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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쌤 Feb 01. 2024

[북 리뷰] <파우스트>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인간에게 구원이란 무엇인가’

    

한 줄 평 : 행위를 통한 삶의 투쟁이 보여주는 인간의 "구원" 

              

서지 정보

출판일: 2020년 6월 9일(1판 10쇄)

저  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독일)

역  자: 이인웅

출판사: 문학동네

가  격: 15,000원 (정가)

분  야: 고전 소설   

분  량: 1권 302p, 2권 493p

       

파우스트 줄거리              

 파우스트는 평생을 학문을 통해 깨달음과 앎을 추구했던 존경받는 노학자다. 그는 평생에 걸쳐 다양한 학문을 공부했으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함에 빠진다. 허무함 속에서 파우스트는 영혼의 구원을 바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던 와중, 변장을 해서 방에 들어온 악마 메피스토텔레스와 계약을 맺는다.

 악마 메피스토텔레스는 파우스트에게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쾌락이야말로 영혼을 구원해 주리라 장담하했다. 이에 파우스트는 자신이 그런 쾌락에 만족하여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을 하면 곧장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도 된다고 하였다.

 메피스토텔레스는 허무함에 빠져있는 괴테에게 '육체적 쾌락과, 명예와 권력 그리고 부'의 극한을 경험하게 해 준다.          


 <비극 1>

 첫 번째 비극에서 파우스트는 단지 육체적 쾌락으로는 영혼이 구원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메피스토텔레스는 가장 먼저 마녀에게 파우스트를 데려가서 파우스트에게 젊음을 다시 되돌려줍니다. 젊음을 되찾은 파우스트는 순수한 마가레테 (그레헨)을 꾀어내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 후 파우스트는 마가레테의 오빠를 죽이고 마을을 떠난다. 마가레테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강물에 빠뜨려 죽인 후 감옥에 갇힌다. 파우스트는 감옥에 갇힌 그녀를 구출해보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죗값을 받는다고 하며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비극 1부가 마무리된다.          


<비극 2>

 비극 2부에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텔레스의 도움으로 재정난에 처한 왕의 문제를 해결한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국가의 일을 처리해 내면서 왕의 신임을 얻는다. 파우스트는 왕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 고대의 헬레나와 사랑에 빠져 고대에서 파우스트는 헬레네와 결혼하여 '에우포리온'을 낳지만 에우포리온이 죽게 된다. 에우포리온이 죽은 후에 다시 현재로 돌아온 파우스트는 다시 한번 국왕을 도와 전쟁을 승리한 공으로 바닷가의 토지를 하사 받고 사람들로 하여금 바닷가를 간척하도록 지시한다. 높은 곳에서 간척 사업을 바라보던 파우스트는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수백만의 백성이 간척을 하며 삶을 일구어내는 모습을 보며


라고 말하며 눈을 감는다.     


이 책의 특징     

 파우스트는 극본의 형식으로 되어있어서 일반적인 소설이나 인문 서적들과는 다른 요소들이 많았다. 그 점에서 독서를 할 때 약간 생소했던 점들이 특히 많았기에 짚고 넘어가 보려고 한다.     


1. '노래''합창'부분이 많이 나온다.

 - 사실 '비극'이라는 장르는 현대인에게 너무 생소한 장르다. 현재 우리는 비극을 단순히 '슬픈 이야기'정도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 비극은 합창단이 나타난다. 비극에서 대체 왜 합창단이 나오는가?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헌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의 처녀작 '비극의 탄생'에서

비극이란 원래 비극 합창단을 말한다.


