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라는 책(이재복, 2010년, 문학동네)이 있다. 나는 책을 읽기도 전에 이 제목을 읽고 그만 반해버렸다. 이 제목에는 내가 막연하게 느꼈던 이야기에 대한 많은 진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밥 이재복 선생님의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깊이 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옛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Stay hungry, stay foollish’의 그 갈망(hungry)의 상태가 아닐까 싶다. 그 갈망은 다름 아닌 자신의 내면세계를 확장시키기 위한 갈망이 아닐까.
고난의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 여행을 한다. 이야기는 우리가 그런 내면 여행을 떠날 때 우리의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동화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모리스 샌닥, 시공주니어)는 어린 시절의 이런 내면여행을 가장 흥미롭게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주인공 맥스는 장난을 치다 엄마에게 벌을 받아 방에 갇히게 된다. 맥스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먼 나라로 항해를 하여 마침내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도착한다. 거기서 맥스는 괴물들의 왕이 되어 그들과 신나게 놀게 된다. 신기한 것은 그림 동화 속 여러 괴물 중에는 엄마처럼 생긴 괴물도 등장한다. 작가의 이 설정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자신을 지켜주는 동시에 가장 많은 금기를 정해주는 인물이다. 그 금기를 지키지 못할 때 아이는 엄하게 혼이 나기도 한다. 아이에게 있어 엄마는 보호자이며 동시에 무서운 괴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내면 여행을 떠난 맥스는 자기 내면에 사는 괴물들과 신나게 노닐다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내면 여행에서 실컷 놀았기 때문에 현실로 돌아온 맥스는 아직 따뜻한 수프를 먹는다. 너무나 완벽한 구도다. 4~5살 어린아이들은 주로 판타지 속에서 살다가 배고프면 밥이나 먹으러 현실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그 시기에 경험한 무궁무진한 판타지의 세계는 그 아이가 평생 할 내면 여행의 기초공사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어주고 싶었다. 딸아이는 그야말로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남다른 아이였다. 그래서 더더욱 아낌없이 동화책을 사다 읽어준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사실 그 재미로 살았던 시간이었다. 딸아이가 재밌어하고 궁금해하는 그 모습이 너무 신나서 마치 나는 이야기 사냥꾼처럼 좋은 책을 찾아 나섰던 시절이었다. 딸아이는 듣고 또 듣고 서너 권 이상의 책을 읽어줘도 늘 이야기에 고파했다. 퇴근하고 피곤한 엄마는 불을 끄고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깜깜한 방에서 아무렇게나 지어낸 나의 이야기에 눈을 초롱초롱하게 듣던 딸아이, 까르르 웃기도 하고 때론 울먹이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쨌든 책을 몇 권씩 읽어주다 피곤해지면 방에서 불을 끄고 이야기를 지어내고 지어내고 하던 시간들이 쌓여 내 이야기에 울고 웃는 딸아이를 보며 혹시 내가 정말 이야기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닐까 급기야 나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화작가과정 수업을 검색하였다. 어차피 나는 동화책을 좋아했고 동화 작가가 안된다 해도 동화책 이야기를 듣고 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전혀 손해 볼 게 없는 일이었다. 물론 수료를 앞두고 둘째를 갖는 바람에 꾸준한 모임은 할 수 없었다. 워킹맘이 용감하게 둘째를 가졌으니 동화작가라는 인생 2막의 꿈은 보류될 수밖에 없었다. 워낙 리액션이 풍부했던 내 딸아이는 나에게 또 다른 꿈을 품게 만든 나의 소중한 첫 번째 독자였다.
아이가 자라며 점점 더 긴 책을 읽어주다가 한 30분 정도 후엔 “오늘은 여기까지 읽자” 하고 책을 덮으면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하여 못 참고 책을 달라고 하여 한글도 잘 못 읽는 아이가 책을 혼자 보다가 글을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되었다.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아이가 한글을 터득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아름다운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둘째는 초등입학을 앞두고 아직 한글을 몰라서 부리나케 한글 속성 수업을 힘들게 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두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준 추억은 내게 큰 행복이고 기쁨이었다.
동화를 낭독해 주며 함께 웃고 울었던 책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백만 년 산 고양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 왜요?, 마당을 나온 암탉 등은 내가 아이보다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울었던 책들이다. 어쩌면 내 안에 아직 다 놀지 못한 어린아이가 그 이야기들을 함께 즐겼던 것 같다. 이야기는 아이들뿐 아니라 엄마 안의 내면아이도 함께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