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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Mar 18. 2023

10평, 땅부자 되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밭 갈러 안 가우?"

"이래 가지고 입에 풀칠이나 하겠소?"

여염집 아낙네 흉내를 내자 폰을 보던 남편이 씨익 웃는다.

지난 주말 철물점에 들러서 호미 한 자루, 한 면이 코팅된 목장갑 한 묶음, 새파란 물뿌리개를 장만해 두었다.

땅을 경작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용품들이다.


3월 초, 집 근처 주말농장이 새로이 개간되어 반듯하게 구획된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분양 플래카드도 작게 걸려있었다. 연락처로 전화하니 경기도 사투리를 쓰는 어르신 목소리가 걸쭉하게 들린다. 여러 가지 궁금한 사항을 여쭈었더니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주말농장을 분양받고 싶습니다. 땅은 어떻게 정하는 건가요?"

내 질문에 동문서답 명쾌한 답이 없다. 일단 패스.

"농사 지으려면 호미, 삽도 필요한가요?"

"삽은 있어. 호미랑 조루만 있으면 되야."

"네? 조루가 뭐죠?"

"물 뿌리는 거."

"네~ 분양받으려면 얼마나 하나요?"

"10평에 00만 원."


잠깐 손익계산을 해본다. 그 금액이면 지금처럼 마트 다니면서 편히 사 먹는 게 나을 수도... 이게 다 무취미 남편을 위한 주말 일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 보약 한 제 먹인다 생각하자. 골프장 한 번 가는 돈 아니던가. 목공예를 시작하더라도 그 이상은 들 텐데... 주말만 되면 할 일없이 소파에 뒹구는 남편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결정하자. 

"분양받을게요.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내일 밭으로 와. 밭을 봐야 정해주지. 서둘러야 돼. 얼마 안 남았어."


다음날, 밭둑에 1.5톤 트럭이 세워져 있고 여러 사람들이 밭을 경작하고 있었다.

모두 나이 든 사람들이다. 어떤 분에게 다가가서 인사드리자 주인은 저기 비닐하우스 안에 있다고 손으로 넌지시 가리킨다. 휴대용 버너 주전자 믹스커피가 놓인 간이테이블과 의자, 농기구들이 어지러이 흩어진 비닐하우스 안에 할아버지가 계셨다.

"안녕하세요?" 인사드렸다.

"어제 전화한 사람이야?"

"네."


걸쭉한 목소리의 주인공답게 할아버지는 완고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포경선을 타고 먼바다로 출항하는 뱃사람처럼 제도권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인 같았다. 풍채가 좋았다.

나는 밭을 정하는 조건으로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우선 도롯가에서 되도록 안쪽으로 들어가 있고, 물통과 가까운 곳으로 정할 참이었다.

그 조건에 부합하는 밭뙈기를 골랐다. 그 자리에서 이름을 지어주었다.

풍뎅이 텃밭.

가만히 보니 퇴비 포대를 던져둔 밭들이 여럿 있었다. 우리 밭도 퇴비를 줘야 될 것 같았다.

역시나, 퇴비도 다 나가고 몇 포대 안 남았으니 서두르라 하신다.

같이 간 남편이 퇴비 한 포대를 낑낑대며 나르자 옆에 계시던 어떤 분이 재빨리 퇴비 한 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날라주신다. 감사하다. 남편은 며칠 후 다시 밭으로 가서 퇴비를 골고루 우리 밭에 뿌려두었다.


어떤 농사를 지을지 품목을 정해 본다. 열무 상추 쌈채소 오이 고추 토마토 우선 이렇게 심을 예정이다. 모종은 4월 초에나 나온단다. 열무는 씨앗 그대로 파종하면 된다. 자주색이 예쁜 고구마도 가을에 보물처럼 캐보고 싶다. 고구마는 5월 말에 심는다고 하니 고구마 밭은 일정 부분 비워두면 된다.

밀짚모자를 쓰고 호미를 든 내 모습을 자꾸 이미지화시킨다. 이제 보름 지나면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어색하지 않게 밑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처음 주말농장을 생각할 적에는 한 평 정도 고만고만한 땅에 소꿉장난하듯 재미 삼아 생산물이 나오면 좋고 망쳐도 그만이라 생각했다.  


