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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Jun 22. 2024

당신을 만난 건 행운이에요

쉬운 이별은 없다

스콜성 소나기가 어김없이 내리고 있었다. 하필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에 말이다. 아이들에게 학교로 데리러 가겠다고 알렸다. 친구와 학교에서 놀고 오고 싶다는 루나에게 친구와 집에서 놀라고 하고 집을 나섰다. 이왕 데리러 가는 거 여러 명을 태우고 오는 게 데리러 가는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비 때문에 길이 막혀 10분이면 갈 거리를 2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아이들이 차에 탔는데 분위기가 침울했다. 점심은 뭘 먹었는지, 학교는 어땠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보는데 갑자기 루나의 친구 크리스티나가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20분 동안 크리스티나는 독일의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크리스티나의 엄마는 가족들이 그날 밤에 바로 독일로 가기로 했다고 전하면서 크리스티나의 학교가 마음에 걸렸는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라고 했단다. 여름방학까지 아직 학교가 2주 남아 있었고, 방학 첫 주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독일로 가려고 했는데 크리스티나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7월 초에 있는 루나의 생일도 크리스티나의 참석을 위해 6월의 주말로 당겨서 하기로 했는데 이번 일로 크리스티나의 참석은 어려워졌다. 루나도 많이 섭섭한 모양이었다. 


크리스티나 가족은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독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었다. 예정된 이별이었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야 한다는 소식에 아이는 놀란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가까운 사이였기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펐고, 절친의 생일 파티에 참석을 못하게 된 것과 친구들과 남은 3주를 의미 있게 마무리하지 못할 거라는 복잡한 감정에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마음이 많이 아프겠다. 가족들 따라서 할아버지를 보러 갈 수도 있고, 혼자서 싱가포르에 남을 수도 있다는 거네? 어떻게 하고 싶니?"

"잘 모르겠어요."


열두 살 아이가 하기엔 너무 큰 결정이었다.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고,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잘 모를 때는 네가 가장 후회를 적게 할 방향으로 결정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이번이 할아버지와 마지막 시간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할아버지한테 가는 것으로 결정할 수도 있고, 남은 학기를 제대로 마치고 친구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으면 여기에 남아 있어도 되고. 어떤 것도 틀린 것은 없으니까 어떤 일을 안 했을 때 더 후회할 것 같은 지 생각해 보렴. 만약 싱가포르에 남는 쪽으로 결정하게 되면 부모님이 안 계신 시간 동안 우리 집에서 지내도 되니까 그것은 걱정하지 말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을 해 주고 크리스티나를 일단 집으로 데려다줬는데 두 아이가 헤어지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어버렸다. 어떤 위로도 서러운 눈물을 진정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열두 살 아이들의 이별이, 그 눈물이 전혀 가볍지 않았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싱가포르로 이주를 결정하면서 남편과 논의했던 것 하나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3년에서 5년마다 새로운 나라로, 새로운 학교로 옮겨 다니던 아이들이 더 이상 불필요하게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렇잖아도 힘들 사춘기 나이에 나라와 학교를 바꾸면서 아이들을 더 힘들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까지 아들은 5년, 딸은 7년이 남아있었다. 직장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입장에서 우리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겠지만 남편이 하는 일에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면, 굳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일을 찾지 않는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나라에 살든지 아이들을 항상 독일 학교에 보낸 이유는 아이들에게 적어도 교육환경만큼은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싶어서였다. 거기에 더해 사춘기의 아이들이 안정적인 환경 안에서 친구들과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성장하라는 의미에서 싱가포르에서 오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 친구들이 이주할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싱가포르 독일 학교는 규모도 크고, 코로나 이후 상황이 나빠진 독일의 공립학교 보다 수준이 낫다는 소문이 있어 12학년까지 마치고 돌아가는 독일 가정이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직장 때문에, 혹은 고등학교의 마지막 2-3년을 본국에서 마치게 하려는 부모들 때문에 여전히 이주가 많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인생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준비를 한다고 해도 막을 없는 일들이 생긴다. 


미국에서 독일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교의 한 아이가 친구들이 자꾸 떠나가는 일을 몇 번 겪더니 더 이상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않겠다고 부모에게 선언한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초등학생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얼마나 많은 이별을 경험했으면 마음의 문을 벌써 닫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에 내 아이들은 어렸고, 또 우리 가족은 언제나 떠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남겨진 아이의 마음을 깊이 생각해보지는 못했는데, 이별은 떠나는 이에게도, 남겨진 이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크리스티나는 결국 할아버지를 뵈러 일단 독일로 가기로 결정했다.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게 맞는 결정 같았다. 독일로 갈 짐을 싸고 저녁 비행기까지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있다는 크리스티나의 연락에 동네 커피빈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달한 음료 두 개를 사고 루나를 친구 집에 데려다주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도 조금은 달콤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집으로 들어오는 도로변에 예쁜 노란색 플루메리아가 피어있다. 러브하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플루메리아는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꽃으로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는 하지만 '당신을 만난 건 행운입니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인연인 루나와 크리스티나가 서로의 만남을 행운이라고 여기며 다른 나라에 살더라도 우정을 예쁘게 키워갈 수 있기를 바란다.  


Plumeria(플로메리아, 러브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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