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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리 Dec 20. 2021

오른쪽 안 보고 우회전하는 차에 부딪히고 과실 70%

제주 운전 이야기 모음

렌터카도 많고 교통사고도 많은 제주도

제주는 렌터카의 성지. 길거리를 다니면 '하'나 '호', '허' 같은 렌터카가 넘쳐난다.

이해는 간다. 나도 제주도민이 되기 전에는 제주에 올 때마다 거의 항상 렌터카를 빌렸으니까.


제주의 교통사고 발생률을 보면 항상 압도적인 1위다.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렌터카도 한몫한다. 초행길이나 운전 미숙이 많다는 것이다. 육지에서 장롱 면허인 사람도 제주에 오면 운전대를 잡는다. 내 지인도 그런 사람을 많이 봤다.


길 가다가 처음 본 캐스퍼. 근데 렌터카였다. 귀엽다. (정차 중 찍은 사진)


렌터카를 보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운전미숙형. 뭔가 불안 불안하다. 방향지시등을 켜고 제대로 차선변경을 못하는 경우, 차선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경우, 내비게이션을 제대로 따르지 못해서 교차로에서 우왕좌왕 하는 경우 등등.

두 번째는 레이싱카형. 제주는 고속도로가 하나도 없어서 신호등이 어느 도로에나 있는데, 제한속도에 신호체계가 맞춰져 있다. 예를 들면 일주동로는 70km/h로 달리면 10~20km는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다. 더 느려서도, 빨라서도 안 된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도민은 일정한 속도로 달린다. 하지만 육지에서 온 하허호는 차선을 넘나들며 앞으로 나선다. 하지만 결과는? 신호 앞에서 끽, 다시 속도를 올리고 다음 신호에서 끽. 그다음 신호도 끽.

세 번째는 무난형. 그냥 운전을 안전하게 잘하시는 것 같다.




제주에 와서 처음 차를 샀다

육지에서 아예 운전하지 않은 건 아니다. 면허를 따고 명절마다 부모님과 번갈아서 운전했다. 할머니 댁이 멀어서 하루에 6~8시간 운전하곤 했는데, 운전을 싫어하지 않아서 내가 가장 많이 운전하곤 했다.

렌터카도 기회가 생기면 자주 타곤 했다. 비싸서 잘 타지 않았을 뿐, 꺼리지 않았고 무서워하지 않았다. 렌터카로 옆에 돌을 긁어서 30만 원 물어준 적도 있지만 말이다.


육지에서는 차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도, 아주 쪼오오오금도 없었다. 수도권에서 살면, 출퇴근 시간에 도로로 나가고 싶지 않다. 주차장 걱정도 하기 싫었다. 내겐 대중교통이 최고였다. 대중교통을 탈 때면 이동하는 시간만큼 내게 자유시간도 생겼으니, 책도 읽고 스마트폰도 하고 다 했다.

심지어 출퇴근은 대중교통조차 막힌다고 생각해서 전동킥보드로 다녔다. 겨울엔 체감온도가 철원이고, 장마와 빙판길엔 아예 탈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차는 싫었다.


하지만 제주는 상황이 다르다. 어느 시골이 안 그러겠느냐마는, 차가 없으면 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난 제주 시내에 사는 것도 아니다. 제주에 내려오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차는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장기렌트냐, 중고냐의 갈림길에 섰을 뿐이다.


나는 차에 욕심이 전혀 없었고, 육지로 올라가면 다시 대중교통을 탈 생각이었기 때문에, 비싼 차를 탈 생각은 없었다. 제주에서 경차를 탔다가 좋았던 경험이 많아서, 차를 사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에 이미 경차로 정해졌다. 주차도 편하고 제주 올레(동네 돌담길)도 무리 없이 지나갈 수 있으니까. 주차비도 할인해준다!

그렇게 나는 제주도에서 가장 많은 차종인 모닝을, 그것도 색깔도 가장 보편적인 진주색 모닝 차주가 됐다. (내가 경험적으로 확신하건대, 진주색 모닝이 제주에 가장 많을 것 같다)

육지에서 중고로 구매해서 입도했는데, 제주로 가는 길이 혼자가 아니라서 좋았다.


