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Fierce Attachment" 이 책의 원제다. 우리말로 옮긴 제목 그대로 "사나운 애착"이란 뜻이다. 친숙한 두 단어이지만 어쩐지 정확한 뜻을 알고 싶었다. '사납다'의 사전적 정의는 '성질이나 행동이 모질고 억세다'이다. 그럼 '모질다'와 '억세다', '애착'은? '모질다'는 '마음씨가 매우 매섭고 독하다', '억세다'는 '마음먹은 바를 이루려는 뜻이나 행동이 억척스럽고 세차다'. 마지막으로 '애착'은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떨어지지 아니함 또는 그런 마음'이다.
그러므로 "사나운 애착"을 사전적 정의에 의거해 풀이하면, '몹시 사랑하고 끌리어서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매우 매섭고 독하며 억척스럽고 세차다' 정도가 될 것이다.
머리와 심장, 온몸의 피가 이 두 곳에만 머무는 듯 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얼굴이 달아올랐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느 페이지에서는 와닿는 문장에 밑줄 치는 것을 포기했다. 내 두 눈이 카메라여서, 한 번의 눈 깜빡임으로 페이지 전체를 사진처럼 찍어 마음에 저장하고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국어사전을 두 번 펼쳤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한 번, 발췌필사를 마치고 한 번. 정말이지 "사나운 애착" 만큼 이 책에 어울리는 제목은 없었다. 그리고 이 제목 만큼 우리와 우리의 날것 그대로의 삶을 온전히 담고 있는 표현은 없을 것 같았다.
_누가 봐도 모녀 사이임을 알 수 있는, 너무나 닮은 두 여성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듯한 사진이 책 표지다. 그래서 처음엔 현실 모녀의 징글징글한 애증에 대한 이야기이겠거니 짐작했다. 맞는 말이다. 여성이자 유대인, 도시하층민으로 뉴욕에서 나고 자란 비비언 고닉의 회고록이자 에세이인 이 책은, 사십 여 년 동안 끈질기게 얽힌 저자와 그의 모친 사이의 (앞서 언급한 사전적 정의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나운 애착"이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중년의 작가와 노년의 어머니는 뉴욕 곳곳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눈다. 거리를 거닐며 눈길이 닿는 도시의 모든 것과 옛 기억들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그들의 대화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적은 별로 없다. 거리 한복판이든 집 안이든 그들은 서로에게 독한 말을 퍼부으며 무섭게 싸우고는 침묵하고 떨어진다. 그러나 이내 자석처럼 이끌려 환희에 부풀어 웃다가도 또 지긋지긋해며 싸우고 멀어진다. 현실 모녀의 생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조차도 겁이 날 정도로 이 모녀 사이는 독하고 억세고 매서웠다.
이 책이 놀라운 건, 사나운 '모녀'라는 이 큰 줄기로부터 가지처럼 뻗어 나간 다양한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웃, 부부, 연인 나아가 자아와의 관계까지. 저자는 이 모든 관계를 옛 기억으로부터 하나하나 낱낱이 파헤쳐 실사 고증하듯 세밀화로 그려낸다. 이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의 이면에는 (겉으로 한없이 온화해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사납기 그지 없는 애착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뜨거운 용암처럼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날카롭게 벼려진 저자의 깊은 통찰력과 혜안이 책이라는 무대 곳곳을 누비며 춤 추는 모습을 감상하는 듯한 환희는 이 책에서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화룡점정은 마지막 페이지다. 8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밤, 언제나처럼 가볍게 시작한 그들의 대화는 모든 것을 태울 기세로 무섭게 타오른다. 또다시 서로에게 고함치고 독한 말을 쏘아대다가 지친 나머지 엄마는 소파에 눕고 저자는 곁에 앉아 우울한 침묵을 지킨다. 그러다가 엄마가 침묵을 깬다. 이제 격한 감정이 거둬지고 그저 호기심에 대답을 바라는 초연한 목소리다.
""그러면 엄마랑 좀 멀리 떨어져 살지 그랬니? 내 인생에서 멀리 떠나버리지 그랬어. 내가 말릴 사람도 아니고." 나는 방 안의 빛을 본다. 거리의 소음을 듣는다. 이 방에 반쯤 들어와 있고 반은 나가 있다. "안 그럴 거 알아, 엄마.""(p.319)
_"안 그럴 거 알아, 엄마." 의도적으로 주어를 생략한 듯한 이 문장에 나는 한참 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언제까지나 이 행간을 서성이고 싶을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 동시에 무척이나 서글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