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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연 May 06. 2021

목소리로 그린 수묵화, 귀로 보는 불상

일본의 미술관에서 만난 시각장애인

내가 살면서 한국의 거리에서 마주한 장애인의 3배를 일본에서 마주쳤다(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은 논외로 하고). 나는 그저 여행객으로 일본을 잠시 방문했을 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수치라고 생각된다. 더 놀라운 것은 그중 한 번은 미술관에서, 한 번은 사찰에서 시각장애인을 만났다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즐기는 시각장애인

어느 무더운 여름, 나는 도쿄국립박물관의 본관에서 상설전을 구경 중이었다. 수묵화조차 진한 먹선으로 화려하게 그린 일본의 옛 그림들을 감상하고 있는데 등 뒤로 나지막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누군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잘 모르는 작가의 그림이라 무언가 배울 수 있을까 싶어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여 무슨 말을 하나 들어보았다. 그런데 그저 작품에 그려진 그림이 어떤 모습인지를 세세히 묘사하고 있을 뿐이 아닌가. 이런 걸 왜 구태여 일일이 말하고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 그런 그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젊은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미술관에 온 시각장애인. 편협한 경험뿐인 당시의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 광경은 신선한 충격으로 오랜 잔상을 남겼다.


사찰을 답사하는 시각장애인

이듬해 봄, 사슴공원으로 유명한 나라에서 사찰 답사를 떠났다. 사슴공원이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이 즐비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교토보다도 오래된 도시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고즈넉한 기운이 가득하다. 그렇게 조용한 장소만을 돌아다니며 갓 피어오른 벚꽃을 즐기던 어느 토요일, 동선이 계속 겹치는 가족이 하나 있었다. 어린 딸, 아버지, 그리고 시각장애인 엄마로 구성된 가족이었다. 세 사람의 표정은 내내 따스한 봄볕만큼이나 밝고 온화했다. 딸과 남편의 목소리로 그려지는 사찰의 건물이나 그 안에 안치된 불상의 모습을 귀로 감상하는 엄마의 미소를 보니 내 마음도 왠지 따뜻해졌다. 다소 낯간지럽고 지나친 감동으로 연출된 일본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 드리만치. 


일본 드라마나 만화를 보면서 참 아기자기하게 '연출'되었다고 생각한 골목의 풍경이나 자연의 모습, 또 사람들을 이따금씩 실제로 조우하게 된다.


장애인이 미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고, 장애인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즐길 수 있고, 장애인이 정계에 입문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추어 '일부일처제로는 불만족'해질 수도 있는 나라. 그 다양한 층위가 모두 바다 건너 이웃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고 생각하니, 역시 일본은 맞추기 어렵게 미묘한 날씨 그 이상으로 가늠하기 힘든 다양성을 가진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대상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어차피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판국에 남을 온전히 이해하길 바라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에 자주 오는 외국인이 있다면, 그에게 비친 이 땅은 어떤 모습일까 새삼 궁금해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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