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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정콩두유 Apr 22. 2023

육지 것들의 제주이야기

육아휴직 2년간의 단편적인 기록

     큰 애는 9살 막내는 6세가 되는 해였다. 예기치 않게 남편이 제주도로 발령이 났다. 대기를 걸어 놓고 기다리던 사립초에서 연락이 와서 사립초 근처로 이사를 염두에 두고 있던 그 시기라서 아이 둘을 나 혼자 키우며 주말부부가 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그 소식을 듣고 울먹였다.



나는 좋은 학교 필요 없고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고 싶어

  딸아이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었다. 무슨 전쟁상황도 아니고 가족이 같이 살자는 당연한 바람을 못 들어주겠냐 싶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오면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내가 설 자리가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을 나도 누려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육아휴직계를 내고 아이들과 약 2년간의 제주살이를 시작하였다.




요망 지다

'요망 지다'는 표준어로는 요사스럽고 망령되다는 뜻이지만 제주어로는 똑똑하다, 야무지다는 뜻이 란다. 하지만 서울에서 온 우리가 '요망 지다'는 말을 면전에서 처음 들었을 때의 그 당황스러움은 잊을 수 없다. 희한하게 우리 가족은 제 각각 제주 현지인들에게 그 말을 듣고 들어왔다. 우리말로도 영리하다는 말이 좋은 뜻이면서도 사리사욕에 밝다는 안 좋은 의미가 있듯이 요망 지다가 과연 좋은 의미만 있는 건지 우리는 어쩐지 영 석연치 않게 들렸다.  

  제주의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제주 방언을 하며 놀았고 큰 애는 제주어 노래 경연대회에서 현지인들을 제치고 입상하는 재미난 일도 있었다.

   어쨌든 요망진 육지 것들의 제주 살이는 하루하루가 즐거운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집은 제주시였지만 오름 아래에 위치한 우리 집에는 집 앞에서 이따금 뱀이나 지네가 출몰한 일도 있었고 겨울이면 집 앞에 노란 귤밭이 멋지게 펼쳐졌었다.  




삼다수 빼고 다 비싼 제주

대부분의 공산품들이 육지에서 건너오니 제주도에서 서울 물가를 생각하고 물건을 사면 큰코다친다. 다만 삼다수 생수는 제주에 공장이 있어서 서울보다 쌌던 기억이 난다. 육지 것들이 모여서 투덜대며 삼다수 빼고 다 비싸다고 말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둘이 벌다 한 명이 벌게 된 우리 집 가정경제 상황에서는 퍽이나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제주의 청량함을 떠올리면 이런 것은 그저 귀여운 넋두리에 불과하다. 동문시장 어느 갈치 파는 할머니의 인심 좋은 푸짐한 갈치 한 봉지로도 저녁상이 풍요로웠으니 제주의 인심은 그 시절 아직 넉넉했다.


 곶자왈, 에코랜드, 사려니길, 절물자연휴양림


  서울에서는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 조용해하라 잔소리만 했던 것 같은데 제주에 오면서 자연에 풀어놓으니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들렸다. 그것 자체가 내겐 힐링이었다. 30분 안팎의 거리에 천혜자연이 펼쳐 저 있었다. 사려니길과 절물 자연 휴양림을 자주 갔었는데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흙냄새와 풀향기가 주는 신성한 힘은 우리 가족을 푸근하게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처음 몇 달은 애들 하굣길에 바로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주어진 시간 동안 제주를 구석구석 누비리라 처음엔 이런 생각에 제주도 지도를 보며 개척자 같은 모습으로 체크했으나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을 떨쳐버렸다. 그냥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신비한 제주가 좋았다. 더 이상 파헤쳐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모르는 곳이 아직도 무궁무진한 그 상태가 좋았다.

  제법 정신 모차릴 큰 바람이 불던 어느 날 제주의 작은 시골학교를 다니던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 몸무게가 30kg가 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안 그랬으면  날아갔을 거야." 제주도의 큰 바람에도 다행히 우리 가족은 아무도 날아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큰 바람이 요망진 육지 것들의 자잘한 시름을 날려버렸는지도 모르겠다.



