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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솔 SANSOL Dec 22. 2022

이서재 마당 환경담 '느린 마음'

이서재 利敍齋 x 산솔

                                                                                                  

이서재 마당 풍경


느린마음의 마음     


나 하나의 소소한 실천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하고 자문을 할 때가 많다. 나 하나가 일회용품을 줄이고,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의 플라스틱이 눈에 띄게 줄어 들고 망가져 가는 지구를 살릴 수 있을까. 그런 의심과 불확실한 세상의 대답 가운데에서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으므로 묵묵히 자신의 소신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 소소한 나의 행위가 변화하게 하는 것은 세상의 쓰레기 하나가 줄어드는 일, 그것 뿐 일일까?     


<느린마음>_이서재 마당 환경담은 지금의 기후위기와 환경의 변화로부터 우리를 지켜내는 것이 ‘마음’에 있다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행동에 대한 결과에 연연할 일이 아니다. 세상에 닥쳐오는 온갖 위기가 우리에게 건네려고 하는 ‘말’은 무엇인지를 듣는 것, 하여 우리가 지금,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고 그 생각의 가치를 올곧게 세우는 것, 종국에 그 가치에 따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의 근본을 바꾸어 살아가는 마음. 그것을 ‘느린마음’이라 이름하며 가장 본질적인 것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들 나누고자 했다.     


마당에서는 전국 곳곳에 계신 분들이 같은 고민과 속마음을 내어 놓는 장이 열렸다. 대나무가 둘러싼 마당에서 작은 집의 불편함들을 감수하며 둘러 앉아 그 뜻과 마음에 동조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같은 생각과 실천과 마음이 있음에 위안 받았다. 이 작은 마당에서의 연대가 각자 자신의 뜻과 방향을 더 단단하게 하기를 바랬다. 자신 스스로가 거울 되어 세상이 조금씩 닮은 꼴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당_환경담 <느린마음> 은 2022년 6월 25일 이서재 利敍齋 마당에서 열렸다.

조유겸, 염경, 지연순, 이민철, 강진주, 황철호, 김지현, 성광희, 산솔, 이서재가 나눈 이야기를 정리 편집하였다.      


환경담 손님을 기다리는 마당


#1 자본주의적 이기에서 느낀 불편     


이서재 : 지금까지 어떤 모순들이 자신을 불편하게 했는지, 그 불편함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물어 보고 싶어요.  우선 저는 오랜 시간 미디어 설치 작업을 해 오면서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했어요. 기존에 만들어진 물건들을 취하여 다시 재배치하고 구성하는 경우가 많았었죠. 하지만 전시가 끝나면 작품들을 폐기해야 하는 문제가 반복에서 발생했고 그때마다 마음의 불편함들이 쌓이기 시작했어요. 자본주의의 이기를 비판하면서 그 문제 안에 고스라니 문제로 있게 되었기 때문이예요. 


