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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콜라주 Feb 18. 2022

왜 EU는 현대와 대우의 합병을 반대했는가?

아직 난, 중국으로 갈 마음의 준비가 안됐어 친구야..  

2019년 초 어느 저녁, 필자는 동료들과 함께 부서 회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해가 바뀌면 매번 있었던, 진급과 부서 이동 등등 소소한 축하와 아쉬움을 달래는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리고, 코로나 이전에는 너무도 당연한 문화였던 '간단히 입가심 2차'를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동료들의 핸드폰의 알림 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하고 이내 곧 "웅성웅성...."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했다네요?!?

필자가 종사하고 있는 조선산업은 역사가 한 50년 정도 되어가는데, '합병'을 한다는 그 두 조선소는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도 니가 일등이네 내가 일등이네를 주장하며, 정말 박 터지게(?) 경쟁을 하던 사이였으니, 정말 빅뉴스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룹사 전체 기준으로는 현대가 약 2배의 규모이지만, 그룹의 대표 선수인 울산 현대중공업과 거제 대우조선해양의 관계가 그렇다는 것이니,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은 너무 흥분(?)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만일, 그룹사 기준으로 비교한다면 전 세계 1등은 중국 내 조선소 수십 개를 보유한 중국 통합 국영조선 그룹사 CSG입니다.)


첫 뉴스가 발표된 이후 합병 절차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이 되었고, 3월에 본계약이 체결되면서 '조선 산업계의 세기의 M&A'가 신속히 마무리 되는 듯하였습니다.


그 '본 계약'은 양자의 합의로만 마무리가 되지 않고 하나의 조건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 주요 경쟁당국의 합병 승인'이었습니다.


합병을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경쟁당국'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두 회사의 주요 고객이 위치한 EU,  싱가포르, 중국, 일본, 카자흐스탄 등 총 6개 국가라고 했습니다. 즉, 이 6개국에서 이 합병 딜이 해당 국가 산업 및 이해관계자에게 '독과점'에 의한 피해를 끼칠 여지가 있는지 공정거래 측면에서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거대 조선해양 기업의 탄생을 6개국에서 '허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독과점 심사는 조선 산업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전 세계가 하나의 단일 시장으로 움직이는 특성을 가진 조선 산업에서, 특히나 생산 능력 측면이나 기술 측면에서 전 세계 No. 1, 2, 3을 독식하고 있는 한국 조선 기업들 간의 M&A 추진에서는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조건이 등장하였을 때, 필자를 포함한 조선 업계에서 밥깨나 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1. "어? 이거 마무리 쉽지 않겠는데? 한국 주력선종인 대형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은  Big3가 이미 과점 혹은 독점 공급인데 그중 2 회사가 결합하면 무조건 점유율 50% 넘을 건데?"

2. 에이.. 산은하고 현중이 추진하는데 그런 것 당연히 검토했겠지.. 듣자 하니 국내 최고 로펌이 붙어서 사전검토 다 했다고 하던데.. 그런 거 하나 안 걸렀겠어? 무슨 수가 있겠지.. 이거 봐 언론에서도 자신 있다고 하잖아!

"대우조선 인수, 잘될 것" 권오갑 현대重지주 부회장의 자신감

 그러나, 약속된 2019년은 속절없이 지나고, 2020년이 다가왔습니다. 전 세계는 이내 COVID-19의 이슈로 덮였습니다. 현대-대우 간의 기업결합 승인도 가장 중요한 고객이 몰려있고 합병 승인의 키를 가지고 있는 EU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지연에 지연을 거듭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딜을 추진하던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승인을 낙관하였습니다. 코로나로 잠시 지연이 되고 있을 뿐 EU의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곧 좋은 결론이 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현대重·대우조선 합병에 '코로나19 암초'

그렇게 또 결과 없이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인수 추진 3년 차인 2021년에 들어서자, 이전에는 거론되지 않던 '부정적 징후'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사회의 반대, 특히 노조가 합병에 걸림돌이 된다는 둥,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가 긍정적인 결론을 안 내니, EU도 결심을 못하고 있다는 둥... 

EU에서 다른 수많은 합병 심사들은 차질 없이 진행이 되고 있는 것(EU의 합병 관련 심사 결과를 조회할 수 있는 사이트 링크)을 알고 있었던 필자는 '코로나 때문에 심사가 진행이 안된다'는 이유는 원래 믿지 않았습니다. 뭔가 다른 이유이겠거니 했는데, 지역사회와 노조의 반대가 걸림돌이 된다는 부분에 가서는 "도대체 뭔 말인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EU의 반독점 심사에 우리나라 노조의 입장이 어떻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지? EU가 우리나라 고용문제까지 걱정을 한다는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는 핑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신빙성 있는 지연 사유가 EU의 심사 담당자의 공식 답변에서 드디어 나왔습니다. 심사가 지연되는 이유는 바로 "당사자(현대중공업)가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그 '필요한 정보'란 바로 'LNG운반선 독과점 해소 방안'이었습니다.

중단된 EU 기업결합심사에 현대중-대우조선 연내 합병 멀어지나

EU 불허하나…현대중공업·대우조선 합병 '빨간불'

결국, 조선밥 많이 먹은 이들의 두 가지 예견 중 1번이 정답이었던 것입니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왜 합병이 이렇게 무리하게 추진되었는지, 그래서 누가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았는지, 누가 이 문제를 책임질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선 산업에 속한 이해당사자로서 많은 의견과 아쉬움, 그리고 바램도 있지만 오늘은 본 코너의 핵심인 '와잉놀이'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EU는 도대체 왜 이 합병을 반대하였나? 
  

