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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매거진 Aug 09. 2020

우리세탁소; 남자친구 있으면 페미니스트 아닌가요?

당신의 더럽혀진 기억을 세탁해 드립니다.

 

주위 여성들을 보면, 전부 여성혐오를 당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매일 혐오와 마주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기억들과 상처들을 공감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상처를 상처라 말하고, 위로하고, 응원하며, 그 힘으로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여성 곁에는 여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서로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되어줄 것이다. 더럽혀진 기억들을 나누고, 깨끗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악순환되지 않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 고민했다. 당신들고 그러한 기억이 있다면, 여기 풀어놓고 위로받기를 바란다.





두번째 손님 ;

진정한 페미니스트에 대한 고민




딸랑-



[맡기고 싶은 세탁물]




어서 오세요. 우리세탁소입니다. 어떤 세탁물을 맡기고 싶어 찾아오셨나요?  



안녕하세요. 더기입니다. 전 남자친구가 있어요.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걸 누구에게도 말을 못 하겠어요. 그게 어떤 내용인지와 관계없이 남자친구의 존재 자체를 말하는 것도 불편할 때가 있어요. 괜히 죄짓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뭔가 제가 되게 나쁜 사람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해요.


남자친구를 가진 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면서 제일 걸리는 게, 가장 무거운 짐이 그거예요. 그래서 저는 항상 친구들과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내가 남자친구는 있지만…” 이렇게 변호하면서 말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요. 내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다른 건 전부 다 필요 없다.’ ‘남자 안 만나는 게 최고다.’ 이런 말들이 있잖아요. 그 말들에서 가장 큰 오점을 제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왜 떳떳하지 못하고, 왜 짐이라고 느껴지고, 왜 오점이라고 생각하나요? 그것들은 누가 정하는 건가요? 무슨 행동을 하면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어떤 행동을 하면 페미니스트이고, 이런 기준들은 다 어디에서 온 걸까요? 물론 각자의 기준은 있을 수 있겠죠. 내가 노란색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파란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누구나 선호를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어요. 도덕도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매일 플라스틱 빨대를 쓰는 사람보다 ‘여’배우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이 더 비도덕적인가요? 여기에도 각자의 생각은 있지만, 또한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이 범법의 영역이 아닌 이상 아무도 강요할 수 없죠.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은 정말 스스로에게서 왔나요? 누군가의 그릇된 강요에 의해 자신을 속여왔던 건 아닐까요? 우리가 모두 나의 만족을 위해 화장하고, 다이어트한다고 착각했던 것처럼 말이에요. 잘 생각해보세요.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믿음이 단단하다면, 페미니스트인 거예요. 그게 전부예요.




[얼룩이 내가 되는 순간]

 



저는 남자친구와 페미니즘적인 이야기를 되게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좀 어려움이 있었어요. 말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저의 (페미니즘 관련) 발언이 다시 저에게 화살로 돌아오는 거예요. 그리고 생각한 게, ‘내가 말을 잘 못 하면 전체가 피해받을 수 있겠다. (페미니즘이라는) 큰 담론을 나의 의견 하나가 깎아내릴 수 있겠구나.’였어요. 책에서 봤는데, 굳이 내가 누군가를 페미니즘적 사고를 하도록 설득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지치니까요. 하지만 누구나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싶은 순간은 있잖아요. 그럴 때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제가 그 정도의 논리를 준비해야 해요. 그런데 상대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이 상황에서 혹시 제가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타격이 더 크게 와요.


나름 열심히 찾아보고 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건 존재해요. 논리가 부족한 게 아니더라도 태도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요. 말이 오가다 보면 격해지기도 하고, 실수나 기분 나쁜 말들을 하기도 하고요. 그때, 아 실수했다. 내가 실수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복잡한 마음이죠.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고요.



언제나 말하려는 사람이 손해죠. 그런데 말을 먼저 꺼내는 건 언제나 억울한 사람이잖아요. 억울한 사람이 요청하고, 억울한 사람이 입증하고, 억울한 사람이 상처받고.


