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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매거진 May 30. 2023

치열하게 흔들리는 편집국장 ‘초록’

여자사람지인 인터뷰; 우리 주위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


초록은 몇몇 지면에 함께 기사를 실으면서 알게 된 대학생 기자다. 이제 초록은 학보사의 편집국장이 되어 일하고 있다. 같이 일한 기자 중 초록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누구에게나 밝게 웃고 정성껏 칭찬하고 상냥하게 대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정확히 그리고 세심히 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인터뷰 내내 던지는 질문에 고민할지언정 대답을 못 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이미 내면 겹겹이 쌓은 혼란과 몇 번이나 자문자답을 한 결과다. 그 많은 시간을 견뎌내고 있기에 분명 더 단단해질 것임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초록은 ‘잘 모르겠다’고 하다가도 그러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으니.





#한 명의 대학 언론인으로서


Q 어떻게 편집국장이 되신 거예요?


교수님 면담이랑 전 국장님 평가, 두 가지를 봐서 정해져요. 근데 어차피 부장기자가 저밖에 없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형식적인 것 중의 하나였죠. (정해지기 전에도) 국장 업무는 다 했어요. 개강호 발행하려면 방학 동안 취재해야 하는데, 그동안에도 절 편집국장을 소개하는데 명함은 부장기자 명함이고 그럴 때도 있었죠. 공식적으로 된 건 이번 해 3월이에요.


Q 그러면 편집국장이 된 지 얼마 안 됐네요. 그동안 좀 어땠어요?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아까 말했듯이 작년 2학기에도 편집국장님이 취업계를 내면서 국장 업무는 다 했어요. 그때는 그래도 국장님이 그날 뭐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피드백도 계속 받으면서 일할 수 있어서 괜찮았어요. 좀 힘들어도 업무량이 좀 많아지는 거니까 엄청나게 스트레스받진 않았어요.


근데 제가 공식적으로 편집국장이 되니까 제 위에 아무도 없잖아요. 국장만이 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면 진행 과정을 계속 파악하고, 피드백을 진행하고, 기사 작성 역량도 높아야 하는 게 어려웠어요. 학교에 대한 기사를 쓰려면 학교 측에서는 절차를 되게 엄격하게 하거든요. 교수님 인터뷰를 하려면 평기자 말고 국장이 인터뷰 요청 드려야 하는 것도 있고요. 제 기사가 아닌데도 제가 무게를 가지고 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니까, 이제는 내 기사만 걱정할 수 없구나, 내가 하나하나 다 케어해야 하는구나 깨달았어요. 그런 점이 힘들죠.


Q 일을 도와주시던 전 국장님과 본인을 스스로 비교하게 되기도 할 것 같아요.


전 국장님은 저보다 나이가 많고 기자 경험도 많으세요. 제가 부국장으로 국장 업무를 볼 때는 그래도 시간 날 때마다 오셨거든요. 와서 피드백 봐주고 그랬는데 퀄리티가 너무 달라요. 우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얘기랑 실제 현장 기자하고 볼 수 있는 시선이 다르잖아요.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니까 거기서도 제가 입을 못 대는 거예요. 동시에 내가 내 눈에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 있죠.


Q 팀원들이 시선이 신경 쓰이지는 않으세요? 전 ‘기자들이 나를 전 국장이랑 비교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거든요.


전 거의 매일이에요. 매번 그랬어요. 그래서 작년 2학기 동안 회의를 하러 가기가 정말 싫었어요. 내가 여기서 잘 말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요즘에는 그래도 그 생각을 덜 해요. 제가 회의 전날 밤을 거의 새우고 가거든요. 피드백할 것도 전부 찾아놓고.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어떤 노력을 해요?


제가 확장 시절 동안에도 리더를 해본 적이 없어요. 반장 부반장 같은 경험들이 없어서… 자꾸만 스스로 좋은 리더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두고 검열해요. 내가 나이가 많아서 편집국장이 된 건지, 기사 쓰는 스킬적인 역량이 높은지 같은 거요.