당연히 EU가 직접 밝힌 바와 같이 본 기업결합의 '불승인 이유'는 LNG선에 대한 독과점 문제였습니다. 초기에는 초대형 원유운반선 (VLCC), LPG선과 같은 독과점 선종들에 대한 조사도 병행하였지만, 불승인의 핵심 사유는 명확히 'LNG 운반선 때문'이라고 적시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LPG선이나 초대형 원유운반선에는 '독과점 문제가 없다'라기 보다는 LNG운반선 문제가 너무도 명확하기 때문에 전선을 확대하지 않고, 이 부분에 집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EU 집행위원회의 불승인 결정 이유 (Press Release 자료 전문 링크)

EU가 직접 밝힌 합병 불승인의 핵심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을 병기하였습니다.


1. 두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최소 60%를 넘고, 최근 10년간 시장 점유율이 증가하고 있다. ("The parties' combined market shares would be of at least 60%, (중략) the combined market shares of DSME and HHIH have been increasing in the past 10 years")

2. 고객을 위한 다른 대안이 거의 없다. 또한 시장의 나머지 경쟁자는 단 하나(삼성중공업을 의미함)인데, 캐파가 한정되어 있어 견제가 안된다. ("Very few alternatives for customers. Besides the parties, there is only one other large competitor in the market. However, this competitor's capacity would not have been sufficient to act as a credible constraint on the new company resulting from the merger")

3. 네 번째 조선소(중국 조선소를 지칭함)는 활동이 제한적이며 주로 자국 발주 배들만 건조한다. ("A fourth independent shipbuilder has limited activities in the large LNG carriers market and focuses on domestic projects")

4. 진입장벽이 높고 선박 구매자의 힘이 없다. 고객은 LNG 선박을 구매하기 위해 매우 한정된 조선소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Very high barriers to entry and no buyer power. Customers have a very limited choice of shipbuilders as possible suppliers.")

5. LNG운반선 시장에 팬데믹의 영향은 없으며 앞으로의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이다. ("No impact of the coronavirus pandemic. Furthermore, future demand outlook is very positive.")


어떻습니까? 독자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이상한 이야기로 들리실지 모르지만 저는 이 '불승인 사유'를 보면서 합병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가슴이 매우 뛰었답니다. '아, 한국 조선 산업 진짜 자랑스럽네.. 그리고, 잘 몰랐는데, 유럽 선주들이나 기자재 업체들의 속마음이 이렇단 말이지?'


3년간에 걸친 심층 조사와 방대한 분석 그리고 유럽 선주들, 기자재 업체는 물론, 한국의 노조 의견까지도 청취하는 등 거의 모든 이해관계자와의 심층 면담을 통해 얻어진 LNG 선박 시장에 대한 결론은 짧고 굵게 요약하면 '한국 3사 외에는 대안이 없다'입니다. 게다가 향후 시장 전망 또한 매우 밝다고 합니다.


EU 경쟁당국이 중국 조선소를 '제한된 활동을 하고 있고 자국 물량에 치중하는' 야드로 평가하고 있고, 한국 3대 조선소가 점령하고 있는 차별화되고 고도의 기술이 적용된 LNG선박 건조 시장은, 향후에도 '의미 있는 경쟁자 출현이 어려울 것'이라 예견하고 있는 내용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웅장해지기까지 합니다. ("Large LNG carriers are highly sophisticated and differentiated vessels that are extremely complex to build. Entering the market and successfully operating in it is very difficult. Several exits were observed in recent years and no significant new entry is expected.")    


한국 BIG 3가 건조하는 LNG 운반선, 척당 2천 5백억 원을 훌쩍 넘으며 1년에 한 회사당 약 20척 내외를 건조할 수 있다. (좌: 대우, 중: 현대, 우: 삼성)

LNG는, 전 지구적인 노력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2050 탄소 중립의 상황에서도 아마도 제일 나중까지 생존할 것으로 전망되는 유일한 화석 연료입니다. 최근에는 EU에서 친환경 분류체계(Green Taxonomy)에 바로 이 LNG 발전을 넣는 방안을 심의하고 있습니다. EU를 비롯한 각국에서 에너지 안보와 탄소 중립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바로 이 LNG가 점점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이 LNG 관련 기술에서 앞서 나간다는 것은 향후 무탄소 연료인 수소, 암모니아, 바이오 에탄올과 같은 친환경 에너지가 주도할 '연료 전환의 시대'에도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말이 되므로, 조선산업의 미래를 밝게 전망할 수 있는 좋은 예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가슴이 안 뛸 수 있겠습니까?


조선 산업은 2000년대 중반 짧은 수퍼사이클 이후 장기 해운 시장의 불황, 그리고 해양플랜트 사업에서의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고, 이제야 서서히 회복과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행인 건 아직도 한국의 조선 산업에게는 EU와 같은 충성 고객이 있다는 것과, 그들의 앞으로의 기대도 여전하다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합병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그것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든 안지든, 산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그저 고객의 이러한 깊은 신뢰를 양분 삼아 오늘을 열심히 살고 내일을 철저히 준비할 따름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그런 저희들을 그저 묵묵히 응원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은 평소의 필자의 글과는 달리 영어가 난무하는 골치 아픈 글이라 송구하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파*고가 있잖아요! 그렇다고, 제 번역이 파*고랑 살짝 틀려 엉터리라고 시비 걸기 없기~ 약속!


끄읕.


(이글을 읽고 조선 산업에 대한 관심이 생기신 독자분들은 필자의 브런치 북 '조선인이 쓰는 조선이야기'를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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