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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인 Oct 05. 2020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만난
나의 이야기

매달 피를 흘리며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보내는 10월의 편지

월경이 시작되기 직전이나 월경이 시작되었을 때 몸과 마음을 살필 수 있는 여유 있는 상태라면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실행하지 못했던 일들이 문득 떠오른다. 반년 이상을 매달 그 시기에 볼 수 있는 마음속 어떤 장면들이 있었고 그렇게 월경 주기마다 무언가를 용기 있게 도전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를 기꺼이 사랑해줄 수 있었다. 


지난 9월, 코로나가 다시 심각해지면서 멈춰야 했던 일상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었고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없었다. 일어나지 않은, 진실이 아닌 부끄러운 마음이 담긴 이야기들을 친구 F에게 거르지 않고 꺼내면서야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요즘의 나는 엉엉 울고 싶었다는 것을 알았다. 울음을 터뜨리고 나니 솟아있는 줄도 몰랐던 어깨가 무겁게 땅으로 축- 가라앉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몸에게서 올여름 태풍처럼 거친 월경통을 담은 편지를 받아 보았다.


한의학에서는 우리에게 (喜희 怒노 憂우 思사 悲비 恐공 驚경) 기쁨, 화남, 근심, 지난 친 생각, 슬픔, 두려움, 놀람이라는 7가지 감정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일곱 가지 감정 중에 내가 온 마음을 다해 반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쁨(喜 희) 뿐이다. 이 일곱 가지 감정들은 몸의 특정부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나는 단 한 가지 감정만 반기고 온전히 느끼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머지 자리에는 여섯 가지의 감정들을 경험하고 싶지 않아 이리저리 도망가는 내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그런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찾아온 감정들을 온전히 마주하지 않고 지나가려 할 때,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할 때, 이것들은 몸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그것은 몸 안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우리의 경우 월경통, 월경전 증후군으로 그 신호가 나타나기도 한다.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요즘 나에게 찾아오는 것들을 피하고 감추려 애쓸 때, 나는 유독 월경통이 평소보다 불편하고 거칠게 느껴진다. 


화남, 근심, 슬픔, 두려움 그 자체는 어서 빨리 그곳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하는 감정이 아니다. 기쁨처럼 온전히 받아들이고 적절하게 걸러낼 수 있을 때, 우리 몸의 특정 부위들도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불편한 감정들을 경험하는 나를 뒤에서 묵묵히 바라봐줄 수 있는 무겁고 용기 있는, 친절한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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