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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y 10. 2023

결혼해도 괜찮겠다.

스물일곱 애송이는 결혼준비 중.

0.

<기어코>  
1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2 결국에 가서는.

이전 글의 제목을 '기어코' 결혼을 결심했다고 표현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결혼에 대한 계획이 확고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내 주변 나와 같은 또래의 친구들 열명 중 다섯은 비혼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고.

세 번째는, 남은 다섯 명 중 네 명은 아직 결혼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비혼을 꿈꾸는 다섯과 결혼은 먼 이야기인 넷, 그리고 남은 하나가 바로 나이다.

네가 기어코 가장 먼저 결혼을 하는구나!



내 가장 친구에게 결혼 준비 시작한다고 말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넌 뭔가 그럴 줄 알았다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예상했던 것 보다도 더 일찍 가는구나.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1.

내가 결혼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유지해 오는 동안 결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많이 변했다.

결혼은 이제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라는 게 당연시되었고,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보다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과반수를 넘게 되었다.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에 결혼이 나오게 될 때가 있는데, 이십 대 중반에서 서른 살 초반까지의 내 지인들이 결혼을 시기적으로 아직은 먼, 혹은 본인과는 먼 이야기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하고 깜짝 놀라고는 했다. 결혼을 하면 여자가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들, 결혼을 하면 생길 수 있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 결혼이라는 관행을 통과하기 위해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부담감, 결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이러한 다양한 이유로 내 주변 지인들 중 성별 구분 없이 아주 많은 친구들이 비혼을 생각하고 있다.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나는 소수가 되고는 했는데, 그래서일까 결혼을 준비하는 내 마음에 대한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뒤에 '기어코 결혼을 결심했다.'라는 제목이 머리에 팍 떠올랐다.

   

2.

스물일곱, 아직 결혼을 논하기에는 어린 나이가 맞긴 하다. 물론 더 이른 나이에 결혼한 사람들도 있지만.

옛날 같으면 결혼적령기의 나이라고 할 수 있는 스물일곱은 요즘으로써는 이제 사회초년생인 데다가 아직 갖춘 것이 제대로 없는 게 현실인 나이이다. 아직 해 봐야 할 게 많고, 할 수 있는 게 많고, 갖춰야 할 것도 많은 나이. 그래서 결혼하기에 어린 나이라고 생각할만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기본적으로 서른은 넘겨야 결혼을 하고, 마흔 즈음에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게 요즘의 모습이니까.

그래서 결혼을 이 사람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것과는 별개로, 결혼의 시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건 사실이다. 아직 너무 준비가 안된 건 아닐까? 결혼하기에는 어린 나이가 아닐까? 결혼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나이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다 우리가 위의 질문들에 대해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눈 뒤 내린 결론은, 결혼할 준비는 해도 해도 모자라다는 것. 그리고 사람과의 인연은 타이밍이라는 것.

나는 오빠와 나눈 많은 대화들 속에서 우린 당장에도 우리가 한 선택에 책임을 질 마음 자세가 되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렇게 결혼을 결심했고 진행시켰다.


3.

결혼이 하고 싶었던 것이긴 했지만, 아무나와 결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애정하고 주도적으로 사는 사람,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사람, 사랑이 많은 다정한 사람, 표현을 잘하는 사람, 담배를 하지 않는 사람,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취미가 있는 사람, 따뜻한 사람, 역지사지를 할 줄 아는 사람, 욕을 아무 때나 하지 않는 사람, 자기 관리를 할 줄 아는 사람, 어른들에게 예의 바른 사람, 기본적인 도덕성을 갖춘 사람, 먹는 것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품이 넓은 사람, 책임감이 있는 사람, 유쾌한 사람, 긍정적인 사람, 성숙한 사람 등등등... 나에게는 아주 높은 허들의 조건들이 있었다. 물론 나도 내가 원하는 이상형과 같은 만큼의 사람이 되어야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나 자신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자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위의 요소들 물론 정말 중요하지만, 이상형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나와 온도가 맞는 끌리는 사람이요."라고 대답했다.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자, 특히나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까다로운 조건이다.

나와 온도가 맞는 사람은 즉슨, 나와 취향과 성향이, 살고 싶은 삶의 방향성이, 그리고 웃는 포인트와 우는 포인트, 화가 나는 요소와 옳고 그름의 도덕적 가치관이 잘 들어맞아 선택의 순간에 비슷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끌리는 건 말 그대로 사람이 사람에게 이유를 불문하고 끌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와 온도가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도, 사람에게 끌리기도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그런 사람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4.

그런데 웬걸,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들을 하나씩 포기하게 되는 시점이 오기도 전에 끌리는 사람을 만나버렸다. 생에 몇 번 느껴본 적 없는 사람한테 느끼는 끌림. 그리고 그 끌림을 느낀 사람이 나를 먼저 좋아해 주는 기적과 같은 순간. 그리고 만나면 만날수록 정말 놀라울 만큼 나와 닮은 사람임을 알게 된다는 것. 무엇보다도 비혼주의자가 늘고 있는 세상에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인 사람이라는 것. 이러한 점들 때문인지 우리는 연애 초반부터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나 앞으로 살고 싶은 삶이라는 주제의 깊이 있는 대화를 많이 나누었고, 어쩌면 그게 나에게 결혼은 이 사람이랑 하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결혼할 사람은 어쩌면 정말 이미 점지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살면서 항상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었던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을 만나고 있기에, 그래. 너무 재고 따지지 말고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연애의 끝이 결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 사람의 고백에 결혼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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