10평은 생각보다 컸다. 초보 농사꾼에게는 광활하고 부담스럽다. 커다란 백지를 손에 들고서 가득 채워보라는 숙제를 받은 기분이다. 월별 시기별 심는 농작물이 다르고 시들지 않게 자주 물을 뿌려줘야 하고 지지대를 세우고 김을 매고 알맞게 수확할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하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벌레라도 생기면 그 식겁을 어떻게 감당하나? 내가 저지른 일 누구에게 하소연하나? 남편은 주말에나 가볼 텐데 그 많은 일들이 결국 내 차지가 되는 건 아닌가?


나는 농부의 딸이다. 성장기 논밭으로 불러 다녔다.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가 투입한 논밭으로 들어가서 할당된 작업량을 해야만 했다. 땅콩을 캐라면 땅콩을 캤다. 따고 며칠 지나면 벌겋게 익는 고추가 얄미웠다. 주말과 맞물려 고추가 익으면 어김없이 고추를 땄다. 어느 날은 질척거리는 계곡논에 맨발로 들어가서 잡초를 뽑으라며 투입되었다. 거머리가 찰싹 달라붙을까 조마조마했다. 펑크 난 스타킹을 신고 들어갔는데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시커먼 거머리가 내 발목 근처에 오글거리며 붙었다. 엄마, 울고불고 난리 났었다. 계곡논은 두 군데 있었다. 추수 무렵 베어놓은 볏단을 저지대에서 들길로 옮기는 일을 아버지는 언니와 나에게 시키셨다. 볏단 두 단을 새끼줄로 묶어서 머리에 이고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서 날라야만 했다. 시골 오일장 보고 산골 마을로 가던 어떤 할머니가 우리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걸음을 쉬어갔다. 잠시 후 새참을 내온 엄마에게 말하더란다. 아들들이 일 참 잘한다고!


보름달이 훤하게 뜬 가을밤 언니와 고구마를 캐서 리어카에 실어 날랐다. 이 가혹한 노동은 고등학교 2학년 가을까지 지속되었다. 중간고사 치르던 그해 가을 세계사 과목을 달달 외우고 있는데 아버지 명령이 떨어졌다. 내일 타작해야 하니 계곡논 볏단을 나 혼자 날라야 한다고. 이 노동에서 두 살 아래 동생과 막냇동생은 늘 제외되었다. 나만 유독 시키셨다. 속으로 투덜투덜 벼이삭이 이마를 두드려서 빨개지도록 머리에 이고 날랐다. 힘겨운 오르막 언덕을 오르내려야만 했다.


아버지는 아셨다. 당신이 공직에 계셔 부족한 일손을 셋째 딸에게 시키면 군말 없이 해내는 강직한 성격임을 아셨다. 시골 출신 남편에게 이런 얘기를 털어놓으면 자기는 그런 일 해본 적 없다고 한다.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가락을 들여다본다. 어릴 적 그렇게 험한 농사일을 한 흔적이라곤 없이 매끈하다. 남들도 믿기지 않는 눈치다. "너 온실 화초 아니었어?" 얼굴에 티라도 팍팍 났으면 좋겠다. 


그래, 이까짓 열 평 농사 내가 한 번 지어보지 뭐. 어릴 적에도 한 일인데 수십 년 공백기를 지나더라도 내 뼛속 깊이 각인된 내용이 남아있을 거라 믿는다. 이 봄 흙이 부리는 요술을 지켜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된다. 소쿠리에 갓 따온 상추를 씻어서 물기를 털고 싸 먹는 그 맛 얼마나 아삭하고 신선할까. 내 손가락이 잊고 있었던 흙을 묻혀봄으로써 더 인내하고 더 부드러운 사람이 된다면 올 한 해 큰 공부를 하게 되는 거다. 


산책길에 텃밭을 지나가는데 트럭이 서더니 농장주 할아버지가 내렸다. 그는 자신의 비닐하우스로 걸어가면서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쩌렁쩌렁 온 동네가 들썩거리게 소리쳤다. 

"어이~ 어이~"

분양받은 우리 밭 바로 옆에서 일모자를 쓰고 일하던 어떤 여자가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한다. 

뭐지? 저 소통방법은... 할아버지가 만약 나에게 저런 식으로 소리친다면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어들고 싶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친다. 걱정이 태산이다. 갑자기 소작농으로 전락한 이 기분...






올해 파종을 앞둔 우리 밭이랍니다.. 크죠?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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