사실 전 꼼꼼하지 못하거든요. 근데 꼼꼼해야 할 수밖에 없는 자리가 된 거예요. 내가 꼼꼼하지 못한 순간에 이 친구들이 나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들려면, ‘우선 그럼 내가 기사를 잘 써야 해, 그래서 되게 압도적으로 잘 써야 해.’ 이런 생각이 자꾸 있었어요. 그래서 피드백 시간에 기사를 프린트해서 기자들에게 돌리잖아요.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와도 제 기사에 볼펜 하나의 피드백도 없으면 좋겠는 거예요.


정말 실력에 대한 갈망이 엄청나 보여요.


압도적인 레벨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방학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건 언론 강의 찾아 듣는 정도인데, 또 그 자리에서 만난 다른 대학교 편집국장님들은 다들 저랑 다르게 너무 대단한 거예요. 그러면 저는 하시는 말 다 녹음해서 필기해요. (웃음) 자유롭게 있다가도 질문이 있으면 딱 질문하고, 그 당당한 그 모습마저도 부러워요. ‘저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은데 어떡하지?’ 이런 고민이 너무 많기도 했어요.


제가 느끼기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많이 없어 보여요. 왜 그럴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전 이상이 되게 높아요. 편집국장은 이래야지 하는 기준점. 제가 처음이라 그런지 더 높은 것 같아요. 그런데 혼자서는 기준이 높다는 생각도 안 해봤어요. 그냥 이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 왜 내가 이거를 못하고 있나 이렇게 좌절하는 날들도 많고요. 특히 그날그날 해야 할 일들이 있잖아요. 다이어리 칸을 모두 볼펜으로 긋지 않으면 잠이 안 와요. (웃음)


제가 예전에 쓴 블로그도 보면 알 수 있는데, 전 평안했던 적이 없고 전체적인 피드백이 제일 무서웠어요. 결과물을 보면 부족한 점이 너무 잘 보이니까 지금도 마음 놓고 내가 피드백에 관해서 낙관할 수는 없어요. 또, 피드백을 해주려면 저도 그 취재에 대한 감을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실제로 지면을 맡으면 취재가 힘들 수도 있다는 걸 몸소 느끼는데, 지면을 아예 안 맡으면 기자 입장을 점점 까먹어요. 저번엔 다른 기자가 컨택이 안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얘 오전 공강인데 왜 전화 왜 안 했지?’ 이런 식으로 좀 매서워지는 거예요. 너무 냉담해지고. 그래서 지면 또 맡았어요. (웃음)


기사까지 쓰려면 너무 벅차잖아요.


그렇죠. 근데 제가 어느 정도로 확신이 없었냐면 책을 읽었고 술술 읽히는 책들이 있잖아요. 그 순간을 못 즐기는 거예요. 내가 관심이 있어서 술술 읽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지금 공부로서 잘 읽고 있는 건지. 솔직히 상관없는 건데, 그냥 잘 읽으면 되는 건데도 밤에 막 그런 생각을 해요.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거예요? 지면도 충분히 안 나오고 장학금도 안 주는데.


저는 저 스스로 인정이 되게 중요한 편이에요. 그게 뭐냐면, 꼼수를 쓰면 안 된다고 스스로 말하는 거죠. 남들한테는 그럴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나 이게 너무 힘들어서 다른 일을 못 해서 하면 상황이 다 이해 가요. 근데 저한테 대입하면 잠이 안 와요. 제가 만약에 일이 잘 풀려도 엄청나게 불안해해요. 그냥 운 좋아서 된  거다, 언젠가 들통날 거다.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일이 안 풀리면 거봐 너 꼼수 부린 거야 이렇게. (버티고 그런 것도 다 그 완벽함에 매몰돼서 하는 거네요.) 맞는 것 같아요. 그냥 이걸 포기할 수 없으니까. 전 담배도 꼭 발로 밟고 쓰레기통에 버리거든요. 안 밟는 사람도 있고 쓰레기통에 안 버리는 사람도 있는데, 전 한 번 안 밟았다가 집에서 다시 나온 적도 있어요.



