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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Jun 09. 2024

엄마로서 특권

It's good to be a mom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참 고됩니다. 아이가 갓난쟁일 때는 몸이 힘들지요. 저희 큰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상당히 예민했습니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잘 안 잤습니다. 한번 깨면 밤새 업고 있어야 할 때도 많았지요. 한참을 업고 있다 너무 힘들면 엉덩이를 책상에 살짝 걸쳐봅니다. 이 녀석은 몸에 중력 탐지기를 달고 태어났음에 틀림없습니다. 제 엉덩이가 책상에 닿는 찰나 어떻게 알았는지 '으앙'하고 목청 높여 울기 시작합니다. 순간 놀라 일어나 살짝살짝 흔들며 걷다 보면 울음이 잦아듭니다. 날밤을 새고 경기도 안양 집에서 서울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일 년여 동안 계속했습니다. 그 시절 제 꿈은 아주 소박했어요. '중간에 깨지 않고 저절로 일어나질 때까지 쭉 자보기.'


아이가 취학 아동이 되니 잠을 실컷 잘 수 있고 몸도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지요. 이제 마음고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본래 저는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를 쓴 가수 이적의 엄마이자 여성학자 박혜란 박사 같은 '쿨한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박혜란 박사는 아이들 학업에 신경 쓰지 않고, 본인 공부와 일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막내아들이 고3 때는 수험생 뒷바라지는커녕 중국에 가서 지내게 돼 아들이 직접 도시락 싸고 형들 밥 차려 주며 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엄마가 공부해라 닦달하지 않고 믿어주니 아들 셋이 잘 자라 모두 서울대에 갔다니 이 얼마나 쉬운 육아법입니까.


그런데 슬픈 진실은 이론과 실전 사이의 큰 괴리에 있지요. 책만 열심히 읽어주면 따로 글을 가르치지 않아도 한글을 쉽게 뗄 줄 알았습니다. 저희 아들들은 청소년이 된 지금 한국말을 잘 알아듣고, 영어를 섞어 쓰긴 해도 일상대화는 가능합니다. 집에서는 한국말만 써야 하는 규칙이 있거든요. 그런데 읽기, 특히 쓰기는 유치원생 수준도 안됩니다. 읽기, 쓰기에 따로 노력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수학의 경우도 학교에서 배우며, 스스로 동기부여돼 경시대회 수학 문제집을 열심히 풀 줄 알았지요. 하지만, 이런 '굉장히 멋진 일'은 저희 가정에 절대 벌어지지 않더군요. 아들들은 숙제도 최대한 수업 시간에 다 해옵니다. 집에서 따로 하는 수학 공부라고는 시험 볼 때 가능한 최소 시간을 투자하는 게 다입니다. '아이들은 지극히 정상인데, 다만 내가 박혜란 박사가 아닌 게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종종 들긴 합니다. 


여기까지만 읽으시면 이게 무슨 '엄마의 특권'이야라고 실망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출산 시대에 출산을 장려하기는커녕, 젊은 부부들이 애 낳기 두렵게 만드는 글이라고요. 그런 마음이 드셨다면 머리 숙여 공손히 사과합니다. 물론 부모가 되는 일은 몸도 마음도 고된 선택입니다. 엄청나게 큰 책임이 따르죠. 하지만, 누군가 제게 다시 태어나도 애를 또 낳겠냐고 묻는다면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Of course... 물론"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갓 태어나 눈도 못 뜨는 아이가 얼굴을 제 가슴에 파묻고 젖을 빨 때, 이 세상 어디에서도 겪어보지 못할 '연결됨이라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저는 매일매일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세상 사람들에 친절하려고 노력합니다. 영어는 못하지만 용기를 내 손을 들어 질문을 하고, 아무도 먼저 제게 말 걸지 않는 그룹 안에서 제가 먼저 다가갑니다. 기회가 닿는 데로 자원봉사에 참여합니다. 재취업이 잘 안돼 많이 좌절스럽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옛 속담에 "애들 앞에서는 숭늉도 맘대로 못 마신다"라고 했던가요. 제 삶의 목적은 그저 '아이들 앞에서 숭늉 마시지 않는 엄마'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아마 지금보다 더 보잘것없는 사람이 됐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는 크나큰 혜택을 입은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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