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는 주로 오후나 저녁에 몰려있는 양상이다. 아무래도 병원에 시간을 내어 오시는 것이 오후가 조금 더 편하시기 때문일지. 네이버 예약을 보면, 새벽에 예약을 하셨다가 다음날 아침에 취소하시는 경우가 꽤 자주 있다. 혹시 새벽에는 도저히 안되겠다, 도움을 받아야겠다 진료를 예약하셨다가. 아침이 되면, 그래도 오늘은 버텨봐야지 다짐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은 진료실에 방문하신 분들만 만나게 되었는데 네이버 예약을 통해서는 병원 방문 전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 간접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는 것도 같다. 물론 당연히 예약 취소가 내게 반가운 소식은 아니지만. 그 망설이게 되는 마음도 상당 부분은 진료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개원과 관련된 긴장감이 풀리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온다. 아무래도 지금은 출퇴근 시간이 거의 왕복 네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이전에 비해 근무 일수가 늘어난 영향도 있는 것 같다. 개원을 준비하면서는 마음이 힘들어서였는지. 개원보단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진료 고민만 하면 되는 봉직의가 좀 더 나은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개원 자체에 대해 후회를 하거나 하진 않는다.
화장실 휴지를 교체하거나, 식물에 분무기로 물을 준다거나, 우편함을 체크하고 공문에서 지시하는 사항을 처리한다거나, 약의 재고를 확인하고 주문하는 일. 청구를 하거나 경비를 계산하는 일 등을 하는 것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 자영업자로서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기분이랄까. 할 줄 아는 것이 늘어나면서 은행을 직접 방문하거나, 엔진오일을 갈기 위해 카센터를 방문하는 일이 다소 귀찮지만 큰 저항감은 없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내가 스스로 일 인분을 어떻게든 해내고 있다는 묘한 자기 통제감이 드는 것도 같다. 개원이야 아무래도 높은 확률로, 정말 큰일이 벌아지지 않는 한, 내가 아주 나이가 들어서까지 지속할 일이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있다고 믿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생각해 보니 엔진오일을 갈아야 했는데 지금으로선 카센터에 방문할 시간이 없다. 지금까진 직접 오일과 필터를 주문해서 집 앞 카센터에서 교체했었는데, 지금으로선 가능하지가 않다. 엔진오일은 사실문제가 아니다. 어린아이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병무청에서 근무하거나, 오산에서 근무하면서 평일에 이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참 좋았는데. 벌써 한 달이 되고 나니. 아이들이 처음엔 아빠가 집에 오질 않는다며 아쉬워하더니. 이제는 아빠를 찾지 않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주호는 내가 오후에 출근하는 목요일이 되면, 오늘은 아빠가 유치원을 데려다주는지 내게 묻는다. 당연하지. 하고 대답하는데 아이에게 미안하다. 아침 30분, 저녁 30분만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절대시간이 너무 모자라다. 주 6일 출근을 하니 일요일엔, 녹초가 되어서 왜 나의 아버지가 주말에 침대에 누워계셨나 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나는 어려서 그런 아버지에게 서운하다고 생각해왔다. 내게 관심이 없으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엔진오일은 사실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