본인 마음에도 잘 썼다 하는 기사 같은 게 있어요? 유난히 잘하는 분야라던가.


잘했다보다도 안심한 적은 딱 한 번은 있어요. 제가 혼자서 책방 사장님 인터뷰를 땄어야 되는데 원래는 먼저 전화드리고 ‘찾아가 봐도 될까요?’ 하는 스타일인데, 제가 그날은 약간 너스레를 떤 거예요. 직접 찾아가서 책방 너무 예쁘다고 말 걸고. 사장님이 알고 보니까 저희 대학교 80학번이시더라고요. 저 지금 그 학교 다녀요 하면서 친해지고, 이거 취재해도 되냐 해서 그렇게 딴 인터뷰가 있어요. 그때는 그게 되게 너무 뿌듯해서 애들한테 보라고 블로그에도 올리고 그랬었어요.


찾아보니까 인터뷰 기사를 꽤 자주 쓰는 것 같은데, 혹시 인터뷰 기사를 좋아하는 편이세요?


제가 사실은 인터뷰 기사를 좋아하는지 몰랐던 시절에 인터뷰 기사를 쓰는 걸 보고 또 기사 쉽게 쓰려고 하지 말라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는 그 피드백을 그대로 수용하고 내가 앞으로는 인터뷰 기사를 많이 쓰면 안 되겠구나 인터뷰를 넣어도 참고용만 해야지 했어요.


최근엔 좀 생각이 바뀌었어요. 기사라는 게 저희가 정보만으로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일을 가지고 이제 우리가 이야기를 모으고, 정보를 모아서 쓰는 거죠. 저희가 인터넷으로 자료 조사를 할 때보다, 직접 당사자를 만나면 딱 제 세계가 깨지는 기분이에요. 데미안에서 그러잖아요. 알을 깨고 나와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고. 저는 항상 인터뷰할 때마다 그걸 배우거든요. 이건 기자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인터뷰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기자는 이래야 한다 혹은 어떤 기자가 되고 싶다, 그런 게 있을까요.


너무 신기하게도 제가 이번 카공족 관련 취재했을 때 카페 사장님이 저한테 비슷한 질문을 하셨었어요. 어떤 분야의 기자가 되고 싶냐고. 저는 그런 질문에 사실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단 말이에요. 근데 제가 ‘사회부 기자 하고 싶어요.’ 이렇게 대답이 툭 나오더라고요. 좀 신기했어요. 근데 이유를 생각을 해보니까 결국에는 한 사안에 대해서 계속 주시하고 여러 질문을 던져서 ‘이게 다가 아니다’라고 보여주는 기자가 되고 싶은 거 같아요. 카공족도 ‘뉴스에서 강조하는 선악 구도가 다가 아닐 텐데…’라는 의문으로 시작해서 이야기를 모으다 보니 정말 색다른 방향의 기사가 나온 거니까요.


맨 처음 학보사를 희망한 이유가 있을까요? 혹은 기자의 꿈을 꾸게 된 계기?


제가 처음에는 전문대 유아교육과에 다니다가 학교를 바꿔서 온 건데, 아빠가 전통 있는 동아리에 들어가 봐라, 근데 총학생회 말고 대학 신문해 보라고 하셨어요. 제가 생각했던 학생회 이미지도 좀 놀 줄 알고, 목소리를 높일 줄 아는 사람들이 하는 거였는데 전 그런 성격은 아니니까 그렇게 신문사에 지원했죠. 신문사라는 게 뭔지는 잘 모르고요. 대신 제가 고등학교 때 김소영 아나운서를 정말 좋아했어요. 그때 당인리 쪽에서 조그맣게 책방을 하셨거든요. 거기 진짜 자주 갔어요. 그냥 그 공간이 좋으니까 주말마다 왔다 갔다 했어요. 거기 사장님이 아나운서니까 아나운서는 진짜 멋있는 사람이구나, 그러면 신문도 언론이니까 멋있겠다. 그런 단순한 생각은 있었죠.