피해가 막심하니, 그렇게 한 명씩 입을 닫으면 아무도 말하지 않게 되겠죠. 또는, 논리구조가 완벽하고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는 ‘진정한’ 페미니스트만 말하거나. 그럼 소수만 말하고, 나머지는 듣고 따르게 될 텐데. 그게 우리가 바라는 평등이던가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나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대화는 가능해지죠. 대화가 가능한 사회가 평등한 사회이고, 나아갈 수 있는 사회예요.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자고요. 갓난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때 발음이나 문법에 대해 신경 쓸까요? 안 쓰죠. 틀린 게 투성인데도 계속 말하잖아요. 옳은 발음과 문법을 찾아가기 위해서. 해봐야, 알 수 있으니까.


조금씩은 양보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이 문제에만 딱딱하고 엄격하게 굴지 말고 평소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들처럼요. 무슨 전투 치르러 나가듯이 준비하지 말고요. 논리적으로 말하고 싶다고 막 신경을 곤두세우지는 말고요. 그냥, 내가 바르다고 믿는 것을 말하고, 그에 대한 상대의 의견을 들어보고, 대화는 그렇게 해나가는 거잖아요. 페미니즘 전체를 깎아내리는 것 같다고 했죠. 말도 안 돼요. 그건 개인의 발언일 뿐, 페미니스트 전체의 선언문 같은 게 아니에요. 우리들 엄마가 잔소리할 때, 다른 엄마들의 지위를 깎아내릴까 걱정하는 거 봤나요? 어떤 엄마가 자식과 격식 없이 지낸다고 맘카페 같은 데서 그렇지 않은 엄마들이 모여서 막 시위하고 “엄마로서 체통을 지키세요!” 하는 것 봤나요? 당연히 못 보셨겠죠. 엄마들은 다 개개인의 특성이 있고, 그들은 다 달라도 다 엄마이니까요. 페미니스트도 다 생각이 다르지만, 다 페미니스트예요. 정답이 있고, 누군가 ‘틀린’ 것이 아니고요. 그런 건 ‘다름’이라고 불러야죠.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정말 제가 생각한 건지, 어떤 누구의 말을 들어서 생각하게 된 건지, 당당히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남자친구를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 남자친구를 온전히 저의 시선으로 보지 않고 남의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인간 대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니고, 페미니스트적 자아를 꺼내서 프레임을 하나 씌워서 판단하는 거죠. 그런데 그 자아조차도 남이 만든 것 같은 느낌.


가끔 그런 걸 생각해요. 정말 문제라서 문젠지.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보지 않은 제 3자가 있는 것 같아요. 그… 급이 있는 것 같아요. 코르셋을 벗은 사람, 아닌 사람,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 근데 제가 그 위에 급에게 뭐라 못하겠어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니까.



그렇게 남의 기준으로 판단하다 보면 위기의 순간에 좋은 해결책을 찾지 못할 거예요. 긴급한 순간에는 답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을 거고요. 혼자 판단해야 할 때면 어떻게 해요. 다른 누군가의 신념으로 선택하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어요.


급이 어디 있어요. 사람은 다 평등하댔는데, 직업에도 귀천이 없댔는데, 고작 이런 거에 급이 왜 갈려요. 남자친구 있는 사람하고 남자 친구 없는 사람하고 물에 빠지면 남자친구 없는 사람 먼저 구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얼룩은 점점 더 번져서]




사람들이 남자들을 욕할 때 찔리죠. 그러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단점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인터넷에서 누군가는 (그게 한남의 특성인 것처럼) 까고 그럴 때, 모든 면에서 그런 건 아닌데 싶은 거예요. 그러면 괜히 이게 뭔가 연애로 인해서 좀 유해진 건가, 안일하게 생각하는 건가 싶어요.


그리고 반응이 두려워서 먼저 얘기를 못 한다는 게 좀 힘들죠. 원래도 저는 누군가의 관계에 대해서 남에게 이야기하는 게 그 사람을 욕 먹이는 짓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게 더 크게 와닿는 것 같아요.