516도로 숲터널

 

  제주시에서 서귀포방향으로 가는 여러 도로 중 516 숲터널은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길일 것이다. 뭔가 영험한 느낌이 가득한 이 도로를 우리 가족은 나무가 기도하는 길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이 길을 지나며 우리는 다 같이 무언가 염원을 담아 나무와 같이 기도하곤 했다. 길에도 공간에도 나무에도 많은 기도가 담겨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결코 함부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당시 어려서 지금은 기억을 못 하겠지만 그 숲터널의 나무들은 알 것이다 우리 가족의 작은 기도 소리를 말이다.



나를 울린 해녀박물관

여자로 태어나느니 소로 태어나지

  해녀박물관에 적힌 이 글을 읽고 난 울컥했다. 제주에서의 여자의 삶이 얼마나 척박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고 동시에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의 워킹맘으로 사는 내 모습이 투영되었던 것 같다. 한 켠에는 BBC 다큐멘터리 한편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처음 물질을 떠나는 소녀의 모습,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들이 잘 담겨 있었다. 특히 제주 해녀의 폐활량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정신력과 생활력에서 기인한 것임을 보여줬다. 당연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리라.

  제주에서 본 해녀박물관이 그 어떤 세계 박물관보다 난 개인적으로 더 감동적이었다. 이 땅에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나의 정체성 때문이었을까. 땅은 척박하고 바람은 거세고 밭일에 물질에 아이들 육아에 돌하르방처럼 생긴 고지식한 남편에 난 그녀들의 고된 삶에 절로 경애를 표하고 싶었다.

  육지것들이나 바다뷰를 좋아하지 제주사람들은 바다는 그저 삶의 터전이다. 해녀의 집에 이따금 식사하러 가면서 들은 이야기다. 바다뷰 찾는 사람들은 육지것들이라는.  

  육지 사람들은 흔히 인사말로 '식사하셨어요?'를 하듯 제주사람들은 '아버지 들어오셨냐'가 인사말이라고 한다. 배 타고 나가서 워낙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보다 중요한 질문이  없었으리라. 사소한 인사말에도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러니 이들에게 육지 것들의 바다뷰는 사치일 수밖에 없다. 가족 누군가를 삼킨 바다, 그래도 어망이 몸을 던져 먹거리를 건져 올려야 하는 바다, 그들에게 바다는 때론 한스럽고 때론 겸손할 수밖에 없는 숙명 같은 존재라고 육지 것은 감히 짐작해 볼 뿐이다.



한라도서관

제주도에는 곳곳에 크고 작은 도서관이 많다. 눈보라가 치던 추운 겨울에 한라도서관을 찾았는데 따뜻한 온돌방처럼 되어있어서 아이들이 책 읽기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제주도에는 유독 워킹맘들이 많았다. 제주의 워킹맘들은 방학 때 도서관에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거기서 책도 보고 밥도 사 먹고 뭘 해도 안전하니까 넓은 마당에서 놀기도 하고 간식도 먹고 이따금 책도 읽는 도서관. 초등학생아이들에게 도서관은 더없이 좋은 기관이다.

  서울에도 도서관이 곳곳에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돌봄의 기능까지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육지 것들의 제주이야기라고 거창한 제목을 달고 글을 쓰자니 기억이 가물가물 한 것과 기억이 넘쳐나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 사이에서 무엇부터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해 이 글을 안고 몇 주를 보내버렸다. 2년의 시간은 아주 짧지도 아주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아이들의 꿀 같은 시기를 제주에서 보냈다.  

   온전히 엄마로 살아본 20개월을 제주에서 보낸 것은 참 운명적이었던 것도 같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제주에서 아이들을 훌쩍 키워 육지로 왔다. 360여 개의 오름과 4계절이 다 아름다운 제주. 비도 바람도 만만치 않지만 맑은 날은 더없이 쨍하게 아름다운 섬 제주는 우리 가족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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