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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Feb 08. 2024

나 자신엔 오해가 있다


 이슬아와 남궁인의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를 읽고 있다. 무엇인가를 써도 좋겠단 마음이 문득 든다. 어느 때엔 나의 글이 무의미하게, 때로는 구리게도 느껴지는데,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나뿐은 아니구나, 이런 사람들도 다 자신의 구림과 타인의 구림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쓰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용기를 얻었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물론 그들은 재능이 있고 또 성실하지만, 굳이 어떤 대단한 재능이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의미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엔 이들의 글이, 얼마 전엔 정지우의 글이 그랬다. 어떤 대단한 의미를 벗어난 것. 그럼에도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했다.  


   최근의 정신 치료시간에 버티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재원 선생님은 워낙 버티는 것에 일가견이 있지 않으십니까'하는 분석가 선생님의 해석이었다. 분석가 선생님이 그렇게 보셨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나는 그동안 내가 잘 버틴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아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과 실제의 내 모습은 꽤 다르기도 하겠지. 처음엔 의아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자 슬슬 떠오르는 일들이 있다. 인상적인 기억 인터라 아마 치료 시간 중 몇 번인가 언급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이야기해 볼 수 있을만한 기억은 구와 함께 지리산 종주를 했던 일이다.  20대 즈음이었고 여름 방학이 며칠 남지 않은 기간이었다. 마침 구가 떠올랐는데 구는 운동신경이 좋기도 했고, 몇 해 전인가 미니벨로를 타고 혼자 서울에서 출발해서 태백산맥을 넘었다고 했다. 구와 함께 지리산 종주를 계획했다. 보통은 같은 코스를 3박 4일 일정으로 잡는듯했는데, 한창 혈기왕성한 시기여서 무리하게 2박 3일 일정으로 잡았다. 스틱이라도 있었으면 체중이 좀 분산이 되었을 텐데 당시엔 그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기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구와의 산행은 초반엔 비교적 순조로웠으나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짠 계획상 다음 산장(대피소)까지 걸어야 하는 일정이 정해져있었다. 문제는 각 구간별로 코스를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산 길 한가운데서 자고 싶지 않다면, 코스가 닫히기 전에 서둘러 다른 구간으로 움직여야 했다. 나는 정해진 시간이 있으면 어떻게든 그것을 마무리해야 하는 사람인지라 구를 재촉했지만, 구는 지쳐서 더는 걷기 어렵다고 했다. 아무리 여름이지만 대피소에 이르지도 않고 산길에서 잘 수는 없으니, 어르고 달래다 나중엔 구를 닦달해서 일정대로 원하는 대피소에 도착했다. 


 노지 숙박은 피했지만 그전엔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던 구와의 관계가 한동안 서먹해졌다. 방학기간 동안 어떤 성취감을 위해 했던 일이었는데, 서먹한 것만 생각나고 그다지 만족스럽거나 기쁘지는 않았다. 구는 내 어떤 모습에 지치기라도 한 것 같았다. 비슷한 사건이 몇 가지가 있다. 함께 공부를 하던 친구라든지, 아님, 함께 제주도에 자전거 여행을 떠났던 친구와의 일이라든지. 나의 지독함에 주변 친구들이 질려 하는 경우라고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같은 패턴의 일들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 내가 잘 견디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보다 더 지독한 이들이다. 그들은 내가 스스로를 의지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규칙적이고, 한편으로는 자기 착취적이기도 한 사람들인데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감명을 받는다. 감명을 받는다는 생각은 조금 이상하고, 영향을 받는다. 그러곤 그런 그들과 비교해 나 자신에 대해 참을성과 끈기가 부족한 사람인 양 생각한다. 이런 내 모습을 두고 누군가는 좀 의아하다고 생각하겠지.


 나는 스스로 왜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마도 나의 실패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일 텐데. 그럼, 왜 나는 나 자신의 실패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인지. 너무 개인적인 일이라 쓰고 싶지 않다. 해석을 듣고 나서도 보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다. 때로는 소중한 비밀이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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