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빙
제주도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이 시원한 바다를 떠올린다. 곧이어 에메랄드빛 바다에 풍덩 빠지는 걸 상상하며, 제주도민에게 "물놀이 많이 하겠네요?"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사실 물놀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바닷물은 짜고 찐득하고, 젖은 옷을 갈아입기도 힘들고, 옷 주머니고 신발이고 자동차고 다 모래사장이 되어 버린다. 물놀이는 그럭저럭할 수 있지만, 뒤처리의 귀찮음이 물놀이의 재미를 앞섰다. 그래서 바다에 놀러 갈 때면, 파도가 닿지 못하는 넉넉히 뒤에서 바다의 소리와 끝없는 수평선을 즐기곤 했다.
그러던 나를 통째로 뒤흔든 계기가 생겼다.
열심히 쓰레기를 줍는 와중에 바닷속 쓰레기를 줍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쓰레기가 바다에서 몰려왔는데 당연히 바닷속에도 많이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해안에 떠밀려 온 쓰레기는 쉽게 줍지만, 바닷속 쓰레기는 어떻게 줍나? MBTI N의 상상은 물고기처럼 부드럽게 잠수하여 인어공주처럼 머리를 흩날리며 아름답게 쓰레기를 줍는 모습에 이르렀다. "오, 그거 재밌겠는데?" 그 장면이 멋져 보였다.
나는 다이빙을 배우기 위해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은근히 강습비가 비쌌다. 40~50만 원이나 되는 거금이었다. 속으로 '비싼 취미구나...' 하며 네이버 쇼핑 최저가를 찾다가 30만 원 중반대 강습을 찾았다! 분명 돈을 썼지만, 왠지 돈을 번 것 같은 뿌듯한 마음으로 2박3일 강습을 받고 자격증을 획득했다. 자, 이제 나도 멋지게 잠수하여 쓰레기를 주울 수 있겠다는 마음에, 두근거리며 바닷속 쓰레기 수거 봉사활동에 참가했다.
엥, 뭐라고요? 스쿠버 다이빙이 아니라 프리 다이빙이라고요?
다이빙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산소통을 메고 바닷속에서 호흡하는 것은 스쿠버다이빙, 반면 해녀처럼 숨을 참고 바다를 누비면 프리다이빙. 나는 당연히 다이빙하면 스쿠버다이빙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스쿠버 자격증을 땄는데, 대부분 바닷속 쓰레기 수거는 프리다이빙으로 한다고 한다. 어차피 쓰레기를 수거하려면 물 밖으로 들고 올라와야 하고, 산소통은 거추장스럽기도 하니까 말이다. 아아, 돈 아꼈다고 뿌듯했던 지난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또륵.
플로빙,
바닷속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뜻한다. 플로깅이란 단어와 다이빙이라는 단어를 합쳐서 만든 단어다. 나는 플로빙을 하기 위해 프리다이빙을 다시 배웠고, 거금을 투자해서 슈트, 핀(오리발), 마스크 같은 다이빙 장비까지 구입했다. 스쿠버다이빙과 달리, 프리다이빙은 숨을 참아야 하므 조금 더 힘들었다. 힘든 만큼 빡센 운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체력이 많이 길러지겠거니' 하고 꿋꿋이 참아냈다.
플로빙을 하는 사람 중에 '쓰레기를 줍기 위해' 다이빙을 배운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다들 프리다이빙이 좋아서 다이빙하며 플로빙을 곁들이는 것이었다. 프리다이빙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 '트레이닝'까지 따로 하면서 다이빙 실력을 기르시는데, 내게 함께 하자고 권유해도 나는 하지 않았다. 나는 한계를 시험하는 프리다이빙이 무척 힘들었고, 그저 쓰레기를 줍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물속을 노닐며 물고기를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했지만 말이다.
다이빙을 배우며 들어갔던 바다는 예쁜 곳만 갔지만, 플로빙을 위한 바다에는 항상 쓰레기가 있었다. 낚시 루어(미끼), 그물과 밧줄, 캔과 유리병, 그리고 철근과 타이어까지. 물론 쓰레기가 보이면 후다닥 헤엄쳐서 줍는 재미는 있었지만, 바닷속 쓰레기의 존재 자체가 꺼림칙하다. 오래된 쓰레기엔 익숙한 듯 해양생물이 자리를 잡았다. 이미 바다는 쓰레기에 적응해 버린 듯하다.
뉴스로만 봤던, 산호가 죽어가는 '백화현상'(갯녹음)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알록달록 채색되었던 그림의 색이 다 바랜 듯, 무채색에 가까운 바다다. 아직 물고기는 많은 곳이 남아있지만, 산호가 예쁜 곳은 많이 남지 않았다. 정말 심한 곳은 성게만 잔뜩 흩뿌려져 있었다. 그나마 남은 곳은 우도, 마라도, 토끼섬같이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일부 바다만 간신히 제 모습을 간직했을 뿐이다. 매년 급속도로 백화현상이 퍼지고 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쓰레기를 조금 줍는 것뿐이라 안타까웠다.
플로빙을 하면서 습관 하나가 생겼다. 바로 물놀이를 할 때면 '바다 사용료'를 내고 돌아오는 것이다. 바다는 우리에게 아무 대가 없이 놀이터를 내어준다. 시원한 바닷물로 더위를 식혀주고, 다양한 물고기가 바로 눈앞에서 실감 나는 공연을 보여준다. 내가 공짜를 좋아하긴 하지만,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고 싶은 마음을 무시할 순 없다. 그래서 물놀이가 끝날 즈음, 쓰레기를 하나 들고나온다. 해양정화단체인 '플로빙코리아'는 이것을 "1 dive 1 waste"라고 표현한다. 한 번 놀 때 딱 하나만이라도 줍고 나오자!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은근슬쩍 제안해 본다. 크지 않아도 좋다, 바다로 놀러 가서 아름다움을 느꼈고 조금이라도 재밌었다면 쓰레기 하나만 챙겨가서 쓰레기통에 버려 보자. 정말 작은 일이면서 조금 귀찮은 일이지만, 덕분에 바다는 조금 더 깨끗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