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일걸
"아들, 잘 잤어?
생일 축하해~
엄마가 어떤 케이크 만들어 놓을까?
너 먹고 싶은 거 얘기해."
"딸기 올린 치즈케이크!"
15년 전 오늘 힘겹게 아들을 낳았다. 예정일이 지났는데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병원에 갔다. 유도 분만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약을 줬다. 첫 출산이었고, 독일어도 잘 못하던 시절이라 의사가 하라는 대로, 남편이 통역해 주는 대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한국에서 오시기로 했다. 예정일보다 일주일 늦게 비행기표를 예약해 드렸는데 아이가 나오지 않으니 걱정이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 살던 때였다. 엄마가 도착하는 날 남편이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엄마를 모시러 가야 했다. 의사와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출산할 때 남편이 옆에 있어야 했는데 엄마가 도착할 시간 즈음에 아이가 나오면 어쩌나 걱정이었다. 다행히 유도 분만 약을 먹은 지 이틀째 이른 새벽에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와 나를 병원에 두고 남편은 엄마를 모시러 공항에 다녀올 수 있었다.
난산이었다. 독일에서도 아이를 낳을 때 아빠가 탯줄을 자를 수 있게 해 주는데 상황이 급박해 의사 선생님이 재빨리 탯줄을 잘랐다. 아이가 태어나면 의사는 새로운 세상에 나온 아이가 가장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엄마의 품에 안겨주는데 나는 그 Bonding을 할 수 없었다. 피를 많이 흘렸고 힘이 하나도 없었다. 산모가 안정이 되는지 지켜본 후 개인 병실로 옮긴다고 수혈을 받으며 분만실 옆 관찰실 같은 곳에 몇 시간 정도 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들은 세상에 나와 Bonding을 아빠와 했다. 아빠에겐 특별하고 엄마에겐 아쉬운 기억.
아이는 예민했고, 잠을 잘 자지 않았다. 한 시간마다 젖을 줘야 했고, 나는 잘 쉬지 못했다. 산후조리라는 개념이 별로 없는 나라였고 산후조리를 해 주겠다고 오신 엄마도 사실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이제 15살이 되었다. 키는 아빠와 엄마의 딱 중간 179cm. 이렇게 얘기하면 누군가는 엄마가 한 170cm 정도 되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키는 160cm다. 지난 한 해동안 아들 키가 딱 1cm 정도밖에 자라지 않아서 벌써 성장이 멈추는 건가 싶어 남편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리암이 쑥쑥 크더니 이제 슬슬 멈추나 봐. 작년 한 해 동안 1cm밖에 안 컸네. 190cm 정도까지 크면 좋겠다고 했는데."
아들은 농구를 좋아하고 그래서 큰 키를 좋아했다. 지금의 키도 작은 것은 아니지만 독일 사회에서는 큰 키도 아니기 때문에 좀 아쉬움이 있었다.
"내 키가 198cm고 당신 키가 160cm니까 딱 중간이네. 어쩔 수 없어."
남편의 말에 나도 모르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미안해."
"아들, 올해 생일 파티 하고 싶어? "
"모르겠어."
"올해 네 생일은 화요일이니까, 파티하고 싶으면 그 주 토요일에 하면 되겠네."
해마다 생일 파티가 신경이 쓰인다. 애가 하고 싶다고 하지 않으면 사실 땡큐다.
"엄마, 올여름에 애들이 대부분 독일로 돌아간대. 내 친구들 중에 10학년에 같이 올라갈 애들은 두 명밖에 없어."
아들은 6명 정도 되는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지내는데, 그중 4명이 반년 뒤 10학년이 될 때 독일로 돌아갈 예정이라 많이 섭섭하다고 헸다. 독일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때 치르는 Abitur라는 큰 시험이 있고, 마지막 2,3년 간은 잘 이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가족들이 10학년을 앞두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큰 그룹으로 파티를 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슬립오버 홈파티를 제안했다.
