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라온 안성의 본가에는 높지 않은 산이 있다. 차를 타고는 근처 약수터까지 올라갈 수 있어서 아이들과 약수터만 다녀오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좀 더 걷겠다고 해서 어쩌다 보니 정상까지 오르게 되었다. 주호는 혼자서 벌써 산을 잘 오르는 아이가 되었고, 승하는 내가 절반 정도는 안고 올라가야 했지만. 벌써 아이들과 등산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회가 남달랐다.
아이들은 내가 하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재주가 참 없달까. 좀처럼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데, 그래도 아이들은 내가 하는 이야기가 즐거운 모양인가 보다. 전공의 시절, 새 모양의 드론을 사서 날리다가 드론이 호수에 빠져 호수에서 들어가서 그 드론을 건져올린 이야기라던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 놀림받을까 봐 2박 3일 캠프 기간 동안 화장실에 가지 않았는데, 그게 화근이 되어 응급실에서 관장을 받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뭐가 좋은지 키득키득 웃는다. 아이들은 아직 이야기를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뭐가 할 말인지 하지 말아야 할 말인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인 장모님께, 아빠 어렸을 때 병원에서 똥 쌌대요 하고 웃고 도망간다. 내가 난감해하자 아이들은 그게 더 재미있는 모양이다.
산을 오르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 어려서는 동네에 키즈카페 같은 건 잘 없었단 이야기. 그래서 어려서 아빠의 할머니나 아빠 엄마와 함께 이 산을 자주 올랐다는 이야기. 어려서 할머니께 배운 동요 이야기. 산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산에 오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산 정상에 적어도 100번 정도는 올랐던 것 같은데. 어려서는 그 산이 참 높다고 생각했는데 동산 정도의 높이였나 싶기도 하다.
정말 할 일이 산 오르는 것뿐이어서 그랬는지. 아님 그것이 일상적인 일이었는지 어려서 산을 자주 올랐다. 어려서는 할머니와 산을 오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시절 함경북도 이야기, 전쟁 이후 어떻게 고생하면서 지내셨는지. 그 뒤로 자식들을 어떻게 키우게 되었는지. 하는 이야기들. 학창 시절엔 체중을 조절하겠다고 방학 때 매일 같은 산을 오르기도 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먼 곳에 가서 산을 오르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집에 들어가지 않고 친구와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새벽까지 산을 넘은 적도 있다. 나는 핸드폰은 없었고, 워낙에도 독서실 끝나고 늦게 들어가곤 했으니. 내가 늦게 들어와서 알아서 자고 있을 것이라고 부모님은 생각하고 계시지 않았을까. 새벽에 다섯 시간가량 산길로 이동한 곳에서 친구와 일출을 보고,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 아침에 전화했던 기억이 난다. 비행이라면 비행인 셈이지만, 내가 없다는 사실을 채 들키지도 않은 심심한 비행이다.
산을 오르는 것은 일상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등산을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개념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이사도 하면서 산을 가는 것이 이전처럼 쉽지 않게 되었다. 최근에야 아이들과 산을 오르고는 아 나는 등산을 많이 했고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새삼 나에 대해 뭔가 알게 되다니.
글을 쓰다 문득 생각이 나서, 고등학생 시절 야밤에 산행을 함께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신기하게도 둘 다 안성에서의 어린 시절을 만족스러워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둘 다 아이들을 안성에서 키우기는 망설여진다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