라고 말한다. 비극은 단순히 주인공이 죽거나 슬픈 내용의 연극이 아니다. 비극은 고대 그리스의 공동체 정신을 이루는 중심적인 예술이다. 그리고 음악은 비극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합창을 통해 비극의 중심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며, 관객들은 그 이야기 속에 실제로 도취된다. 그로 인해 카타르시스, 해방감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도시 전체의 가치를 공유하고 유대감을 느끼는 역할을 했던 것이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중간중간 합창 부분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현대의 우리가 느끼기에는 굳이 의미 없어 보이는 말들도 많았고, 왜 합창이 나오는지 모르겠는 부분도 많아서 나는 많은 부분을 건너뛰었다. 그래도 내용 이해에는 큰 무리가 없다.  실제로 비극 공연을 감상한다면 '음악'이 독자들의 몰입을 도와주었겠으나, 글로 접했을 때는 오히려 극의 진행 속도를 떨어뜨리고 이해를 힘들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 또한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파우스트 연극은 창작연극으로 비극 장면을 제대로 연출할만한 시스템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비극의 합창 부분을 살려냈기 때문에 괴테의 <파우스트>가 예술적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2. 그리스 신화 이야기

 괴테는 고전주의적 관념을 가지고 파우스트 전반에 걸쳐 그리스 고전에 관련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일반적인 상식 수준만 알고 있으면 크게 어려움은 없지만, 비극 2부에서는'헬레네'라는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모르면 독서에 큰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 이외에도 처음 듣는 신과 마녀 등의 이름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모든 신화들을 알지 못해도 괴테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구원'에 대해서 생각하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시간과 공간의 변화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는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기도 하고, 실제 세계라고 믿기 어려운 공간을 오가기도 한다. 이런 입체적인 구성이 재미있는 요소기도 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혼란을 줄 수도 있는 장치이기도 한 것 같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괴테의 파우스트의 주제를 한 단어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구원"이라고 꼽고 싶다. 괴테가 말하는 구원은 단순히 목숨을 살려주는 '구명'과는 다를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얻거나, 육체적 쾌락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파우스트>에서 말하는 구원은 무엇일까?  내가 파우스트를 읽고 생각한 구원이란 권태로부터 벗어나서 살고자 하는 의욕과 스스로의 존엄성을 획득하는 일이다.

아아! 나는 이제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유감스럽게 신학까지도, 온갖 노력을 기울여 속속들이 연구하였도다. 그러나 지금 여기 서 있는 난 가련한 바보에 지나지 않으며, 옛날보다 더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도다.

 파우스트는 인생을 살며 평생 '진리'를 찾아 책 속에 파묻혀 살았다. '진리'가 바로 파우스트가 택한 인생이었다. 그는 다양한 학문을 공부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파우스트는 허무함과 무력감에 빠졌다. 자신이 믿었던 지식을 통한 진리의 추구는 그를 구원해 낼 수 없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선(善)에 도달한다고 해도, 보다 더 선한 것이 이를 허위와 환상이라고 부르는 도다. (파우스트 1, 49p)

 가치 있는 것이라 믿었던 것이 실은 모두 내 삶을 구원해 주지 못하는 것을 깨닫는 것은 엄청난 허무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 결과인 지식이 보잘것없다고 느껴졌을 때 파우스트는 죽을 만큼 괴로웠다.

인간이 권태를 벗어나려면 자신에게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 그때 일시적인 것보다는 영속적인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메피스토텔레스와의 계약에서 알 수 있듯, 인간이 구원받았다고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목숨까지 포기할 수 있다. 이 과정들을 파우스트가 보여준다. 제2비극 <헬레나 비극>에서 헬레나를 마주한 파우스트는 말한다.

세상은 나에게 얼마나 무가치하고 폐쇄되어 있었던가!
그런데 내가 헬레나를 마주친 이후 세상은 어떻게 변했는가!
이제야 바람직하고 근본이 있고 영속적인 것이 되었도다!
파우스트 2, 119p


 즉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삶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영속적인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구원이라고 말하는 듯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것(권력과 명예와 부)을 버리고 '간척'사업을 통해 그 구원의 깨달음을 실천한다.     


바다와 간척이 주는 구원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원은 바닷가에서 간척 사업으로 이루어진다. 괴테는 왜 파우스트의 깨달음과 죽음의 무대로 '바다''간척'을 택했을까? 우리 인생은 바다로 비유되는 경우가 많다. 바다의 어떤 점이 우리의 인생에 깨달음을 줄까. 간척사업의 어떤 모습이 파우스트를 구원한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이 파우스트가 던진 '인간 구원‘에 대한 독자의 생각이 될 것이다.

