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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Jun 05. 2024

아버지 전(前) 상서(上書)

음력 4월 21일,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휘영청 밝은 하현달이 오른편 하늘에 걸리어 어두운 밤길을 상향등 비추듯이 밝혀줍니다. 아버지도 그 달을 쳐다보며 고향으로 향하고 계시겠지요. 이 늦은 시각에 우리의 목적지는 집이 아닌 싸늘한 영안실로 향합니다.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야속한 달만 쳐다보고 또 쳐다봅니다.


정오 무렵 안방 베란다 창문에 시커먼 새똥이 휘갈겨져 있는 걸 보고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났습니다.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라 관리실 직원을 불러서 창문을 열고는 손을 뻗어 간신히 닦아냈습니다. 저녁에 위독하다는 통보를 받고는 경부고속도로에 올라서고 5분이 지났을까, 아버지 임종 소식을 듣고야 말았습니다. 


이틀 전 노란 장미 꽃다발을 들고서 향기를 맡으시는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꽃말 ‘영원한 사랑’만 드리고 싶었는데 그 속에 숨은 ‘이별’을 감지하듯 이렇게 빨리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죄책감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혼자서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지… 죄송합니다! 


먼 길 떠나시는 아버지 손을 잡고 “사랑합니다” 이 말을 꼭 들려드리고 싶었는데 영안실에서 뵌 아버지 모습은 평온하기만 합니다. 맑은 물에 씻긴 옥돌같이 깨끗하였어요. 저에게 그대로 물려주신 아버지의 기다란 손가락을 이제야 쓰다듬어봅니다. 나의 뼈마디와도 같은 아버지 손등에, 볼에 입맞춤합니다.


기다란 손가락은 평소 글을 읽고 쓰기를 좋아하신 아버지의 예술적 재능을 의미합니다. 

뻐꾹새 울음 몽환적으로 들려오는 초저녁 밭에서 일하시다 말고 “희야, 아카시아 꽃향기가 바람이 불 때마다 뒤척여서 너무 향기롭구나!” 휴대전화로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음성을, 감성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요.


자매들이 5주 동안 돌아가면서 간호하고 마지막 한주 간병인에게 맡겼는데 그 시간을 되돌리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고통으로 치닫는데 우리 힘들다고 외면하였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아버지가 떠나시고 나서 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왔습니다. 영전에 커다란 국화 꽃바구니를 두 개나 보내주신 분, 조문 화환은 줄지어 늘어섰고요, 자개로 장식한 ‘6.25 참전 유공자 OO지회장 OOO’ 명패를 영정사진 앞에 가져온 보훈회관 직원들은 아버지 앞에 서서 “충성” 경례를 하였습니다.


절을 하고도 다시 자리에 앉아서 아버지를 회상하는 분들은 한결같이 “훌륭하고 존경하는 분이었어요.”라고 애도했습니다. 국회의원을 지내신 올해 아흔일곱 친척 어르신은 몇 번씩 전화를 거셔서 화환과 조의금을 보내주셨고 “내가 참 아끼는 고향 동생이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현충일에는 한 번도 뵙지 못한 그 아재를 찾아뵙고 식사 대접할 생각입니다. ‘오냐, 잘했다.’ 칭찬하는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귀천(歸天)하신 지 이제 일주일째 아버지는 어느 하늘에 계신지요?

모내기를 막 끝낸 너른 들판과 저 너머 바다가 바라보이는 밭에 아버지를 모시고 보니 산기슭 인동초 내뿜는 향기가 진동합니다. 아버지의 넋을 달래주는 흰나비들이 폴폴 날아다니고 뒷산에서 지저귀는 청량한 새소리가 아버지 목소리를 들려주는 듯이 좋습니다. 


맑은 음성으로 노래를 잘 부르시고 옷걸이가 좋은 미남 아버지는 수의를 입혀놓아도 참 잘 맞으시고 훤하니 보기 좋았습니다. 꽃도령이 되어 젊어지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

묘소를 조성해 놓은 저녁 어떤 분이 주소를 물으며 찾아왔습니다.

외국에서 부고 소식받고 귀국하자마자 찾아왔다고 하시더군요.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그분은 한눈에 보기에도 절도가 있고 교양이 있는 분이셨어요.


묘소에 가서 절을 하고는 “아버지와는 특별한 관계였습니다.”라며 “존경하는 분이었어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분이었다고...

아버지가 뿌려놓은 향기를 그리워하는 분들이 묵상에 잠겨 회고했습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았기에 자식으로서 뵌 아버지 모습 외에는 잘 몰랐다는 생각이 뒤늦게 듭니다. 아버지는 한 세상 참으로 잘 사셨습니다.


아무 후회 없이, 미련 없이, 거침없이 아름다운 발자국을 남기셨고 이제 훨훨 날아가셨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하늘은 더없이 푸르르고 동풍에 밀린 새하얀 뭉게구름이 뭉실뭉실 떠다녔습니다. 오월의 마지막 주 하늘은 나흘 내내 한 점 티 없이 맑았습니다. 닷새째 저녁 비를 뿌려주어 갓 심긴 잔디를 푸릇푸릇 살려주는 걸 보면서 천지가 합심하여 큰 은혜와 덕으로 아버지를 고이 모셔가는구나, 여겨졌습니다.


제 꿈에도 얼굴 안 비치시고 어디로 그리 급히 가버리셨나요.

오묘한 빛으로 물든 천국에 지금쯤 가닿으셨겠지요.

아버지가 떠난 하늘은 한 귀퉁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게 아니었어요.

등허리로 무거운 하늘을 떠받치며 세상 원리를 가르쳐주셨기에 그 품에서 고이 자라나서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늘을 괸 아버지의 대들보는 사라졌어도 세상은 이리도 건재합니다. 


아버지가 아끼시던 페르시안 블루 마고자, 여름 린넨 재킷 유품으로 가져왔습니다. 

몇 해 전 물려주신 두툼한 우표 스크랩북은 따로 정리하여 잘 보관하겠습니다. 

입원해 계실 때 덮으시던 기모 담요는 아버지 무덤가에서 태워드렸어요.

제가 아끼던 오스트리아 산 면기모 담요인데 그걸 태울까 말까, 잠시 고민하였어요.

추억하는 유품으로 간직하려다가 아버지가 따스하게 덮고서 먼 나라 떠나시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께서 데워준 훈훈한 가슴으로 한 세상 따스하게 살다 가겠습니다.

아버지 큰 그림자 못 벗어나는 못난 자식이지만 발자취를 따르며 자연의 순리대로 살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평안히 영면하십시오!!!     







돌아가시기 이틀 전 모습
아버지 묘소에 놓인 시계풀꽃 한 다발, 아흔다섯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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