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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바다에 누워 Sep 25. 2021

바르셀로나표 돌솥비빔밥과 김치전 타파

BCN 〰 DUB. 03

2020

0226

Day2.



아침부터 거의 쉼없이 빨빨 거리고 잘도 돌아다녔다. 국립미술관을 갔다가 람블라스 거리를 걷고, 카탈루냐 광장, 거기서 멀지 않은 바르셀로나 성당까지 걸었다. 바르셀로나 성당 미사 시간까지 조금 남아 있어 성당 주변을 배회하다가 낯선 골목에서 우연하게 키스의 벽Kiss of Freedom을 만났다. 그 황홀하고 끈적한 벽을 멍하니 보다가 나도 카페로 들어가 몸을 녹이고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아침에 먹은 팬케이크 플래터 세트가 전부였는데 배는 고팠지만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딱히 뭔가를 제대로 챙겨 먹고 싶지도 않았고.(사실 그런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사람보다 비둘기가 많았던 카탈루냐 광장



바르셀로나 성당 미사가 시작되는 종소리를 듣고 성당 앞에서 조금 머뭇거리다 발길을 돌렸다. 20분 거리에 보케리아 마켓이 있어서 마켓에서 망고 주스 한 잔이나 해야겠지 싶었다.







마켓에 들어서자 마자 초입에 있던 해산물 가게에서 어색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한국 사람, 어서와요!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방송되었던 여행 예능들의 여파라고 생각했다. 바르셀로나하면 무조건 보케리아 마켓. 거의 뭐 외국인들이 한국 여행하면 명동을 꼭 가야 한다는 공식처럼 보케리아 마켓은 거의 그런 수준이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서툰 한국어의 호객 행위가 어쩐지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조용한 가게에서 하몽에 이네딧담을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나의 혼밥, 혼술 레벨은 너무도 쪼렙.




대만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신선하고 맛있었던 망고주스



주스 한 잔을 사서 마켓을 빠르게 한 바퀴 돌았다. 곧 시에스타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다시 돌아서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 주방에서 데이빗을 만났다. 데이빗은 쭈뼛하고 있는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괜찮은 여행이냐고. 그 질문에 나도 모르게 입이 터진 사람마냥 문법, 문장이 하나도 맞지 않는 서툰 영어를 쏟아내며 (신이 나서)이야기 했다. 2월에 스페인 날씨가 원래 이렇게 춥냐, 나는 스페인이 한국 봄 날씨 정도라고 해서 얇은 옷들을 챙겨왔다. 그러니 데이빗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안 그래도 조금 추워진 상태지만 곧 날이 더워질 거라고 했다. 따뜻하게 이야기 해주는 데이빗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거의 몸을 던지듯 누웠다.


누운 채로 The Smithes의 Asleep을 들었다. 잠이 올듯 말듯했다. 한국을 떠나오는 순간부터 잠을 제대로, 길게 자본 적이 없어 언제쯤 4시간 이상을 연달아 잘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활짝 열어놓은 테라스 너머 하늘을 보니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커피, 음료 말고 씹어 먹는 음식물을 삼켜낸 지 8시간도 훨씬 지난 상태였다.


뭔가 제대로된 끼니를 챙겨 먹고 싶어 주변 검색을 하다가 Little Corea라는 한식당을 찾아냈다. 메뉴를 보니 돌솥비빔밥, 삼겹살 등등이 있었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웅장해짐과 동시에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서 한식만 챙겨 먹었다는 친구에게 노인네냐고 했던 과거의 내가 오버랩 되었다. 나는 뭐, 크게 음식을 가리는 건 아니지만...그냥 먹기 싫어서 안 먹었던 것 뿐이고. 그런데 비빔밥을 먹을 생각에 심장이 나대는 것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돌솥비빔밥과 김치전 타파, 따뜻한 물을 주문했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주얼이고, 심지어 맛은 한국에서 먹은 돌솥비빔밥, 그리고 김치전 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돌솥을 손에 쥐고 밥을 싹싹 다 긁어 먹을 의지로 시작했으나 사실 한국을 떠나오면서 많이 심해진 위염 때문에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었다.


출국하기 일주일 전, 먹던 약을 과하게 복용하느라 위벽이 다 긁히고 피가 나서 씹어 먹는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먹는 것마다 다 토해내거나 한 그릇을 채 못 먹고 식사를 마쳐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조금만 더 욕심을 내서 김치전 만큼은 다 먹겠노라 결심을 했지만 목 끝까지 차오르는 더부룩함에 식사를 일찍 마쳤다.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너무 서러웠다. 사실 약을 과하게 복용했던 것은 내 의지였지만 이 상황에 대해 특정 인물을 충분하게 탓해도 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나를 더 채찍질하는 내가 가여울 지경이었다. 피해는 내가 겪었고, 그 받은 피해에 대한 보상을 당연하게 요구한다거나 상대의 불행이라도 빌어줄 수 있을텐데 다른 마음은 또 이렇다.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해 상처 받았다고 해서 이 고통을 그대로 돌려줄 순 없어. 그 사람에게도 상처가 될 거야.' 라는 뭐 이런 호구같은.






숙소 앞 Sant Antoni Market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거리에는 시에스타를 마치고 활기를 찾은 사람들이 타파스와 맥주를 마시며 행복, 그 비스무리 한 걸 찾아내고 있었다.


내 행복 비슷한 건 저곳에 분명히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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