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정콩두유 Mar 18. 2023

적어도 하루 15분, 나를 지키는 시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사랑을 고백하며 하는 여러 이야기 중 하나가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이유가 있다. 사랑에 무슨 이유가 있겠냐 만은 이것은 꽤 좋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는 이 이 이야기는 육아에도 통하는 말인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며 정말 힘든 순간에는 골백번도 나의 한계와 밑바닥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성장이 고통 없이 가능할까.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자식을 키우게 한 이유는 자식을 키우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성숙의 길로 이끌기 위함이 아닐까. 인간의 성숙은 채움에 있다기보다 비움에 더 가깝기에 말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모 중에는 자기 자식을 가리켜 ‘우리 아이는 나를 사람 만들려고 태어난 것 같아’라고 고백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자식만큼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많은 부모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 육아>의 저자 지나영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이유는 잘 키우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너무나 당연하고 이 단순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왜 그렇게 머리를 ‘퉁’ 하고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애들 학업 문제로 고심을 하던 나의 일상에 그야말로 아이를 키우는 본질적인 이유를 다시 떠올리며 다소 부끄러웠던 순간이었으리라. 사실 사랑해서 잘 되길 바라는 거고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말로 설득을 하지만 우리나라 입시교육은 좀 살벌한 게 사실이다.       

  우리가 강아지를 키우고 식물을 키우고 하는 것도 무언가 돌보고 싶은 사랑의 본능에서 비롯된 일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사랑해주고 싶어서 일뿐 그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적어도 나의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졌다. 우리 일상에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들이 너무 많지만 육아의 경우 어쩌면 부모의 사랑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내 아이는 자신이 할 바를 다 한 것일 텐데 말이다. 적어도 일상에서 빠져나와 본질을 무심하게 바라본다면 그 말이 맞긴 맞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무엇 하나 빠지지 않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 혹은 자기 앞가림은 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는 일찌감치 많은 부모가 속을 끓으며 아이들과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빠져나와 본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명상, 기도, 독서, 글쓰기, 여행, 스포츠와 예술 활동 등 많은 것이 있을 것이다. 시간에 쫓기며 사는  양육자인 엄마에게 이런 재충전의 시간은 그 누구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일상에 함몰되지 않도록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얼마일까.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일 수는 없지만 나는 경험적으로 그 최소한의 시간이 15분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나 자신과 온전히 함께 있는 시간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시간이 뜨개질을 하는 시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산책을, 누군가에게는 기도의 시간일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온전히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권투 선수는 링 위에서 싸우다가, 3분이 흐르면

세컨드가 기다리는 구석 자리의 코너 스툴로 돌아간다

그는 거기에서 1분 동안 피도 뱉고 물도 마시고 사타구니에 바람도 넣고 세컨드의 훈수도 듣고 하다가는

공이 울리면 한결 가벼워진 걸음걸이로 다시 싸움터로 나선다.

구석 자리의 코너 스툴이 없으면 권투 선수는 얼마나 고단할 것인가.     

 -이윤기, <숨은 그림 찾기 I> 중에서-          


  권투 선수의 이런 1분이 우리 일상에도 필요하다. 이따금 찾아오는 일상의 위험수위에서 공이 울리는 장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찰나의 위험성을 알아채기 위해서 말이다.

  본질과 많이 멀어지지 않기 위해 일상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적어도 하루 15분 정도 일상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은 그래서 필요한것 같다. 혼자 산책을 하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따로 떨어져 홀로 있는 시간들 말이다. 물리적으로 같이 있어도 홀로 있거나 홀로 있어도 이미 마음은 일상에 있는 것 사이의 구분을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적어도 일상에서 빠져나와 몰입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마련해 놓는 것이 결국 제정신으로 아이를 키우고 더불어 나를 지키기 위한 아주 중요한 장치인 것이다.

비행기를 타면 위기의 순간 산소마스크를 보호자가 먼저 하고 그다음에 아이에게 끼워 주라는 매뉴얼이 나온다. 나는 이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본다. 양육자인 엄마가 먼저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 아이를 케어할 힘이 생기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아이에게 먼저 마스크를 씌워 주는 게 순서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우리를 지킬 때 다른 누군가도 지켜 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적어도 하루 15분 일과 육아에서 벗어나 내가 나를 지키는 순간을 우리는 기필코 사수해야 한다. 일상에 너무 충실히 살다 우리가 본질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해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워킹맘 현실조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