그런데 사실 학보사라는 집단에서 언론인의 멋진 모습이 잘 드러나진 않잖아요.


1학년 때는 마냥 재밌다 그러고 다녔어요. 막 오히려 뿌듯하고 재밌었고요. 그러다가 부장기자가 됐을 때 다른 부장 기자인 친구랑 전 국장님이랑 같이 둘이 학교 비판하는 칼럼을 썼는데, 엄청나게 탈탈 털린 적이 있어요. 선생님한테 불려 가서 기사 내리라고 하고 너네 학교 잘리고 싶냐는 말도 듣고. 우리 신문사가 생각보다 더 검열하고 감시하는 곳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죠. 근데 선생님들은 저희를 되게 무시하시거든요. 너네 뭐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기사를 쓰냐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고. 그때 좀 현타가 왔었죠. 제가 점점 더 현실을 알게 되는데 부국장을 맡고 나니까 저는 그만둘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러면 본인은 어떤 힘으로 버틸 수 있어요?


원래는 친구들이랑 같이 얘기하면서 술 마시면 풀리겠지 생각했는데 점점 그게 해소가 안 되더라고요. 당연히 제 상황에 100% 공감도 못 해주고, 오히려 좀 남이라는 게 더 와닿고. 제가 답이 없죠. 다들 힘들 때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고, 그래 담배를 피워 볼까 술을 마셔볼까 그런 생각에 해보기도 했어요. 근데 아직까지 모르겠어요.


#새로운 지면에서 만나는 더 넓은 세상


좀 색다른 지역 신문에 참여했잖아요. 어땠어요?


저 진짜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다른 학교 기자님들도 있고, 대외 활동이고, 말씀하시는 거 듣는  것 자체가 너무 의미 있게 느껴졌고요. 그 취지나 활동도 좀 멋있게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학교에서 하던 것과 되게 달랐어요. 똑같이 취재를 가더라도 뭔가 현장이 ‘여가부 폐지 반대 시위’ 이런 현장이었으니까요. 그게 벌써 다른 거죠.


그때 다뤘던 소수자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제가 사실 그때가 마냥 좋았던 게 고민이 없었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취재 나가는구나 싶었어요. 그러다 무슨 공동 행진 같은 현장에 취재를 나갔었는데, 취재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 거예요. 다들 보도 자료 못 보셨나, 약간 다들 까먹었나? 이 생각이 들었어요. 왜… 왜 아무도 안 오고 취재하지 않는 거지? 이게 좀 소외당하는 주제들이라는 걸 그때 처음 느꼈어요. 점점 당사자들의 얘기를 직접 들으면서 공감하게 되고 하나씩 배워가게 됐어요. 저는 아직도 배워가는 중이거든요. 그런 주제와 관련해서 나의 의견과 언어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이러한 활동을 하면서 확실히 변화한 것들이 있을까요?


