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원 Feb 22. 2024

열성 경련과 잡채 같은 수면 위생


 아이들 케어를 잘 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했다. 봉직의 시절엔 주 4일 근무하는 일정이었는데, 지금은 주 6일을 출근하니. 내가 집에서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 이제 다섯 살인 둘째 승하가 열성경련을 했다. 승하의 열성경련은 작년에 한번, 올해 한번 해서 총 두 번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다 내가 없었다. 작년엔 예비군 동원 훈련 중이었다. 늦은 밤에 고열과 경련이 동반되었다고 들었다. 도중에 귀가를 하기도 어려워서, 주변 소아과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 느꼈던 무력감이란.


 지난주엔 근무시간이었다. 장모님은 갑자기 경련을 하는 승하를 보고 놀라셔서 근처 놀이터부터 소아과까지 아이를 들고 달리셨다고 했다. 마침 동네 소아과 선생님이 잘 케어해주셨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정도다. 열성경련이라도 반복되면 뇌전증 확인을 위해 뇌파 등 검사를 해봐야 하는 것인지. 친구는 복합 열성경련으로 볼 기준엔 들어가지는 않는다고 알려주었는데,  나는 그 기준에 해당되지 않으니 안심하고 검사를 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검사를 한 대도 나나 아내가 함께 하기 어렵고, 장인 장모님께 부탁을 드려야 하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지난주 경련이 있던 날, 마지막 예약 진료가 끝나고 빨리 집에 돌아갔는데. 많은 일을 겪었던 승하가 참 기운 없어 보였다. 


 일을 마치면 뭔가 채무가 있는 사람처럼 쫓기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인가 귀가를 서두르게 되고, 또 미안한 마음에 더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려고 하는데 지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괜히 그것이 어떤 짐처럼 느껴져서 버겁다는 생각도 든다. 또 이런 상황을 당장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무력하기도 하고, 또 화도 난다. 지난 주말엔 아이들이 싸우는 소리뿐만 아니라 그냥 늘 하는 재잘거림도 너무도 날카롭게 들렸다. 마치 칠판을 긁는 소리처럼  내 신경을 긁는듯했다. 도저히 한자리에 있기 어려워 자리를 피하기도 하고 산책을 나가기도 하다 결국 나중엔 별로 심각한 일도 아닌데 아이들에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고는 마음이 또 얼마나 불편한지. 아랫집에서 경찰에 신고한대도 할 말이 없었을 것 같다. 적당히 좋은 아빠도 못하겠다.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우리 부부와 주호 승하는 안방에서 같이 잔다. 신혼 초에 샀던 퀸 사이즈 침대의 프레임을 버리고, 바닥에 매트리스를 두었다. 예전에 주호 방을 꾸미면서 싱글 킹사이즈의 매트리스가 있었는데 그 두 개를 붙여서 침대를 넓게 사용하고 있다. 그 넒은 침대에 우리 넷에, 강아지라고 하기엔 다소 큰 단추까지 함께 잔다. 처음엔 우리 가족도 분리 수면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이가 크게 되면서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여름엔 안방과 거실에만 에어컨이 있기도 하고, 또 나중엔 승하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에, 잠을 잘 때 라도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되고, 몇 해가 지나도록 여전히 우리는 같이 잔다. 적절한 독립에 대한 걱정보다는, 조금이라도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열이 많아서 그런가 나도 그리고 아이들도 자면서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다. 일어나면 나 주호 승하 그리고 단추까지 엉켜있다. 왜 머리를 위로 두고 잤는데 나는 위아래로 뒤집힌 것일까. 어느 쪽에 주호가 있었더라 어느 쪽에 승하가 있었더라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는 그래서 우리 가족은 잡채처럼 잔다고 한다. 자기 전에도 시금치 어디 있니. 목이버섯 어디 있니 하고 장난을 친다. 


 여전히 죄책감에 가득하고 또 우울하기도 한 며칠 전이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여전히 좋은가 보다. 주호는 이불을 돌돌 말아 내 왼쪽 옆구리에 착 붙었고, 승하는 습관적으로 발을 내 허리 아래 묻고 잔다. 꼭 무거운 열매를 주렁주렁 단 나무 같다. 그 와중에 단추까지 내 다리 즈음에서 제 목을 내 정강이 위에 올려두고 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아빠도 아이들은 아빠라서 좋은 것일까. 


나는 내가 아이들을 챙긴다고 생각해왔고, 그래서 그것이 좀 버거울 때도 있다고 생각했다만. 어쩌면 내가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아이들이 나를 더 어쩌면 간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에서 자라서 모성애와 부성애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만, 어쩌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이 아닐까. 그런 장면을 진료실에서 종종 마주치기도 하는데.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나고, 무겁다고 생각한 마음의 짐도 더 이상 짐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자신엔 오해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