모닝... 너무 작고 귀엽다... 마음에 든다.

귀여운 모닝과 그걸 바라보는 귀여운 고양이


엥? 자동차 보험료 뭐야, 돌려줘요...

자동차 보험료를 찾아보는데 깜짝 놀랐다. 보험료가 상상 이상이었다.

150만 원...?

다른 보험사를 찾아봐도 비슷했다. 보험료가 찻값 뺨친다.

아니, 아무리 처음이라도 그렇지, 보험료 이게 말이 되나? 어?


어.

아, 왜 그런지 이해해 버렸다.



첫 사고는 가벼운 접촉사고였고, 보험처리를 안 해도 될 정도였다.

모닝끼리 부딪쳤고, 내 사이드미러만 박살 났었다. 상대 차는 사이드미러가 접혔다가 다시 펴졌고, 약간 긁힌 정도였다.

작은 사고라 다행이었다.

차선 변경하다가 (내 눈엔 분명 없었는데) 차가 뿅 하고 나타나서 발생한 사고였다. 다행히 저속이었고, 원만하게 합의해서 서로 알아서 처리하기로 했다.


사이드미러가 박살 났다

사이드미러 교체비 조금만 들었고, 사이드미러 아래 보조 거울을 붙이는 선에서 끝났다.


좋은 액땜이다, 하고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서귀포까지 가서 바다 쓰레기 줍기 봉사활동을 마치고 점심을 먹었다. 나름대로 후기가 괜찮은 국숫집에서 약간의 실망감을 가지고 나서는 길, 아무리 생각해도 난 별로였다는 생각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였다.

골목에서 큰 도로로 합류하는 지점. 앞차가 좌회전 깜빡이를 넣고 있길래, 우회전하려고 오른쪽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좌우 확인, 이제 우회전으로 큰길에 진입하려는데, 옆에 있던 차가 갑자기 우회전해서 내 차를 받고 지나간다.


아...

한숨...


보험사를 부르고 사고를 처리하며 생각했다.

'나도 조금 과실이 있겠구나... 하... 자차 보험료 내겠네...'

그 정도였다. 내 잘못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비소에 차를 맡길 때, 정비소 사장님이 사고처리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보셨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씀드렸다.

"아직 비율은 안 정해졌는데, 제 과실 별로 없을 거 같아요."


며칠 뒤, 분위기가 이상하다.

내 보상담당자가 내 과실이 더 클 것 같다고 한다.

네??? 전 가만히 있었는데요??

비집고 들어간 게 더 문제라고 한다. 형사들은 사고 블랙박스를 보고, 도로가 아닌 곳을 갔던 내 잘못이라는 의견이었다고 했다.


상대 차는 렌터카, 티볼리였다.

티볼리의 문 두 짝이 찌그러졌다. 그나마 국산 차라서 다행인 걸까...?

내년 보험료는 150만 원에서 깎이기는커녕 늘게 생겼다.


아주 기분이 좋다.


찌그러진 모닝 차체 ㅠㅠ


내 과실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걸렸다.

근데 딱히 방법이 없었다.

내가 더 안전하고 보수적으로 운전해야지. 법이 그렇다면, 내가 더 잘못한 거겠지.


그 이후로 사고가 나는 상황을 많이 상상하게 됐다.

지금 여기서 사고가 난다면 내 과실은 얼마 정도 되는지, 블랙박스엔 이 장면이 잘 찍힐지, 이미 머릿속엔 한문철TV가 생방송 진행 중이다.

그리고 더 여유 있게 운전하려고 한다. 조금 늦게 가면 어때.

느낌이 조금만 이상하면 살짝 경적을 울린다. "나 여기 있으니까 알고 있어"라는 뜻으로.


내가 무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드는 것 같다.

돈은 많이 깨지겠지만, 더 조심하게 운전해서 인생이 깨질 가능성이 작아질 것 같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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