주변인들의 반응이요. 저는 제가 참여한 기사를 스토리에 계속 올렸는데, 그때 당시에 같이 조별 과제 하던 오빠들이 ‘설마 너 빨간색이야?’ 이러는 거예요. ‘뭐가 빨간색이냐는 거예요?’ 그렇게 물어보면 ‘그냥 물어보는 거야.’ 그러고 그래서 ‘저는 아직 색이 없어요.’ 이렇게 얘기했죠. 그리고 제가 그즈음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 이후에 그분을 팔로우했거든요. 그러니까 또 ‘너 민주당이네.’ 이러고 제가 왜 민주당이냐고 하니까 ‘너 팔로우 목록에 있던데?’ 이런… 좀 웃겼죠. 그냥 술 즐겁게 마시고 먹는 자리에서도 계속 말 하나 잘못하면 약점으로 잡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되고요. 정치색에 대해서 엄청 공격적인 질문들이 많았어요. ‘너 민주당이잖아, 근데 너 취재하는 거 보면 진보당이냐?’ 그런 식의. 저도 절 모르겠는데, 그 사람들은 다 ‘나 너 파악했어. 너 이거잖아.’ 이런 말투로 절 재단하는 거예요. 그때 너무 화가 나서 헤어지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이제 좀 회의하는 시간에 제가 의견을 조금 강하게 내면 ‘아 정색하네.’ 이런 식의 무례한 대우를 받았고, 그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었죠.


그러면 활동을 후회하진 않았어요?


후회보다도 의문이 있었어요. ‘난 옳고 그름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왜 자꾸 이거를 쓰지 말라고 하지?’ 그런 의문. 또 다른 분들한테 물어봐도 그런 걸 견딜 수 있으면 하라고 말하는 거예요. 계속 혼란스럽기만 했죠. 부모님도 좀 걱정하셨죠. 엄마는 ‘너 근데 그런 거 취재하면 댓글 안 달려?’ 이렇게 우려하시고도 하고요. 아는 기자분은 앞으로 기자로 활동할 때 이 경력을 쓰지 말래요. 색깔이 지면이다 보니까 객관적이지 못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본인 생각은 어때요? 이게 객관적이지 못하거나 어떤 색을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전 오히려 그 활동에서 정말 열린 대화가 많이 이뤄진 것 같거든요. 아주 보수당이나 진보당에서도 여러 시각이 혼재하고 있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요.


전 그런 취재들이 제가 찾고 싶어 했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여자의 어떤 말에 “저 누나는 기가 너무 세”라고 했던 경험이나 위안부 관련 영화를 보고 분노를 털어놓았을 때 공감해 주지 않고 정치적인 해석을 늘어놓았던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때는 그거에 의문을 가지거나 이상하다고 느끼는 게 제가 이상하기 때문인 것 같았어요. 뭔가 그때부터 저 혼자만의 갈등이 점점 쌓여왔던 것 같아요. ‘이상하게 느껴지는 질문에 내가 답을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왜 나는 답을 모르지?’


근데 이제 그런 질문을 계속 쌓이고 쌓이고, 여러 질문에 대해 취재하면서 그 언어를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에는 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인 건데,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냥 그런 사람은 두고 나는 내 갈 길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시사인도 사실은 매거진이잖아요. 거기 기자님들이 되게 심층적인 보도를 하고 또 제가 지향하는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의 사안에 대해 되게 공을 들여 인터뷰하시는 것 같아서요. 근데 이건 제가 희망했던 방송 기자랑은 다른 분야니까, 아 그러면 그냥 다른 방향도 맞는 거구나, 난 다른 방향으로 가면 되겠구나. 이렇게.


비슷한 활동을 한 번 더 했었는데, 뭔가 더 색이 드러나는 활동 같거든요. 부담되지는 않았어요?


저는 취재보다도, 활동하면서 만날 사람들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냥 이 사람들이랑 나누는 대화도 좋고 이런 모임에 있다는 게 솔직히 그냥 기분 좋았어요. 이 사람들을 계속 만나려면 계속 여기에 남아야 하고, 대학 신문사에도 남아야 해요. 계속 만날 수 있는 명분이 계속 이어지니까요. 그러면 해야겠다 그렇게 결정했던 거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뭐가 좋아요?


제가 요즘에 느끼는 게 학창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한 친구들이어도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오랜만에 얘기하려고 만났는데 왜 이렇게 얘가 불편하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서로 이제 갖는 관심사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달라진 상태에서 만나니까 대화가 안 이어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도 못 잡고요. 시간만 때우다가 오는 느낌, 알맹이 없는 느낌을 계속 받는 거예요. 학교에서 만난 친구도 너무 좋았다가도 말 한마디에 신뢰가 무너지기도 하고, 재미있는 농담에도 웃을 수가 없게 되고요.