 바다는 예측이 불가하다. 조류와 날씨, 파도 등의 다양한 요소가 언제 급변해서 우리를 집어삼킬지 예상하기 힘들다. 이러한 바다의 특징은 인간의 운명과도 같다. 운명은 언제 어디서 얼마나 큰 파도로 우리를 집어삼키게 될까?

 다음으로 바다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다. 인간이 바다에서 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비들이 필요하다. 즉, 바다는 인간 스스로 설 수 없는 공간이며 이로 인해 미지의 세계로 남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간척을 통해 바다에 도전한다. 간척사업은 바다를 정복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인간이 바다를 정복하는 일은 자신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공간을 넓혀 운명에 대한 맞대응이자,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행위이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간척사업을 바라보던 중      

 인간 지혜의 마지막 결론이란 이러하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위험에 에워싸여 있으면서도 여기에서는, 아이고 어른이고 노인이고 값진 세월을 보내게 되리라. 나는 이러한 인간의 무리를 보며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더불어 살고 싶다.
그러면 순간에다 대고 나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순간아,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파우스트 2, 432p     

라며 삶을 마감한다. 파우스트의 마지막 대사로부터 우리는 괴테가 생각한 인간 영혼의 구원을 개인과 공동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1. 행위를 통한 개인의 구원

 이 대사가 <파우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가 아닐까 한다. 간척은 바로 '행위'라고 파우스트는 말한다. 간척은 바다를 정복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가장 비생산적이고 허무해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비생산적인 것처럼 보이는 행위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우리 삶에서도 그저 무력감과 허무감에 사로 잡히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파도는 아무리 넘친다 해도 언덕이 있으면 모두를 피해 돌아가느니라.
광포한 바다를 해변에서 몰아내고, 파도를 저 멀리 바닷속으로 밀어버림으로써 진정으로 값진 즐거움을 얻어보겠노라고 나는 계획하노라.
파우스트 2, 352p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지는 삶 속에서 우리는 모든 바다와 파도를 정복할 수 없지만, 바위 하나라도 세운다면 운명은 우리를 빗겨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삶의 바다에 맞서 간척, 바위를 세우는 행위야말로 권태와 허무를 몰아내는 진정한 인간 구원의 행위일 것이다.   

           

 2. 공동체로부터 얻는 구원

 파우스트의 간척 사업은 위에서 본 것처럼 개인적 영역에서 삶에 '행위'라는 교훈을 준다. 그러나 간척 사업을 자신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파우스트가 간척 사업을 하는 목적은 어른,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행복한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것이다. 행위를 통한 구원을 깨달은 파우스트는 왜 굳이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을까?

 우리가 운명 앞에서 너무나 왜소하고 작아질 때, 자신도 모르게 근심과 무력감이 찾아온다. 파우스트는 말한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운명에 저항한다 한들 인간이란 언젠가 한계를 느끼고 다시 무력함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다. 이때 개인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것을 괴테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파우스트의 간척지에 모여 살 인간은 개개인이 하루하루,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공동체라면 개개인이 무력감으로 무너질 때 서로를 이해하고 보다 높고 고귀한 것을 향해 함께 투쟁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같다.     


마치며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영혼이 행위와 투쟁의 삶으로부터 구원을 얻는 모습을 그려냈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내렸다.

위에서 말한 것 중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그리고 그러한 아이, 어른, 노인이 모여사는 인간의 무리”

가 바로 파우스트가 영혼을 팔아서라도 구하고자 했던 지혜이자 구원이다. 이러한 개인과 공동체는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단순히 교훈을 주는 것에서 독서를 마치면 안 된다. 독자 스스로 무엇이 내 삶의 구원이 될 것인가?’라는 물음과 답을 성찰해야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질문에서 '가슴에서 만족감이 솟아나는 (파우스트 1, 81p)' 그리하여 허무함을 이겨낼 수 있는 독자 자신만의 영역과 공동체를 꼭 찾아가야 한다. 읽기 힘든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제대로 읽고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나간다면 분명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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