럼 아이 이름이 딱 떠오를 것이다.
아들의 무게 2.9키로. 그저 보통의 사이즈로 태어났다. 엄마 고생 시키지 않으려고 우량아로 태어나지 않아 고마웠다. 아들의 두상을 보곤 많이 놀랐다. 신생아의 두골은 여러개의 조각으로 되어 있는데 좁은 자궁으로 나오려다 보니 아이의 얼굴은 에얼리언의 기다린 모양을 하고 있었다. 복부 절개로 나오긴 했지만 자연분만을 시도 했었기에 그렇게 된거라 생각한다. 신생아의 뼈는 아직 물렁해서 시간이 지나고는 다시 인간의 얼굴로 돌아왔다.
와이프는 눈물을 또로로 흘렸고 의사는 복부 봉합에 들어갔다. 간호사는 아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는 모든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들은 멍쩡해 보였다. 아픈 곳도 장애도 없이 그렇게 건강하게 태어났다.
수술 후 의사가 말하길 탯줄이 태아의 목을 감고 있어서 태아가 나오려고 할 때 마다 목이 졸리면서 혈압이 떨어졌다고 한다. 의사는 위험 할뻔 했으니 수술 결정은 옳은 판단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수술실을 나와 회복실로 향했고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또 점검하고 한 시간이 지나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어 병실로 이동 되었다.
감사하게도 우리 병실은 1인실 이었고 화장실에 옷장, 보호자가 잘 수 있는 소파형 침대까지 괜찮은 시설 이었다. 아쉬운점 한 가지는 에어컨이 중앙 통제식 이라 조금 춥고 시끄려웠지만 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대망의 아침 식사가 나왔다!!!
공공병원 산부인과는 어떤 식사를 주는지 몰랐기에...
여기서 딱 한 번, 사설병원 갈 껄 그랬나 생각이 들었다.
바로 우버이츠(Uber Eats)로 음식을 배달 시켰다.
이틀째 되는 날은 회사 대표님이 음식 잘 먹이라고 뼈해장국과 수육을 보내주셨다. 감동적이게 맛있었다.
그렇게 말도 안되는 식사는 나오는 족족 건들이지 않고 나는 식사를 외부에서 조달 받았고, 금요일에 출산하고 병원에서 3일째 되는 일요일 아침에 퇴원을 선택했다. 호주는 자연분만으로 산모가 문제가 없으면 당일에도 퇴원이 가능하고 대부분 다음날 집에 가라고 한다. 그래도 제왕절개를 하면 3일 이상 머물 수 있게 해주지만 아들이 문제 없어 보여서 3일만 입원하고 집으로 왔다. 문제는 일요일이고 당직의사가 퇴근 했다가 다음 의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결국 오후 늦게 퇴원 허락을 받았다.
퇴원 후 얼마 뒤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미드와이프 Midwife가 집을 방문해 와이프와 아들을 점검하고 여전히 건강하다고 하고 돌아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우연히도 크리스마스가 아들의 100일 되었다.
코비드로 100일 잔치 같은 건 없고 풍선 사다가 집에서 사진만 찍고 케잌은 우리부부가 맛나게 먹었다.
출산 과정이 너무 감사해서 잊지 않으려고 그 모든 추억을 기록해 보았다.
우리 아들은 정말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무한한 상상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키우려 한다. 그리고 본인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늘 잊지 않고 살기를 바래본다.
내 글은 육아 관련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아들 관련 글은 별로 없겠지만 정말 괜찮은 육아책을 읽게 되면 그 때 글로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