혼자서만 너무 많은 짐을 감당하려는 것 같아요. 지금 말한 사람들, 온라인, 친구들, 남자친구 중에 본인과의 관계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없잖아요. 더기님만 힘들잖아요. 이럴 때마다 속상해요. 페미니즘을 접한 여성들의 삶이 더 나아지기는커녕 자신을 자책하며 망가질 때요. 꼭, 여성들은 본인이 다 감당하려 해요.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조금씩 넘겨주고 버텨야죠. 그러다가 힘들다고 하면 다시 또 조금 받아주고.


혼자서 가지고 있으려 하다가, 오히려 더 삐뚤어질 수 있을 것 같아 걱정돼요. 곪을까 봐요. 예를 들어 그런 시선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스스로 ‘너 누구 편이야!’ 이런 질문을 만들어 버리면 참을 수 없는 압박감에 ‘아 몰라, 그냥 내가 좋은 대로 할 거야.’ 눈 가리고 ‘나는 모르겠다.’ 할 수 있잖아요.



맞아요. 사실 요즘 제가 그렇거든요. 싸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좀 (페미니즘 관련된 것들을) 가까이 안 하고 있어요. 모른 척하고 싶을 때가 많죠. 너무 지치니까요. 상대가 그런 생각이 없어도, 내가 검열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런 게 힘들어요. 또, 저도 그런 스트레스가 있다 보니까 다른 사람을 볼 때 저도 그런 식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 사람도 페미니스트라면서…~하네.’ 이렇게요. 이상하게 거기서 약간 안심이 될 때도 있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요.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드라마에서 나온 것처럼 어떤 사람이 외모로 점수를 매기잖아요. 눈은 자연이고. 총점 70이다. 90점이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쟤는 남자친구가 없으니까 결점이 없는 것 같고, 남자친구가 있거나 그런 걸 보면 마음이 좀 놓이고.


그 문제들이 장애물이라 느껴지지는 않는데 둘 다 놓지 못하는 저 자신이 장애물이라 느껴질 때가 많죠. 자책. 그런 게 좀 커요. 음, 정말 드물지만, 그냥 (페미니즘을) 몰랐던 게 편했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해요.



가끔은 저도 ~했다면, 하는 생각을 해요. 사실 꽤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비단 페미니즘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면서 만나는 많은 문제에 대해서요. 열등감이나 후회, 자책과 같은 이름을 달고 있는 감정들이죠. 조금만 더 건강했으면, 한 문제만 더 맞았으면, 그때 말을 좀 잘했으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하나만 바뀐다고 모든 게 다 나아지지 않아요. 내가 돈을 좀 더 벌게 되어도, 내 건강이 조금 더 안 좋아졌을 수도 있는 거고요. 문제는 계속 생긴다는 거예요. 남자친구와 헤어져도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문제가 계속 생길 수밖에 없어요. ‘진정한’을 가리기 위한 잣대에 남자친구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 남자친구가 요점이 아니라는 거예요. 누군가의 잣대에 의해 자신을 평가하는 게 문제라는 거죠.




[추후 세탁물 관리법]



저는 놔버려요. 그냥 고민 자체를. 이 고민에 대해 한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생각의 번아웃이 왔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모든 인터넷을 다 끊었어요. 해결을 못 하는 일이니까. 사실 그렇게 따지면 제가 헤어지는 것밖에 해답이 더 있어요?



가끔은 놔버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부 놔버리면 안 돼요. 자기 자신과 삶까지 놓으면 안 돼요. 페미니즘 그깟 게! (이렇게 표현하면 안 되지만요…) 뭐 얼마나 중요하다고 자기 자신을 버려요.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앞서 말했듯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행동하면 문제 될 게 없어요.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제든 너무 무거워지면, 다시 우리세탁소를 찾아주세요.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냥 마음 편히 말하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해소될 때가 있어요. 남 눈치 보지 않고 솔직히 말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더 잘 아실 거라 믿어요. 얼마나 소중한지도요. 그걸 함께할 사람이 여기 계속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이 덜어졌기를 바라요.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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