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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Sep 02. 2024

순수하게 내어주면 더 받게 된다.

안나의 집 봉사 5번째.





 이날은 좀 피곤한 데다가, 밥 먹다가 봉사시간에 조금 늦은 나 자신 때문에 기분이 좋진 않았다.

그래도 피곤한 과 무거운 마음인지. 뱃속 인지를 이끌고 안나의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기운을 내보려고 입고리에 힘을 주며 안나의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멀리서 어떤 아저씨(?)가

누군가에게 반갑게 두 손을 번쩍 들어 흔들며 인사를 하는데,

이 동네엔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시력도 좋지 않은 나는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인사려니 하며 내 갈길을 갔다.

어머나, 그런데 가까이서 뵈니 김하종 신부님이 아니신가!!


 평소 위엄 있고 점잖은 신부님들을 많이 봬서 그런지

신부님이 이렇게 아이처럼 인사해 주실 줄은 몰랐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들어오려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눈빛과 미소하며 딱 어린 아이시다. 지혜로운 어린아이.


 나 자신 때문에 다운됐던 기분이 갑자기 확 좋아졌다.






안나의 집에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지만, 신부님의 밝은 에너지를 받아 직원분들과 봉사자분들께 밝게 인사드리고 일을 시작했다.


 이곳은 니 일, 내 일이 없다. 그냥 한 팀이다.

호박 썰다가 파 다듬고, 다음 채소 씻고.

한 가지 일을 끝내면 다음에 할 일을 함께 착착 진행한다.

세상도 이런 식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배식준비가 끝나고, 컵과 수저 닦는 일을 맡았다.

설거지가 나오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식기가 몰려나오는데, 정말이지 불태웠다.

'평소에도 이렇게 열심히 살면 참으로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처음에는 콧노래를 부르며 일하다가, 나중에는 힘들어서 행동이 느려지고 아예 말이 없어질 정도였다.



 일상을 살면서 '한 일도 별로 없는데 왜 배가 고프지?'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그런데 이날은 정말이지 내가 밥 먹을 자격이 있다고 느꼈다. 그냥 식사시간이 되어서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열심히 나를 나눴기에 얻게 된 먹을 자격.





 봉사를 하다 보면 작은 도움과 나눔에도 서로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신부님께서 늘 입술에 '감사합니다.'를 달고 계셔서 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정작 부모님께는 항상 큰 것을 받아왔고,

아직도 받고 있으면서도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는지 되돌아본다.

 누군가가 건네준 시원한 음료수 한잔에 감사하면서도, 늘 베풀기만 하시는 나의 엄마인데.



 노숙인 분들에겐 신부님 따라서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의 아버지께는 30여 년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하는 많은 것들이 못마땅했고, 존경하고 사랑하지 못했다.

그동안 나의 기도와 파파의 죽음이라는 십자가, 아버지의 나이 듦 등등 이러한 것들로 인해

아버지에게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있던 차에,

노숙인 한분 한분께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랑한다는 말을 나의 아버지께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께 가서 이야기하며 함께 산책을 했다.

여느 때와 달리 함께 있는 시간이 편안하고 좋았다. 즐겁고 행복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날씨는 이글거렸지만, 마음속의 사랑이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마냥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아버지가 진심으로 좋아졌다.


헤어지기 전, 나는 용기를 내어 거의 30년 만에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도 "그래, 고맙다. 사랑한다."라고 하셨다.


 아버지께 그동안 잘못한 것들에 대한 용서도 구했는데,

오히려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냐~?"라고 하셨다.

(여기서 완전 울음이 터졌다...)

아버지께 버릇없게 했던 말과 행동들, 사랑하지 못했던 나날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한다.


 강길웅 신부님께서는 인간은 십자가를 져야 겸손해진다고 하셨는데, 파파의 죽음이라는 십자를 지고 가면서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십자가가 안나의 집 봉사로 이어지면서

십자가는 잘 지고 가면 결국 축복으로 가는 길임을 체험하고 있다.


 '내 부모님께만, 내 가족에게도 제대로 못하면서

누굴돕냐?'라고 생각했던 지난 시절.

결국 아무도 돕지 못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작은 손을 내밀면, 그 손바닥을 통해 들어오는 더 큰 사랑이 나와 주변에 흘러온다.

결국 신이 하시는 일을 도우면, 신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더 크게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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