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웃고 있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한테는 꽤 낯선 장면이다. 아버지는 원래 그런 분이 아니었다. 과묵하고, 표현이 없고, 칭찬 한마디가 왜 이렇게 어려운 분인지. 어릴 때 나는 그게 좀 서운했다. 근데 손주 앞에서는 달랐다. 아이가 옹알이 한마디 하면 박장대소를 하셨다. 목소리도 올라가고, 눈도 작아지고. 내가 평생 본 아버지 미소를 여기서 다 본 것 같았다.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는 투명인간이 됐다. 아들이 왔는데 아들은 안 보이고 손자만 보이는 것이다. 섭섭하냐고? 뭐, 이제는 익숙하다. 아이를 안은 어머니 얼굴이 그렇게 환해지는데 섭섭할 틈이 없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한테 손주란, 어려진 자식이 돌아오는 게 아닐까. 이 아이를 보면서 젊은 날의 나와 내 형제들이 보이는 거 아닐까. 기저귀 갈던 밤, 재우려고 등 토닥이던 새벽, 그 수십 년 전의 장면들이 손주를 통해 다시 펼쳐지는 것. 기쁜 건지 그리운 건지 모를 그 감정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것.
딱히 근거는 없다. 부모님한테 직접 물어본 적도 없다. 우리 집은 그런 걸 대놓고 묻는 집안이 아니라서. 그냥, 아이를 안고 있는 부모님 얼굴을 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보면 특히 그런 생각이 강해진다.
아이 손을 잡고 뭔가를 중얼중얼하고 계셨다. 나한테는 평생 그렇게 말을 건네신 적이 없는데. 작은 손을 잡고 저렇게 다정하게. 그 모습이 좀 낯설고, 또 좀 웃겼고,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럽기도 했다. 나 어릴 때도 저러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가. 근데 뭐, 지금이라도 저러시니 됐다. 손주한테 쓰시는 다정함이 결국 내 자식한테 가는 거니까, 돌고 돌아 나한테도 오는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서 잘도 논다.
부모님은 아이를 통해 뭔가를 다시 살고 있는 것 같고, 나는 그 옆에서 처음 보는 부모님 얼굴을 구경하고 있다. 이게 또 육아의 한 장면이구나 싶다.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나는 조연이다.
뭐, 괜찮다. 아이가 잘 크고 있으니.
오늘도 부모님 댁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금방 잠들었다. 실컷 놀아서인지, 실컷 사랑받아서인지. 아마 둘 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