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솔 SANSOL Dec 21. 2022

타향을 고향으로 만드는 과정

‘파주 월인천 쓰레기 줍깅'


#1 공허한 파주살이의 시작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2020년 10월 말, 독립하며 파주로 이사했다. 동네의 첫인상은 허허벌판.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걸까? 게다가 눈살이 찌푸려지는 악취까지 진동했다. 출판단지와 산업단지가 있는 지역이라 공장이 많은데 산업 오·폐수를 그냥 천에 흘려보내는 듯했다. 그 냄새는 얼마나 지독한지 천을 따라 산책을 하고자 집을 나섰다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평화롭게 산책하던 성북천이 사무치게 생각났다. 앞으로 이렇게 냄새나고 무료한 곳에서 살아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추위와 악취를 견디며 파주살이에 적응하다 보니 집 앞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벗어난 한산한 도로 옆 외로이 서 있는 아파트, 마스크를 뚫고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하는 개울 천개울천, 갈색빛 황량한 개울가에 무자비하게 버려진 쓰레기들, 그 사이를 비집고 헤엄치는 아름다운 오리와 새들까지….

저리 어여쁜 새들이 시커먼 물에서 헤엄치고 쓰레기와 함께 잠을 잔다니. 나라면 저 물로 씻고 쓰레기 옆에서 잘 수 있을까? 왜 우리 인간은 나도 싫은 것을 동물이나 식물들이 겪는 것에 대해 무관심한지 가슴이 아렸다.    

그들을 위해 깨끗한 개울가를 만들어 쾌적한 잠을 잘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루기 대마왕의 피는 숨길 수 없는 것일까. 이런저런 이유로 핑계를 대다가 봄이 되었고 정신 차렸을 때는 내 키를 훌쩍 넘는 풀들이 빼곡히 자라나 쓰레기를 주울 수 없었다. 결국 1년이 지나버렸다. 하지만 새들을 위해 다짐한 약속을 지켜야 했다.



#2 '월인천 쓰레기 줍깅’ 프로젝트 시작

2022년 2월 27일. 집에 있던 쓰레기봉투를 무작정 들고 경비아저씨에게 집게를 빌려 쓰레기를 주우러 나섰다. 30분도 채 줍지 않은 것 같은데 50L 쓰레기봉투가 가득 찼다. 아직 갈 길이 삼만리인데 30분도 안 되어서 이만큼 주웠다면 좌우 합해 1km에 달하는 개울가를 깨끗이 하기 위해선 시간과 에너지를 얼마나 쏟아야 하는 것일까. 개울이 10km처럼 느껴졌다. 

‘아, 어느 세월에 혼자 다 줍나’ 걱정하던 찰나, 나의 쓰레기 쓰레기 주우며 달리기 줍깅(‘줍’다+조‘깅’) 소식을 들은 후배가 돕고 싶다며 한걸음에 달려왔다. 둘이 수다를 떨며 쓰레기를 주우니 그 속도와 양이 배가 되었고 외롭지 않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같이'의 가치를 위해 함께 할 사람을 모집하기로 결심했다. 엘리베이터와 게시판에 붙일 포스터를 만들고 집마다 전단을 돌렸다. 목소리를 내면 어디선가 응답해준다고 하던데 연락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초조했다. 더도 말고 덜지도 말고 딱 1명만 연락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하늘이 나의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걱정과 달리 참여자가 하나둘 늘더니 채팅 방에는 16명이 모였다. 상상도 못 한 인원이었다.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도움받지 못할 거라 포기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도움받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스스로 한계를 그은 것이다.


내 손을 잡아준 주민들과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맞춰 쓰레기를 주웠다. 동료가 생기니 그 진행 속도가 확연히 빨라졌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느껴지던 개울천이 약 2개월 동안 11번의 쓰레기 줍깅을 통해 눈에 띄게 깨끗해졌다. 혼자였다면 절대 해낼 수 없었을 결과다. 선량한 마음과 도움이 쌓이고 쌓이며 그 시너지가 빛을 발했다. 멀끔해진 월인천 앞을 걸으니 하회탈과 같은 인자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3 아니네가 왜 거기서 나와?

푸석푸석 황갈색의 마른 풀잎 사이 숨어 있는 쓰레기를 줍는 일은 마치 유적 발굴가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주로 발굴되는 쓰레기는 플라스틱, 비닐류(포장 비닐, 과자 비닐, 건축자재 비닐 등), 스티로폼, 캔, 병 등이었다. 이외에도 도대체 이게 왜 여기에 있나 싶은 쓰레기가 많았다. 작업 안전화, 운동화, 스키 장갑, 사용하지 않은 미니 양키 캔들, 지갑, 줄자, 분명 누군가 의도적으로 투기한 것 같은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가 썩어쓰레기가 섞여 버려진 쓰레기봉투, 칫솔, 페인트 롤러 붓, 볼펜, 보조밧데리, 실내화, 골프공 등. 발견한 쓰레기들이 모두 새 물건이었다면 살림살이 장만은 거뜬했을 것이다.     


