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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연 May 06. 2021

'진짜' 그림에도 '가짜'가 가득하다

고갱은 정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속에 타히티를 그렸는가?

폴 고갱(Paul Gauguin)의 <너 언제 결혼할래?(Quand te maries-tu? Nafea faa ipoip)>. 2015년 이 작품은 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인 3억 달러에 거래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년 후 수수료 분쟁이 벌어지면서 실제로는 2억 1천만 달러'짜리' 매매계약에 불과했다는 점이 세간에 드러났다. 개인 간 거래 특성을 이용해 매매가를 한참 부풀려 '가장 비싼 그림'이라는 '명예'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고갱이 그림을 그렸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너 언제 결혼할래?>는 어쩌면 제작될 때부터 '부풀려진' 그림일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그리기 1년 전인 1891년, 고갱은 '원시미술의 창조'를 꿈꾸며 타히티를 처음 방문했다. 프랑스에서 그가 상상해온 타히티는 마치 에덴동산과도 같이 때 묻지 않은 이상향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18세기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이래로 타히티는 이미 서구화가 상당히 진행된 곳이었다. 아무리 뻔뻔한 고갱도 그 사실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는지, 화폭에 그려진 타히티의 여인들도 서구적인 복식을 하고 있다.


고갱, <너 언제 결혼할래?>, 1892


그러나 궁극적으로 고갱이 묘사한 여인들은 사랑을 속삭이는 순수함과 대지의 빛을 닮은 원시성을 내포한 이국적 존재이다. 캔버스 왼쪽에 그려진 여인이 왼쪽 귀에 꽂은 티아레 치자꽃은 타히티에서 여성이 연인을 찾는다는 표식이다. 무릎을 꿇고 몸을 앞으로 내민 자세는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으로 동양의 여성을 소비한 19세기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의 <알제리의 여인들(Femme d'Alger dans leur appartement)>을 연상시킨다. 평생 기초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타히티어까지 그림에 당당히 적어두었다. "너 언제 결혼할래?(Nafea faa ipoip)"라고.


외젠 들라크루아, <알제리의 여인들>, 1834


고갱은 파리의 친구들에게 '순수한 시원적 이국의 미'를 판매하고자 했다. 2년 후 파리로 돌아왔을 때 고갱은 심지어 직접 타히티 전통 의상을 입고, 타히티 원주민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를 대동하고 나타나 이국 문화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그러나 자신까지 속일 수는 없다. 누구보다 고갱 자신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타히티에 그가 바랐던 순수한 원시성 따위는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타히티 고유의 문화를 타자성으로 치부하며 제거해버린 제국주의 시대의 서구인들은 급기야 그들의 문화까지도 창조적으로 소비하고자 했다. 소비할 것조차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자 직접 이를 만들어 판매했다고 하면, 서구 문명과 고갱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일까?


고갱이 살아있을 당시 <너 언제 결혼할래?>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정작 고갱 본인은 이 그림에 대해 모종의 자신감 내지는 만족감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893년 뒤랑 루엘(Durand-Ruel)이라는 전람회에서 이 작품의 가격을 1,500프랑으로 책정했기 때문이다. 이 가격은 출품된 그의 작품들 중 최고가에 이르는 것으로 현재 물가로 치면 대략 천만 원 정도에 달한다. 타히티인들조차 잘 입지 않는다는 타히티 전통 복식을 입어가면서까지 프로모션에 열심이었던 고갱은 뒤랑 루엘 전람회에서 작품 가격을 전반적으로 상당히 높였다고 한다. 뒤랑 루엘이 소개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들은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엇갈리는 평으로 판매에 난항을 겪었다. 반면 함께 출품된 고갱의 대표작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D'où Venons Nous? Que Sommes Nous? Où Allons Nous?)>의 경우 10여 년 뒤인 1901년에 비로소 2,500프랑에 팔 수 있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1,500프랑이라는 숫자는 <너 언제 결혼하니?>에 대한 고갱의 기대감을 잘 보여준다. 1900년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상이었던 볼라르(Ambroise Vollard)와의 전속 계약에서도 고갱 그림의 평균 가격은 350프랑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고갱이 그저 1,500이란 숫자를 좋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리겠다며 오랫동안 내팽개쳤던 아내에게 고갱이 준 위자료도 하필 1,500프랑이었다.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


고갱이 사망한 지 14년이 지난 1917년이 되어서야 루돌프 슈테헬린(Rudolf Staechelin)이라는 스위스의 기업가가 이 작품을 구입했다. 스위스의 바젤시립미술관(Kunstmuseum Basel)에 위탁한 채 슈테헬린 가문에서 줄곧 소장해 온 이 그림은 1세기 만에 다시 시장으로 나와 드디어 2015년에 카타르 왕가로 시집갔다. 처음 탄생의 순간과 마찬가지로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숱한 거짓들 속에서. <너 언제 결혼할래?>는 고갱이 원했던 또는 예측했던 대로 고갱의 그림 중 최고가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고갱이 오리엔탈리즘의 영광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잠시나마 만들어진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미술 시장에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지점은 주로 그림이 진품인지 위작인지의 문제이지만, 진품도 보기에 따라서는 이렇게 '가짜'로 점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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