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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tcard Jan 15. 2021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 (사바하틴 알리)

현상학적 판단중지!

단숨에 읽어버린책!
 
화자인 ‘나’는 실직 후 친구 함디의 소개로 들어간 회사에서 라이프 에펜디와 같은 사무실을 쓰게 된다. 조용하고 성실하고 일도 잘하는 라이프가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나’는 그가 결근하자, 일거리를 전해주러 그의 집에 방문하게 된다.  그의 집 사정을 알게 된 나(라심)는 어느 날 그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서랍 속 물건들 중에  그의 비망록을 읽게 되면서 이야기는 액자구조로 들어간다.
 
스믈 넷의 식물같은 청년 라이프 에펜디. 가업을 잇는다는 명목으로 비누제조업을 배우러  터키에서 베를린으로 유학을 가게 되고..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지내던 그는 어느날, 우연히 방문한 미술관에서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라는 인생 그림(어느 여인의 자화상)을 만난다. 전시회가 끝날 때까지 매일 그 그림 앞에 서 있는 그를 찾아 온 그림의 주인공이자 화가인 마리아 푼데르..꿈속의  그녀와 만나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사랑을 두려워하던) 그녀와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는데.. 아버지의 부고 소식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소심하고 서투른 청년 라이프 .. 그들은 곧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헤어진다. 그리고 기다림과 오해와 절망의 시간..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을 했고 그것 때문에 괴로운 일생을 견뎌야만 했다.
 
희망 혹은 미련 ..이런  이름들이 얼마나 인생을 절망에 빠뜨릴 수 있는가....
   
절망의 시간을 형벌처럼 안고 살아가는 라이프 에펜디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묘사. 못되고 무능하고 탐욕스러우면서도 자신이 그렇다는 걸 의식하지 못하는 무지함. 그 안에서 하루하루 말라가는 라이프와 힘든 그의 아내. 마지막 순간에도 기억하며 후회없이 자신의 삶의 마감하는 이 사람..그것의 원인이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라고 한다면 그것의 의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이 주는 메세지는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삶에 대해 어리석다, 대단하다 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이 자신의 감정에 취해 오로지 하나에만 몰입한 통속적인 이야기만은 아닌 이유이다.
도입부의 액자구조, 느림과 속도감의 이중 배치, 인물들의 살아있는 듯한 묘사, 터키와 전후 독일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바라보는 타자화된 시각..특히 마돈나 마리아의 생각은 한 세대 이전이지만 현대적이고 공감이 가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은 그녀의 생각과 논리와 다르게 신파적인 면이 있어 보인다.(그것도 시대적 반영인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스토리상으로만 보면 진부할 것 같은, 사랑에 빠진 청년의 열정과 절박함 등이 생생하고 몰입해 읽게 만드는 이유는 참 아이러니하다.
이는 이난아 라는 번역가의 몫도 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명대사 ..
 
“한때는 나도 글을 쓰고 심지어 시도 끼적거렸다. 하지만 금세 포기하고 말았다. 마음속에 뭔가를 담고 있다 한들, 어떤 형태로 그것을 표출하는 두려움과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겁에 짓눌려 끝내 글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그림은 계속 그렸다. 그림은 내면의 무언가를 드러내는 걸로 느껴지지 않았다. 외부 세계에 있는 어떤 것을 가져와 종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에서 나는 매개자일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사실은 이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림 역시 그만뒀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참을 수 없는 ..)에서  사비나가 했던 말과 유사부분이면서, 나에게도  매우 공감는 대사이다
 
“ 내가 무시하는 사람들은 내 그림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차피 내가 무시할 리 없는 사람들이지요. 그렇다면 다른 모든 예술처럼 그림도 딱히 전달할 사람이 없어요. 정말로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호소할 수가 없는 거예요. ”
(마리아 푼데르)
 
“상대방의 생각이 몽땅 옳다고 편들어 결국 둘만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두 영혼이 하나로 합치는 길이 아니던가?”
(라이프 에펜디)
 
“ 사람들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가 감춰둔 영혼, 질서정연하든 뒤죽박죽이든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고 가장 단순해 보이는 사람도 경이로운 내면을 품고 있을 수 있고, 가장 어리석은 사람도 고뇌에 찬 영혼의 소유자일 수 있다. 왜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미적거리며,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라는 듯 사람이라는 피조물을 이해하고 판단 내리는 걸까? ”

나는 오늘도 누군가를 '~다'라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는 중이다..현상학적 판단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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