쓰레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다 월인천에 정착한 것인지, 누군가 의도적으로 투기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쓰레기통이 아닌 길거리에 버렸다는 것이다. 한때는 누군가의 쓸모가 되어 사용되었을 모든 쓰레기는 가치를 잃은 채 점점 빛이 바래고 영겁의 속도로 썩어가고 있었다.




#4 점점 충실해지는 파주살이

이사 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 집 앞 개울의 이름은 '월인천(月印千)'. 북한에서부터 시작되는 한강에서 곁가지로 흘러 들어온 물줄기로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흔히들 삶은 이름 따라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월인천 쓰레기 줍깅’도 이름 따라갔다. 나의 움직임이 달이 되었고,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춰 함께 움직였다.     


타향의 헛헛함에 외지로만 느껴지던 파주가 ‘월인천 쓰레기 줍깅’을 통해 또 다른 고향이 되었다. 혼자가 아님을 일러주듯 정 많은 이웃들을 만나게 해줬고, ‘너는 네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라고 응원해줬다.     

엄청난 속도로 자라나는 초록 덕분에 4월 28일을 마지막으로 상반기 월인천 쓰레기 줍기는 한 단락 마무리됐다. 하지만 움직이는 달은 여전히 느린 속도로 천 명의 움직임을 비추기 위한 여정을 진행 중이다.


 

#5 산솔이 터득한 쓰레기 줍깅 TIP


1. 계절의 선택

장소의 특징마다 다르겠지만, 풀이 자라나는 공터나 개울가 쓰레기를 줍기 좋은 계절은 겨울이 끝나가는 늦겨울 ~ 봄이 다가오는 초봄이 좋다.

월인천의 경우 가을에서 겨울 동안은 철새들이 휴식하려고 찾는 곳이라 새들이 떠난 후 쓰레기 줍깅을 시작했다. 쓰레기 줍깅을 할 때 동식물을 배려하려면 쓰레기 시간을 두고 관찰하면서 언좋을지 시기를 고민해봐야 한다.


2. 장갑 끼고 줍기

쓰레기를 집게로 줍다 보면 부피가 너무 크거나 무거워서 손으로 줍게 될 때가 많다.  흙과 오물이 묻을 수 있으므로 장갑을 꼭 끼는 것을 추천한다.


3. 쓰레기 줍기

-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혼용하여 봉투에 담아 버리면 수거업체에서 가져가지 않는다. 봉투를 2개 들고 다니며 하나는 일반 쓰레기, 하나는 재활용 쓰레기로 구분해서 담는다.

- 먼 곳에서 시작하여 쓰레기를 버릴 곳에 가까워지도록 쓰레기를 줍는다. 쓰레기를 줍다 보면 봉투가 점점 무거워져서 들고 되돌아오기 힘들다.

- 해가 짧은 겨울 저녁에 쓰레기를 줍고 싶을 경우 헤드 랜턴이 유용하지만, 하지만 가시거리가 짧아 쓰레기가 잘 보이지 않는 단점도 있다.

- 비닐봉지보다 포대 자루와 같이 두꺼운 봉투를 쓰는 것이 좋다. 비닐봉지의 경우 날카로운 쓰레기와 나뭇가지에 걸려 쓰레기봉투가 찢어지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4. 쓰레기 버리기

- 여러 명이 함께 주울 때는 줍깅을 마치고 쓰레기를 한 봉투에 꼭 꼭 눌러 담아 버리고, 멀쩡한 봉투는 다음 쓰레기 줍깅에 재사용한다.

- 시간과 상황적 여유가 있다면 더러운 유리와 페트병을 깨끗이 씻고 라벨을 제거한 뒤 버린다.

- 시청에 문의하여 주운 쓰레기를 수거할 장소와 요일을 정한다.


5. 도움을 요청하고 함께할 사람 찾기

함께하면 기쁨이 배가 되고 머리를 맞대면 좋은 방법도 많이 나오는 법! 주변 지인이나 함께할 사람을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여럿이서 함께 한다면 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할 힘도 생긴다.


6. 시청 및 관리처에 문의 민원 넣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직접 해결하는 것도 좋지만, 개인이 할 수 없고 제도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관할 행정구역에 문의와 민원을 제기하도록 한다.


7. 기록 남기기

기록을 남기면 도움의 손길을 잡아 줄 사람들이 늘어날 확률이 높다. 그러니 귀찮더라도 기록을 남기고 선한 일을 하고 있음을 널리 알리자.


SPECIAL THANKS TO.
 파주출판단지 LH1단지 관리사무소(효숙님, 김귀한님), 정광옥님, 박용무님, 조인제님, 김동수님, 강승희님, 김윤경님, 김종성, 동은님, 성기병님, 이로희님, Lee Hanna님, 이명재님, 장마리님, 한쾌정님, 김효정님, 이상구님, 이진곤님, 전영서님, 조성은님, 김아롬님 외 월인천 프로젝트를 응원해주신 모든 분에게 행동의 씨앗이 잉태되었기를 바라며, 그 씨앗들이 민들레 홀씨 퍼지듯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길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지구의 날 맞이 행동 목표 정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