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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May 29. 2024

변죽을 울리는 휘발될 마음


 왜 한동안 무엇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을지. 아니면 조금 다르게, 오늘은 어쩌다 뭔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오래간만에 조금이라도 무엇이라도 적어보려는 마음으로, 펜과 노트를 찾아 써보려는데 잉크가 눌어붙어있었다. 잉크를 채우는 짧은 시간 동안 뭔가 쓰고자 하는 그 마음이 날아가 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며 초조해했다. 아마도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어제 잠을 충분히 잤기 때문인듯하다. 어제 9시에 온 친구의 카톡을 읽지 못했으니 어제의 수면시간은 충분했다. 

 주 6일의 근무 시간이 나를 갉아먹는다. 처음엔 높은 병원의 유지비가 신경 쓰이기도 했고, 나의 선배들도, 그리고 윗세대도 당연하다는 듯 주 6일을 일하시니 나도 주 6일 근무를 해야지 싶었다. 근무일수를 줄이겠다고 하면 내 주변인들이 나를 mz 의사라고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초반엔 그럭저럭 견딜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피로가 누적된다. 오래간만에 낀 공휴일에 낮잠을 하루에도 두 번씩 자고 나선 주 6일 근무에 대해, 오래 지속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일수를 줄여보고자 한다. 당장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언젠가 부원장님을 모시면 그때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그때는 테니스도 다시 시작해 보고 혹시 악기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괜히 했다. 그전까지는 하루하루를 슬기롭게 보내야 한다. 요즘은 아이들이 자는 9시에 함께 자고 6시가 7시에 아이들과 함께 일어난다. 

 분리 수면은 완전히 실패했다. 이사한 집의 안방엔 퀸 사이즈 침대가 하나 두었다. 잠을 자면서는 아내는 침대 위에서, 나와 주호 승하는 바닥에서 잠을 잔다. 아내는 새벽 5시 즈음에 일찍 출근하고, 내가 6시쯤에 정신을 차리면 아내는 침대에 없고 승하가 침대에 올라가있다. 나도 침대로 옮겨서 잠을 더 자다 보면 어느새 주호도 침대 위로 올라온다. 꼭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면서 지내는 곳을 바꾸는 것처럼, 침대로 기어오른다. 

 최근의 출퇴근길에선 손때가 잔뜩 묻은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고 있다. 문득 다시 읽게 된 것은 애도에 대한 어떤 마음이 책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뭐였을까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읽는 과정에서 처음의 궁금증은 어느샌가 잊어버렸다. 오랜만에 아 맞다. 내가 이런 등장인물을 참 좋아했었지. 아 이런 인물들이 이런 말을 했었지 하는 것이 꼭 동창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것처럼 반가웠다.   

  때로는 진료와 관련된 꿈을 꾼다. 보통 하루 대부분을 생각하는 것은 내 앞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사람에 대한 내용인데 그것을 쓸 수는 없으니 글을 쓰면서 소재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때때로 나를 떠올린다. 나는 주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사람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하고는 떠난다. 이야기할 결심을 하고 병원을 찾아와 이야기를 하고 떠나는 사람들. 어제는 문득 화양연화의 앙코르와트가 떠오르기도 했다. 진료실에 티슈를 교체할 때마다 그래도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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