처음에는 필름 카메라를 썼었는데 디지털의 시대가 온 거예요. 올해 새 디지털 카메라를 사면 내년에 기능이 향상된 새로운 카메라가 나와요. 예술분야에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좋은 품질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경쟁적 강박 때문에 가지고 있는 도구들을 자꾸 새 것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했어요. 몇 번의 과정을 반복하며 이 불편함이 어디서 올까 생각을 해보니 새 물건을 계속 만들어 팔아야 하는 기업이 우리를 실험대 위에 올려놓고 광고를 통해 구매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오래 쓸 수 있는 튼튼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기능이 첨가된 제품을 해마다 선보이며 구매 할 수밖에 없이 만드는, 그것을 갖지 않으면 열등한 인생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적 분위기와 구조를 선택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 과잉 생산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이기가 환경을 파괴하고 우리 삶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는 생각에 닿게 되면서 ‘사는 일’에 대한 본질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조유겸 :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옛날 가정집에는 전자제품이 몇 개 없었어요. 소위 도깨비 방망이라는 핸드 블렌더나 주스기, 계란찜기, 제습기 같은 것들을 저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요. 물론 필요한 때에 사용하면 편리하죠.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 일 년에 고작 몇 번 혹은 한 달 사용하려고 일 년 내내 집에 쌓아 두는 일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전자제품으로부터 나오는 소음과 열기가 온전히 우리 집에서 소화해야 하는 몫이지요. 기업은 자기업의 이윤창출을 위해 물건을 팔아야 하니까 끊임없이 만들어 내요. TV 속 광고를 보면 세련된 부엌에 멋진 배우들이 나와서 ‘너는 이것도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죠. 오늘 집에 되돌아가면 내가 잘 안 쓰는 가전제품이 정말 많이 보일 거예요.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이민철 : 제가 영국에서 생활할 때 그들의 관점 차이를 보고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어요. 어떤 건축가가 설계한 공동주거단지에 살던 주민들이 그 건물의 재개발을 반대하며 국가에서 보존하여 지켜내는 국가보존건축물(National Trust)로 바꾸려 했어요. 재개발을 했다면 그들에게도 자본적인 이득이 돌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을 텐데 한두 명도 아닌 주거 단지의 여러 사람들이 다 함께 그 건물의 가치를 지켜내려는 모습이 제게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관점에서 집을 바라보며 그런 결정이 이루어 졌는지가 궁금해졌죠. 


처음 한국의 아파트는 집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급형 주택으로 시작했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은 본질과는 다른 여러 이미지들이 덧붙여져 삶을 위한 집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이 되어버렸어요. 그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자본주의적 구조에 들어가는 순간 빠져 나올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마치 실내가 더워서 에어컨을 켜면 실내에 있는 나는 시원하지만 실외기가 밖을 덥게 만들어서 밖의 온도는 계속 올라가는 것과 같아요. 이 끝없는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려면 ‘안해도 괜찮아, 버틸 수 있어’가 되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염경 제가 여러 사람들을 마주하며  놀라웠던 것은 ‘우리의 삶이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무한한 성장이 가능할까?’라는 물음을 항상 갖고 있어요. 우리가 가진 것은 언젠가 소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왜 막다른 길을 향해 달려가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본질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근본적인 체계가 모순적으로 작동할 때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을 어떤 길로 이끄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눈과 귀를 닫고 다른 대안이 없는 듯 남들 따라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이런 문제들을 직시하는 아이와 어른들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고요.      


황철호 : 하지만 자본주의를 적대하면 이기기가 힘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것 중에 자본론이 있어요. ‘앞으로 이데올로기보다 물질이 강해질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빈부의 격차가 커질 것이다’라고 얘기했죠. 그리고 세상이 정말 그렇게 됐어요. 결국 시장이나 자본이 계속 굴러가는 것에 저항에서 싸우는 것보다 그걸 지혜롭게 역이용해서 넘어트려야한다고 느껴요. 예를 들면 ESG 경영이 트랜드가 된 것처럼. 누군가 이런 걸 트랜드로 만들어내는 방법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이서재 물론 이미 우리 삶의 체계로 자리한 ‘자본주의’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이러한 체계가 과잉되어 변질 시키고 있는 문제들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삶의 가치를 인지하고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환경이 파괴되고 이상기후가 생겨나는 것도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부를 축적하려는 이기심이 만들고 있는 결과들이니까요.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결국 내 자신의 태도로부터, 그 태도는 마음으로부터, 그 마음은 인간의 삶이 어떤 가치를 갖고 살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인지하는 일로부터 찾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후 변화와 환경과 먹거리들이 변화하는 일들을 마주하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뜻’ 이 무엇인지를 아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방향과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일렁이는 그림자


#2 삶의 가치를 다시 보게 하는 교육     

 