근데 같이 활동하시는 분들이랑 만나면 전부 대학 신문사 출신이다 보니까 공감되는 얘기도 너무 많고, 또 동시에 약간 존경하는 것도 있고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저렇게 말해야지, 저렇게 생각해야지. 이번에 또 그분들이랑 함께하는 신문 소모임 신청했어요.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너무 고프니까요.


운동한 여자들에 대한 글을 썼잖아요. 그 주제는 어떻게 처음 생각하게 됐어요?


처음엔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었어요. 거기에서 여자들이 축구하고 있으면 꼭 동네 아저씨들이 와서 말을 거드는 에피소드가 있거든요. 그걸 설명할 때 ‘맨스플레인을 떼라’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했죠.


하면서 아쉬운 점이나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축구단이랑 야구단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 제가 물어봤어요. 그러면 혹시 이렇게 축구하시면서 이렇게 주위에 지나가던 남자분들이나 한마디 거드신 적 없냐고. 그러면 너무 많대요. 너무 막 빡친대요. 왜냐하면 그분들도 다 국가대표 출신이라 공을 훨씬 오래 찼으니까요. 근데 그런 건 기사에 담지 말아 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런 거 쓰면 또 난리 난다고, 욕먹는다고.


그래도 결국에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하잖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렇죠. 그런 이야기는 당연히 필요하죠. 근데 이제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 한다고 했을 때, 그러면 지금 나는 당장 내가 뭔가 총대 매고 나서기보다 저렇게 뜻이 맞고 뜻이 멋있고 하는 사람들 밑에서 시키는 일 열심히 해서 도와야겠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먼저 경험하신 분이 이 방법을 택했다면 나는 일단 이분들을 도와서 열심히 해보고 싶어 그런 생각.


#답을 찾아가기 위한 흔들림


책도 참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요. 책을 읽으시면서 내가 이런 거 해보고 싶다 하는 게 있을까요?


전 약간 멱살 잡고 읽어야 해. 이런 느낌이에요. (웃음) 제가 지금은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긴 하지만, 기자는 안될 것 같거든요. 기자 일에 대해 프라이드도 강하지만 아쉬움도 있고요. 제가 문헌정보학과라서 도서관 쪽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학교에 있고 싶어요. 얘들한테 책을 통해서 신문사 경험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 싶어요. 예를 들어, 독서 토론에는 답이 없고 그냥 하나의 의견만 있잖아요. 그리고 아무도 이 의견을 반박할 수 없죠. 저도 신문사 회의를 통해 제 자아를 찾은 사람이어서 그런 느낌으로 책을 통해 아이들이 자아를 찾도록 돕고 싶어요.


요즘엔 어떤 책 읽어요?


요즘 영화랑 드라마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유튜브 영상 보고 다 봤다고 하는 사람. 그것마저도 건너뛰기로 보는 시대가 왔잖아요. 이런 세상에 신문이라는 우리의 지면이 왜 필요한지 궁금했고, 적어도 우리 신문사에 있는 사람들은 지면의 가치를 계속 발굴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무조건 신문만 봐라! 는 아니지만 이게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계속 뭔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찾다가 알게 된 책이에요.



페미니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인 것 같아요. 한편으론 정말 다들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요. 본인은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우선, 여대를 다니는 친구들을 봐도 사실 페미니즘에 대해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주변 친구들도 고민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진 않고요. 저도 항상 남들 얘기라고 생각했거든요. 들여다볼 생각을 안 했었는데, 점점 내가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할 줄 알고 내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강남역 살인사건 공간에 갔다 왔어요. 그냥 그냥 가만히 거기를 막 보고 있었어요. 축제도 열고 그러는데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한숨을 쉬는 거예요. 이런 부분에 목소리를 낼 때 공격당할 수 있는 게 현실인 거죠. 그래서 더 어떻게 보면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목소리를 내려면 더 똑똑하고 더 논리적인 생각이 있어야만 내가 이거를 내가 말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금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그런 과정 속에서 새롭게 깨닫고 확신을 갖게 된 것도 있을까요?


