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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Mar 09. 2024

엄마는 버블보블 아들은 포트나이트

너를 이해할 순 있지만

나는 공상을 많이 하는 아이였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은 많았지만 공부보다는 일기 쓰기를 좋아했고, 괜히 책상을 정리했으며, 공부를 하다가도 어느새 정신이 다른 세상에 가 있었다. 방 문 밖 부모님은 아마도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고, 적어도 노력을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기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자 답답해했다. 급기야 아빠를 닮아 머리가 늦게 트이는 스타일이라고 위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는 누가 봐도 머리가 좋은 스타일이었고, 아빠는 엄마에 비해 논리도 부족하고 숫자 감각도 떨어져서 본인의 탓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아빠는 반짝거리는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끈기와 성실함으로 박사과정도 마치면서 엄마보다 훨씬 더 긴 가방끈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아빠를 닮았다는 말은 미안함을 담고 있으면서 희망을 주는 얘기였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부모 면담을 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수업태도도 좋은데 가만히 보면 공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우개 하나를 가지고도 혼자 잘 논다고.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기도문이 생각이 났다. 


나 역시 수업시간에 얌전했으나 공상을 잘했다는 사실은 남편에게 알리지 않았다. 날 닮아 그런 것 같다는 고백도, 위로도 하지 않았다. 지우개 하나를 가지고도 잘 논다니, 그건 집중력이 높다는 얘기가 아닌가. 괜찮다. 공상을 하는 아이가 창의성이 높을 것이라고, 앞으로의 미래는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들이 6학년이 되어 게임에 빠졌다. 또래의 모든 아이들이 그러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학교수업을 어려워하는 수준도 아니었고, 숙제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게임을 하니 괜찮았다. 아직은 어린이니 실컷 놀아보는 것도 필요하고, 충분히 노는 것이 나중에 공부할 에너지를 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9학년이 되고 이제는 공부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나이가 되었는데 여전히 게임에 빠져있었다. 아들을 오랜 시간 홀린 주범은 Forthnite(포트나이트)였다. 제동을 걸지 않으면 주말에는 하루종일도 게임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여동생까지 꼬셨는지 둘이 책상에 붙어 앉아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할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들의 게임 중독도 어쩌면 내 탓일지도 모르겠다. 난 중학교 3학년 때 버블보블(Bubble Bobble)을 사랑했다. 게임 한 판에 100 원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뭔가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닌데 살면서 딱 하나 중독되었던 것을 들라면 단연 버블보블을 꼽을 수 있다. 다행히 중3 겨울방학 동안 있었던 단기 중독 증상이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천천히 수포자(수학 포기 자)가 되었던 중요한 이유에는 아빠를 닮은 머리와 버블보블 중독이 있었다. 공부에 아주 중요한 중3 겨울방학 때 수학 정석을 배우러 학원 가던 길에 친구와 오락실에 다녔으니 말이다.

 

버블보블은 버블 드래건이 거품을 발사하고 적들을 거품 안에 가두어 터트리면 되는 게임이다. 제 시간 안에 터트리지 못하면 괴물들이 벌겋게 변하고 이동 속력이 빨라져 죽이기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단시간에 처리를 해야 한다. 거품을 발사하는 것과 동시에 점프도 해야 하기 때문에 오른손 둘째, 셋째 손가락의 유연성이 필요했다. 처음엔 그저 캐릭터가 귀엽고 재미있어서 시작한 오락이었는데 얼마나 잘하고 싶었는지 친구와 둘이서 전략적으로 한 판씩을 깨 나갔다. 나는 초록색 드래건을,  친구는 파란색 드래건을 담당했고 해당 라운드에 적들이 어디에서 튀어나오는지를 다 외웠다. 라운드가 올라갈수록 혼자서는 깰 수 없이 어려운 수준이 되기 때문에 둘이서 협력을 잘해야 했다. 만약 누구 하나가 죽으면 100원짜리 동전을 바로 넣어서 플레이를 이어갔다. 돈을 얼마나 썼는지 알 수는 없으나 100원짜리 동전을 두둑이 넣어둔 주며니를 옆에 두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겨울 방학이 끝나갈 무렵 우리의 실력은 대단히 향상되었고, 얼마나 잘했는지 100 라운드까지 가는 기염을 토했다. 100라운드는 깨지 못했다. 당시 친구와 나는 공부를 이렇게 하면 서울대도 문제없는 거 아니냐며 수포자의 길이 미래에 펼쳐있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이제 공부만 하면 된다며 버블보블과 이별을 했다. 비록 공부의 열정을 버블보블의 열정으로 승화시켰지만 우리는 순발력과 끈기를 배웠고, 협력의 중요성을 배웠다. 물론 100원짜리 시드머니의 중요성도 배웠다.  


가족들과 해방촌 신흥시장에 있는 오락실에 간 적이 있다. 버블보블 게임기가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던지. 아이들에게 엄마가 가장 애정하는 게임이라며 소개를 하고 멋진 실력을 보여주려고 게임을 시작했는데 3라운드에서 바로 죽어버렸다. 역시 연습 없이 되는 일은 없다. 그게 공부던, 일이던, 오락이던. 오락실에서 나의 추억을 만나고 물성이 있는 것으로 간직하고 싶어서 미니 버블보블을 샀다. 나중에 큰 집에 살게 되면 지하층을 엔터테인먼트 층으로 꾸며야지. 홈 씨네마, 포켓볼대, 무엇보다 오락실용 버블보블 오락기를 들여놔야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손가락들이 민첩하게 움직여줘야 할 텐데 말이다. 



아이들이 나를 위해 공부를 하길 바라지 않는다. 내 꿈을 아이들에게 펼쳐 달라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간절한 꿈을 가지기를 바란다. 자유를 줄 테니 충분히 방황하기를. 하고 싶은지, 하는지 스스로 알아보는 방황을 하기를 바란다. 청소년기에 탐색의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다. 그저 앉아서 왜 하는 지도 모르는 공부를 해야했다.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가야했고, 졸업하면서 대충 맞춰 간 회사에서 돈을 벌었다. 그렇게 어른이 된 우리는 나를 찾아보는 방황의 시간이, 탐색의 시간이 부족해서 어쩌면 여전히 갈팡질팡한다. 


지금도 게임을 하고 있을 아들에게 물어봐야겠다. 

"아들아, 넌 포트나이트를 통해 뭘 배우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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