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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연 May 06. 2021

백제의 전설이 묻힌 보물상자

도쿄국립박물관 호류지보물관이 슬픈 이유


도쿄국립박물관 호류지보물관. 1878년 나라의 호류지에서 봉납한 유물 300점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1964년 타니구치 요시오가 설계한 건물은 도쿄국립박물관의 안쪽 깊숙이 위치해 언제나 고요하고 차분하다. 얕은 물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다리를 건너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구성은 불교에서 말하는 피안과 차안의 표현일까? 비가 내리는 금요일 밤에 오면 이 공간만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도쿄국립박물관 호류지보물관


이곳에 오면 나는 항상 슬프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가끔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전근대적이고 감상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유리벽 안에 있는 전시품들은 생명력을 잃고 박제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제는 이렇게 박물관에 진열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역사이자 수용방식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슬프다. 작품 옆에 적힌 깨알 같은 설명들을 보면 누군가가 만든 이야기, 설명, 지식을 그 속에 잔뜩 우겨넣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작품 외적인 주변 요소들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어렵게 느낀다는 것도 좀 아쉽다. 특히 나는 종교미술은 원래의 경배 공간에서 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원 용주사에 후불탱을 보러 갔을 때 갤러리 스코프로 탱화를 관찰하는 나에게 어느 신도분께서 "부처님께 그러는 거 아니"라고 화를 내셨을 때 오히려 반갑고 감사했다. 그분이야말로 그림을 주문한 후원자나 제작한 화가가 1차적으로 의도한 대로의 반응을 보여주시기 때문에.


호류지 헌납 보물


그런데 유독 호류지보물관은 슬프다. 작은 불상들이 하나씩 유리장 안에 들어있는 그 모습이 마치 인질처럼 보인다. 그렇게 해서 쫙 나열된 모습은 꼭 불상의 공동묘지 같다. 이제는 관광지구가 되어버린 호류지의 모습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일까? 그래서 멋진 공간이지만 자주 찾게 되지는 않는다.


호류지에 전해지는 작품들이나 쇼토쿠 태자는 한국과 관련이 깊다. 예를 들면 아래의 불상은 한국에서 제작되었거나 한국인이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불상이자 처음으로 좋아했던 불상이기도 하다. 2015년 하반기 국립박물관에 찾아온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 이 친구와 처음 만났다. 일본에 오랫동안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이와 유사한 불상을 백제의 성왕이 불교 경전과 함께 일본에 전해주었다고 한다. 나가노 시의 중심에 위치한 사찰 젠코지에서는 지금도 그 불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비불(秘仏)', 즉 비공개 불상으로 보관만 하고 있어서 수백 년 동안 아무도 그 불상을 본 적이 없다. 젠코지의 보물상자 속에 들어있는 비불과 이 불상은 과연 얼마나 서로 닮아있을까?


여래 및 양협시상, 도쿄국립박물관


불상이 살아있는 사찰에서 불상에 절을 하는 신도들은 비불의 존재를 믿고, 불상이 죽은듯한 박물관에서 불상에 망원경을 대는 나 같은 사람들은 비불의 존재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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