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 님 수상소감에 부쳐
수학 과외 선생님인 우리언니는 어느 워킹맘 가정의 남매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방학 때 집에 둘이서만 지냈다. 언니는 초등학생 두 아이만 있는 집을 방문하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는 말을 해주었다. 과외선생님이 오면 초3인 남자아이는 숨바꼭질을 하듯 자기 찾아보라고 하고 누나는 '선생님' 하면서 뛰어가 문을 열어주며 반기고... 어른 한 명이 온다는 걸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고 짠하다며 말한다. 나는 그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엄마라도
엄마가 집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야
언니는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 보잘것없는 엄마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라는 것이 세상 전부인 시기를 우리는 누구나 거쳐왔기에.
언니의 그 말이 내 아픈 곳을 건드렸지만 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들과 짧지만 더 굵게 사랑하리라 다짐했고 늘 그렇게 하진 못했지만 그저 아이들의 함께 할 수 있었던 작은 순간들에 나는 감사하다. 어딘가 한 구석 가난한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엄마라는 존재들 인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 이 글을 쓰려다 중학생이 된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교 다녀와서 엄마가 없어서 엄청 허전하고 싫었지? 엄마가 그때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아들을 안으려고 했더니 쑥스러웠는지 왜 이러냐며 웃으며 나를 밀어 버린다. 나는 보기 좋게 시기를 놓친 것 같다. 아이들 키울 때는 그 순간이 영영 끝날 것 같지 않아도 그래봤자 10년인데 난 그 10년을 온전히 함께 해주지 못했다. 내 인생의 마일리지는 어디에 쌓여있는 것일까. 쌓여있기는 할까?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저를 일하게 만든 아이들이요.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는 것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한국영화 102년 역사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쥔 자랑스러운 우리 배우가 다름 아닌 윤여정 님인 것이다. 난 그 소감을 듣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 너무나 자랑스럽게도 한국의 워킹맘을 대표하여 그녀가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일종의 대리만족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서는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우승한 것만큼 믿기 어려우면서도 기쁜 일이었다. 나에게 윤여정 배우님은 그 순간 손흥민이고 박지성이었다. 나를 대신하여 그분이 세상에 이겨준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라고 말하며 오스카 상을 거머쥐고 쟁쟁한 할리우드 배우들 사이에서 위트 넘치는 수상소감을 말하는 한국의 워킹맘 배우 수상소감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전국의 모든 워킹맘들이 감격스럽게 이 순간을 즐겼으리라 난 생각한다. 이 순간 그녀는 나이고 너이고 그들이었으니까.
인생 참 공짜가 없다. 그녀가 순탄하게 곱게만 살아왔다면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거꾸로 그런 연기를 하려고 힘들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면 어느 누가 힘든 고난을 선택할 수 있을까.
배우 윤여정 님을 일하게 만든 두 아들. 말하자면 그녀는 생계형 배우였다고 고백하지만 생계를 위해 일터에 나가는 그 순간도 마음 한편 그녀는 진짜 배우로서의 꿈도 잊지 않았으리라 나는 믿는다. 또한 생계라는 절체절명의 이유로 연기의 양적 축적이 그야 말고 질적 변화를 초래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훗날 그녀가 실험적 다큐영화에도 나오고 독립영화에서도 열연하는 모습을 보며 배우 윤여정은 나이가 들수록 뭔가 더 젊고 트렌디한 선택을 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것은 그냥 일어난 변화는 아닐 것이다. 생계형과 예술가형의 구분이 명확할 수는 없겠지만 그 경계 어디에선가 그녀는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았으리라 나는 감히 짐작해 본다.
나는 그녀처럼 큰 영광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그녀처럼 생계형 직업인인 것은 같다. 20년 넘은 직장 생활을 하며 제법 큰 상을 두 번 정도 받았는데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애들 돌봐주는 시터 이모님에게 일부를 갖다 드렸다. "이모님이 애들을 잘 봐주셔서 제가 이상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 상은 이모님께서 받으셔야 합니다" 시터 이모님은 정말 기뻐하셨다. 그분도 함께 보람을 느끼셨으면 나는 바랬다. 그분의 기쁨이 고스란히 내 아이들에게 전해질 테니까 말이다.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엄마가 일을 하셨다. 학교 다녀와서 엄마가 안 계시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나는 너무 잘 안다. 하지만 나도 나의 엄마처럼 일을 한다. 내가 우리 엄마와 다른 점은 아이와 수시로 통화하고 퇴근하고 아이와 많이 소통하려고 하는 점 정도일 것이다. 나는 내가 일을 함으로 써 결과적으로 나나 내 아이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런 선택을 했지만 중간중간 아주 많이 갈등했고 흔들렸다. 중간에 2년 정도 육아휴직도 했고 복직 후 힘든 시기도 보냈다.
내 아이들 얼굴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어여쁜 시기를 지나 이제 중고생이 된 아이들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배우 윤여정 님처럼 세계적인 큰 상을 받은 영광스러운 위치는 아니지만 내가 너희들을 키우기 위해 일터와 집을 오가며 잘 키우려고 고군분투했던 그 순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너희들이 이렇게 자라는 동안 엄마마음도 아주 조금은 자랄 수 있었다고. 이것이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 라고 그렇게 말할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