이서재 : 저는 한국으로 들어와 내 자신도 잘 알지 못했던 한국문화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이 땅을 걸으며 그림 그리고 공부하는 작업을 해 왔는데요, 결국 그렇게 몸으로 얻은 배움은 교육으로 전해져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닿았습니다. 그 생각은 ‘훗날 경치 좋은 곳에 한옥의 정신을 가진 집을 짓고 공교육이 가르쳐 주지 않는 삶의 가치를 찾아가게 하는 학교를 열면 좋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앞집에 살고 있는 아이의 엄마가 제게 우연히 수업을 부탁하면서 ‘우주宇宙학당’을 열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집안의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것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집의 교육이 많이 무너져 있지요. 모든 근원에 대한 이야기, 몸으로 쌓아가는 경험들,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잘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는 일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결국은 내가 속한 환경을 잘 알고 내가 나고 자란 뿌리를 이해하면 환경과 나의 있음이 절로 소중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대상을 알아야 사랑하게 되고 비로소 가치를 알아보게 되는 단순한 것을 놓치고 사는 것이죠.      


산솔 : 정말 공감 합니다. 과거 선조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사는 방식 자체가 자연에서 얻은 것들을 오래 쓰고 소중히 대하면서 살아왔어요. 전쟁이후 급진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돈 버느라 팍팍한 삶을 살아왔죠. 그래서 때문인지 아파트가 아닌 이서재와 같은 한옥 집에서도 살 수 있으며, 나의 삶의 태도를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어른들에게 배우지 못했어요. 보지 않았으니 이렇게 살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도 몰랐던 거죠. 삶이 힘들어서 삶의 태도를 되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관심이 없거나, 소비적인 구조에 편입해 있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들 주변에 여기계신 분들이나 이서재 처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어른이 살고 있다면 좋은 영향을 주고 받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 것에 동의해요. 염경님이 계시는 ‘신나는 학교’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실 수 있나요?     


염경 : 저희 학교는 아이들이 교육과정을 직접 디자인하는 학교입니다. 그래서 개교는 했지만 건축이 되어있지 않죠. 건축 과정에 생기는 아이들의 요구는 굉장히 다양해요. ‘오래된 소나무를 살려 달라’, ‘물고기를 볼 수 있는 연못을 넣어 달라’, ‘옥상에서 연결된 짚라인을 설치해 달라’ 등. 그래서 이서재가 생각났어요. 지금 이서재가 하고 있는 일이 이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일이니까요.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는 삶’을 충만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면 더 자연스럽고 편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고요. 그래서 저희 학교에 한번 들려주시거나 아이들이 여기에 한번 방문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강진주 토종 쌀 모내기를 하러 갔다가 알게 된 학교가 있어요. 스페인의 ‘몬드라곤 아카데미’라고 대안 대학교에요. 그 학교는 캠퍼스가 없고 세계를 떠돌아다닌다고 해요. 세계가 배움의 터인 것이지요. 얼마 전 그 학교 학생들에게 강연을 했는데 인원은 작았지만 그 어떤 강연보다 분위기가 좋았어요. 하나라도 더 배워가려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했죠. 그 학생들의 태도를 보며 오히려 제가 배웠어요. 한국에 있는 몬드라곤 학생들과 신나는 학교 학생들을 연계시켜도 좋을 것 같아요.      


염경 : 그러네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대안학교는 정말 많아요. 하지만 아이들과 부모들이 그런 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죠. ‘지식순환협동조합’, 문경의 청년마을 ‘삶기술학교’, 홍성의 ‘풀무학교’ 등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이서재 : 제가 우주학당을 하면서 느낀 것은 아이의 욕망은 따로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것들을 아이들 몸에 자연스럽게 체화되도록 가르치는 게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한 주, 한 주 지날수록 아이가 제가 한 얘기를 기억하고 표현해요. 저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선생님은 자연을 좋아 하니까요’라며 꽃으로 옷을 그려요. ‘아 이렇게 스며드는 구나.’ 아이의 생각이 변하는 게 언뜻 언뜻 보이죠. 지금은 공간적 제약 때문에 인원을 늘릴 수 없지만 언젠가 우주학당의 마당이 조금 더 커지면  오늘의 마음을 기억하고 대안학교의 선생님으로 다시 만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서재 <우주학당>_ 산이