결국에는 우리 안에서도 서로를 인정해 주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뭔가 화장을 하면 안 될 것 같고, 머리를 숏컷으로 잘라야 할 것 같고 그랬어요. 제가 머리를 단발로 짧게 자른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머리 자르면 어울린다 안 어울린다. 이런 반응이 있는 게 이상하다 해야 하나? 솔직히 저는 약간 저 스스로 딱 마음에 드는 모습이 없거든요.


계속해서 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하잖아요. 그게 어떤 옳은 것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지진 않아요?


얕은 지식으로 잘못된 말을 하는 상황이 싫은 게, 옛날에 괴로워했던 제 모습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전 그런 모습을 최대한 안 보이고 싶어요. 그래서 무슨 말 하나를 하더라도 일단 제 의견이 있어야 하고, 근데 제 의견이 있으려면 스스로가 그 말을 일리 있다고 생각해야 하고요. 근데 일리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의 과정이 너무 길죠. 생각이 깨졌다가 모아졌다가 계속했다가 그러니까.


그래서 그런지 친구를 옛날만큼 마음 편하게 못 느껴요. 그런 잣대가 세워지는 게 필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또 인간관계 끊어지면 아쉽잖아요. 뭔가 내가 괜히 이렇게 변해서 그러나 싶기도 하고. 원래 쉽게 재밌고, 2차 가고, 안 가도 할 얘기가 엄청 많았는데 어느 순간 입이 다물어지고 자꾸 제가 ‘이제 갈까?’ 그러더라고요.


그런 과정 속에서도 자기 기준을 계속 지키려고 하는 이유는 뭐예요? 대충 받아주고 넘어갈 수도 있을 텐데요.


이제는 그런 얘기를 해도 즐겁지 않은 것도 맞고, 가끔 내 생각 스위치를 끄고 얘기를 하다 보면 누가 한 명이 옆에서 ‘그거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때가 와요. 그러면 그때 또 뒤통수를 맞는 거죠. 그 순간이 쪽팔리는 거예요. 그럴 바에는 밤에 잠이라도 잘 자게 진지충이란 얘기를 듣는 게 나아요. 제가 되게 별로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절 진지하게 보면 옳은 방향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만약에 나를 좋게 생각하면 잘 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인생에서 하나를 딱 없애고 싶다면?


불안. 그 불안에 증거 있냐고 물으면 없어요. 근데 내가 지금 제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불안이 너무 많은 거예요. 학교 앞에 요가 학원이 있어서 거기를 다니고 있는데요. 요가하고 집에 오면 실제로 쥐도 많이 나고 다리가 아프니까 괜히 또 무리했나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극도로 힘을 많이 쓰면 다행히 불안이 없어지긴 해요. 그때는 그냥 허해지고요. 불안할 때 이렇게 하면 되겠다고 붙잡을 만한 것들은 이렇게 하나씩 찾아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오로지 견뎌야 하죠.


꿈이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제가 만족할 수 있으면 되는 거 같아요.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거에 대해서 이유도 있고 만족할 수 있고 사는 방식이 납득이 되면. (그러면 그럼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거잖아요.) 결국은 확신이 없는 게 문제죠. 예를 들면 내가 이거를 좋아해서 잘해보고 싶은 건지 아니면 잘 해내야만 해서 하는 건지.


지금은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있으니까 제가 분명 어떤 걸 선택하고, 그 어떤 미래에는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그래서 그땐 제발 이유를 다 찾은 상태였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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