"특별히 하고 싶은 거 없으면 애들을 집에 초대해서 바비큐 하면 어떨까? 바비큐 해서 저녁 먹고, 자고 가고 싶은 사람은 슬립 오버도 하고. 애들이랑 같이 캠핑 온 것처럼 하루 자면 재미있지 않을까?"
"진짜? 괜찮은 생각 같은데? 애들한테 한번 물어볼게."
한 명씩 놀러 와서 자고 간 적은 있어도 이렇게 여러 명을 집에 한꺼번에 초대해서 슬립오버를 한 적은 없었다. 초대를 받은 모든 아이들이 홈파티 아이디어가 좋다고 했고, 그 중 네 명은 자고 가기로 했다.
제안은 쉽게 했지만 사실 장정 같은 아이들의 음식이며, 매트리스, 이불, 베개가 충분한 지, 아들 방에 다섯 명이 다 잘 수 있는지 체크할 게 많았다.
거실에서 편하게 놀라고 해도 뭐를 하는지 7명이 방에 모여 수다를 떨고 간식을 먹고 놀다가 저녁 먹을 때가 되어서야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남편이 그릴로 바비큐를 했는데, 구워야 할 양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감자, 소시지, 스테이크만 그릴에서 굽고, 나는 주방에서 베이비콘, 아스파라거스를 굽고, 전채요리로 부르스케타를 준비했다. 잘 먹은 아이들은 방으로 사라져 또 놀더니 농구를 하러 다녀오겠다며 뚱뚱해진 배를 잡고 집을 나섰다. 7명의 아이들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멋지게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파파라치처럼 따라가면서 멋진 사진이 나올 때까지 계속 찍고 싶었지만 사춘기 아이들이 싫어할까 봐 포기를 했다. 흔들린 사진이라도 남긴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 얼른 치즈케이크를 하나 만들었다. 아들 생일날 만들어줬던 케이크 사진을 보고 친구들이 먹고 싶어 했다고 해서 다시 하나를 만들었다. 케이크 위에 올릴 딸기는 맛있는 한국산으로 준비했다.
케이크까지 챙겨주고 알아서 놀다가 자라는 말을 남기고 아이들만의 파티를 위해 남편과 나는 위층 방으로 사라졌다. 아이들과 대화도 나누고 무슨 생각들을 하며 사나 듣고도 싶지만 사춘기 아이들을 귀찮게 하는 건 아들 생일 파티날 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이 9시 반에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다. 아이들 손님이 오면 잘 해주는 프렌치 크랩을 해 주었더니 누텔라를 바른 크렙에 딸기와 바나나를 넣고 두 개씩 만들어 먹었다. 얼굴을 보니 만족스런 표정들이다.
아들의 친구들이 잘 자라 주길 바란다. 부모의 이혼을 겪는 아이도 있고, 이주로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고, 여자친구와 헤어진 아이도 있고, 각자의 이유로 흔들리는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특이한 건 아무도 공부로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더 신기한 건 주변에 있는 잘 나가는 독일 아빠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공부 열심히 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녀석들도 훗날 뭔가는 하며 잘 살겠지 하는 믿음이 있다.
어쨌든 모든 아이들이 이 시간을 잘 버텨주길 바란다. 다른 나라에, 다른 동네에 떨어져 살게 되더라도 이번 주말의 파티를 잊지 않기 바란다. 서로에게 서로가 있음을 위안으로 바르게 잘 자라주길 바란다.
먼 훗날 우리 집에 또 놀러 와서 '아저씨 그 텐터로인 스테이크 다시 해 주시면 안 돼요? 아줌마, 그 고품격 치즈케이크, 특히 한국산 딸기 올려서 만들어주시면 안 돼요?' 하고 편하게 묻고 추억하는 너희들을 기대할게.
그런데 놀지만 말고 공부 좀 하면 안 되겠니?
그래 맞아. 나 한국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