#3 삶을 마주하는 태도와 실천     


이민철 저는 서울에 살다가 아버지와 가평의 한옥에서 살았었어요. 아궁이도 없고 보일러, 에어컨도 없었어요. 중학교 때까지 그걸 불편하다고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 남양주로 이사를 오며 아파트에서 살게 됐어요. 한옥에 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잊었다가 영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그 시절이 떠올랐어요. 영국에서 비싼 전기세, 난방비 때문에 추운 겨울에는 옷을 껴입고 여름에는 문을 계속 열어 놓으며 지냈어요. 다시 한국에 돌아온 뒤 아내와 함께 에어컨을 쓰지 않는 노력을 하는데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첫째 딸이 태어나고 천 기저귀를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했어요. 제가 이런 좋은 것들을 나누려고 할 때, 사람들이 그것이 왜 좋은 것인지 느끼게 해줘야 하는데 그들이 겪고 있는 당장의 불편함 때문에 설득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고민이 됩니다.         


이서재 저도 에어컨이 없이 지낸지 오래 되었어요. 에어컨이 없으면 덥지만 시원하게 사는 법을 찾게 돼요. 문을 다 열어서 바람이 잘 통하게 하고 통기가 잘 되는 천연 옷을 입지요. 음식으로 몸을 보양하고 덥지 않은 아침, 저녁에 일하고 낮에는 더위를 피해 쉽니다. 여름을 충분히 여름처럼 느끼고 나면 오는 겨울을 충분히 겨울답게 즐길 수 있어요. 요즘 우리는 에어컨이나 난방이 있는 시원한 집을 나와서 차를 타고 이동을 한 뒤, 냉난방이 좋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요. 그렇기 때문에 계절이 없어지고 있다고 느끼며 여름과 겨울만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흔히들 봄과 가을이 짧아졌다고 말하지만 저는 한옥집에서 지내고 항상 산을 가까이 하니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너무나 분명히 느끼고 있어요. 그 계절들이 황홀하게 아름다워요. 집의 구조와 양식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계절을 충분히 느끼게 하며 지혜롭게 해 주더군요.  

   

손수건에 담긴 산


지연순 일을 하다보면 오래된 아파트 리노베이션을 의뢰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건설사에서는 새 것을 지으려고 설치된 것들을 다 뜯어내고 살림을 바꾸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래서 처음부터 쓰레기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요. 하지만 방법을 찾다가 잘 안되어 멀쩡한 제품들을 버려야 할 때 화가 나요. 저는 ‘Reuse(재사용), Redesign(다시 디자인하다)라는 단어를 쓰는데 고쳐서 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사용하도록 디자인하는 것에 마음과 뜻을 두고 있어요. 건축에서 친환경이라고 하며 목재를 많이 쓰는데 나무를 베는 행위가 왜 친환경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런 많은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며 요즘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맞으면서도 질리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조유겸 저희 집 화장실에는 휴지랑 샴푸가 없고 비누 딱 하나만 있어요. 사람들이 ‘휴지 없이 대소변 뒤처리를 어떻게 하니?’ 물으면 ‘우리는 물로 해’라고 답해요. 그리고 저는 머리를 감을 때 쌀뜨물을 사용해요. 쌀뜨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머릿속 단백질을 제거해주지만 살짝 삭히면 엄청 잘 닦이고 머릿결이 좋아지거든요. 아니면 마른 쑥을 끓여서 미지근해질 정도로 식힌 뒤 그 물로 머리를 헹구면 머리 소독이 잘돼요. 사실 저도 이런 걸 하다가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지?’하는 마음이 들 때는 샴푸를 사기도 해요. 근데 그 샴푸로 머리를 감다가 ‘아, 이건 아니야’ 싶어서 다시 돌아오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마음의 태도라고 생각해요.                   

이서재 마당 환경담 풍경 스케치

#4 서로가 닮아가는 삶


조유겸 원론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여기 이 집 ‘이서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럭셔리하게 잘 꾸며 둔 아름다움이 아니에요. 작지만 집안으로 스며든 자연과 집이 조화롭고 거기에 어울리는 삶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끼는 거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웃 거리며 찾는 거예요. 진솔하게 아름다운 것은 누가 보아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눠줘야 하는 사람들은 그런 삶을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인데 오늘 이 자리에 와보니까 이미 다 그렇게 살고 계신 분들이 오셨다고 생각이 드네요. 더 많은 이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지 못해 아쉽기도 합니다.   

  

이서재 조유겸 선생님의 말씀도 이해합니다만 아쉽기만 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나누면서 이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연대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각자 확신을 갖고 지속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과 태도를 어떻게 알려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 해요. 누군가의 삶이 좋은 에너지를 건넬 때 거울처럼 따라하게 되지요. 저는 이것이 일회용품을 철저히 안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며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그리고 그 삶이 아름답구나’ 느끼면 닮아가게 되어요. 아주 긍적적인 반응입니다. 


그래서 태도로써의 가치를 굳건히 지키며 자신이 하는 일을 겸손히 알려서 남들이 볼 때 ‘왜 다른가’를 묻고 긍정적으로 따르고 싶도록 해야 해요. 가치와 삶이 변하면 따로 환경운동을 하지 않아도 자연과 어우러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지구 생태계의 구성원이 절로 되는 거죠.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예술의 영역뿐 아니라 삶 곳곳에 존재하고 있어요. 그런 아름다움이 사람을 온화하게 설득해요. 조금 더 아름답고 살려고 하니 집이라는 공간이 다듬어져요. 집이 나다워지는 것이죠. 내가 변하면 내가 만나는 사람이 변할 수 있어요.       


‘느린마음’은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이예요. 우리가 비로소 돌아가야 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성찰하는 마음. 세상과 이 땅의 변화를 똑바로 보았을 때 묻게 되는 마음인 것이죠. 지구환경은 운동으로 지켜지기 이전에 우리의 마음이 자연과, 땅과, 바다와, 하늘과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느린마음’ 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시간이 짧아서 미처 나누지 못한 대화도 많지만 오늘 나눈 이야기들은 깊고 의미 있는 이야기였어요. 이런 모임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연대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다운 삶이 지속되기를 기대합니다.     

 

푸른 창밖의 풍경


#참여자 소개

이서재 : 집의 이름이자 작가명이다. 모든 창조적인 예술행위가 집으로부터 일어난다고 생각하며 뿌리-삶-예술을 잇는 집, ‘이서재(利敍齋)’를 운영한다. 느린마음으로 마당을 열어 손님을 맞았다.

산솔 : 슬로매거진 달팽이 [ECO-ON] 파트 에디터이자 기후위기를 멈추고 싶은 실천하는 행동가.

조유겸 : 직장생활을 하며 느꼈던 피로감이 모두 생활 태도와 먹는 것에서 비롯됨을 알게 된 후, 삶의 태도를 고쳤다. 전통공예품 수집가이고 손으로 만드는 것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미고 크레프트를 북촌에서 운영한다.

성광희 : 코로나 이후 배달로 늘어난 쓰레기들을 보며 지구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생활에서 밀접하게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다.

염경 : 대안적인 교육에 뜻을 두고 있다. 경기도에서 관계미술을 가르치는 ‘신나는 학교’의 미술 교사.

지연순 : 최대한 사용기간을 늘리고 오래 쓰는 ‘Long Life Design Lab’을 실천하고 있다. 전라도 광주에서 실천하는 건축가이자 교육의 일을 하고 있다.

강진주 : 다가오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음식을 사랑하는 사진작가.

이민철 : 삶의 전반에 걸쳐 태도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멋진 결과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건축가이다. 건축설계회사 스튜디오 밀리를 운영한다.

김지현 :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는 있으나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고 느끼는 미술대학원생.

황철호 :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를 건축으로 설명하고 해석하는 건축가이자 교육자이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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