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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바다에 누워 Oct 03. 2021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어느 곳에도 살지 않는 남자

BCN 〰 DUB. 04

2020

0227

Day3.






가우디 투어가 있는 날이었다. 바르셀로나로 여행의 시작을 정하기 전, 신혼여행으로 스페인을 투어했던 친구 부부의 영향이 아주 없진 않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며 바르셀로나의 온갖 상징적인(?) 선물들을 사와서는 그때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는데 그 당시 바르셀로나는 가보지도 못한 내가 상상만으로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우디 투어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뒤로도 어쩌면 작정하고 떠올리진 않았지만 은연중에 마음 속으로 생각이란 걸 계속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 '바르셀로나 = 가우디 투어'라는 공식을 거의 각인 시키다 시피 했었으니까. 덕분에 여행 생각이 없었을 땐 무심하게 흘려 보내다가 여행을 준비할 때 그 프로그램들로 솔솔하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지정된 미팅 장소로 약속 시간보다 30분은 빨리 도착했다.(이놈의 조급증...) 촉박하게 가서 길 헤매고 같이 가는 사람들한테 민폐 끼치는 것보다야 낫겠지 싶었는데 그날의 바르셀로나 날씨를 생각하면 30분 전에 도착한 것 자체가 미친 짓 같았다. 나름 두껍게 입는다고 터틀넥에 간절기 자켓, 머플러까지 꽁꽁 둘렀는데 옷을 뚫고 들어오는 찬바람과 차가워진 손발을 연신 비비며 가이드가 오기를 기다렸다.


미팅 10분 전 가이드가 먼저 도착했고 사람들을 기다리며 가이드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바르셀로나 날씨가 원래 이렇게 춥나요? 봄날씨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깜짝 놀랐어요."

"저도 어제 파리에서 넘어왔어요. 파리엔 무려 눈이 내렸다니까요. 요즘 유럽 날씨가 이상해요."

"파리에 사세요?"


파리에서 이곳으로 넘어왔다는 그가 퍽 멋져보였다. 가이드는 파리에 사냐는 내 말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어디에도 살지 않고, 어디에도 머물지 않아요. 전 어디에서도 살지 않고 있어요."

"그럼 어떻게 살고 계신 거예요?"


라고 묻자 가이드는 큰 소리로 웃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 같았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라서 웃었어요. 얼마 전에 제 어머니도 그런 소릴 하셨거든요. 얼마 간은 로마에 있다가 파리에서 살고, 다음 주 정도엔 세르비아로 넘어갈 예정이에요. 다들 그래요, 어떻게 이렇게 떠돌면서만 사냐고. 근데 아직까진 괜찮아요. 재미있어요."


한때 꿈꿨던 삶이기도 했다. 어딘가에 머무르지 않고, 일을 하면서 세계를 떠돌아 다니는 삶. 그런데 삼십대가 되고 보니 '불안' 자체가 내 모든 중심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회사 다니고, 회사 다니다가 승진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그런 삶. 몰랐는데 그런 보통의 삶을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사람들이 차츰 모이기 시작했다.





로마에서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일하고 있는 20대 남자, 포르투에서 넘어온 동갑내기 남자. 그리고 바로 전날 이스탄불에서 넘어온 신혼부부. 그리고 다음 주면 더블린으로 떠나는 나. 이렇게 단출하게 5명이 전부였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까사바트요, 까사밀라를 차례로 보고 구엘공원으로 이동을 했다.






버스를 타고 구엘공원으로 이동을 했다. 구엘공원에 닿았을 즈음 가이드가 한 정거장 더 지나서 내리자고 이야기 했다. 그를 따라 내리니 내가 진짜 높이도 올라왔구나 싶었다. 저 멀리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보였고 바르셀로네타도 보였다. 이 내리쬐는 햇빛에 호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힘차게 달려 높이 뛰어내리고 싶었다.



한국어로 친절하게 적혀 있는 구엘공원 가이드



구엘공원에 들어가서는 천천히 산책을 했다. 포토스팟인 도마뱀 조각상 앞은 이미 만원이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진 찍긴 글렀네 싶어서 공원 입구까지 걸어가는데 터키에서 왔다는 커플이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들의 휴대폰을 받아들고 나는 꽤 정성들여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가로로도 찍고, 세로로도 찍고, 그렇게 서너 번을 찍어주니 옆에 있던 이탈리아 할머니들이 자신들도 한번 찍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다섯 분의 해맑은 할머니들을 찍어드리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내게 사진을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한 할머니는 그럼 내 메일 주소를 달라고 했다. 가지고 있던 가이드 종이에 메일 주소와 이름을 남겼다. 할머니들은 내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진심을 다 해 행복해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구엘공원 전문 사진가였나 싶었다.


모이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공원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강 씨는 여기와서 가장 생각 많이 나는 게 뭐예요?"

"왜 그렇게 살았나 싶은 거요.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느꼈는데, 하늘 위에서 보니까 그냥 다 똑같이 작은 점이더라구요. 근데 그 점들이 뭐라도 되겠다고 아등바등 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제가 그랬어요. 7년을 그렇게 회사가 전부인 것처럼 살다 보니까 뭐가 남았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그렇던데요. 멀리 오니 진짜 자신이 보인 거죠. 그만큼 열심히 산 거예요."






마지막 가우디 투어까지 마치고 따로 예약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입장 시간까지 조금 남아 해가 잘드는 대리암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옆 거리에 있는 건물들 자리가 머지 않아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라 철거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따뜻한 햇빛 아래 앉으니 꽁꽁 얼고 경직되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싱 스트리트>의 'To Find You'를 무한 반복해 들었다. 영화 속 주인공 '코너' 덕분에 유럽에 닿게 되었는데, 혹시라도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아주 많이 힘들었던 1월로 돌리면 좋겠다 생각했다. 사람은 이렇게 지나온 시간에 대해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이상한 용기 같은 것도 생기고. 그때로 돌아가도 어차피 결과는 똑같을텐데 말이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안에선 꽤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이라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하며 나도 수난의 파사드 방향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은은하게 공간을 가득 채운 빛들을 보니 마음 가득 눈물 같은 게 차올랐다. 웅장함에 감동한 것도 있지만 이곳까지 오기 위해 스치고 무심히 보낸 시간들이 모두 떠올랐다. 왜 그렇게도 많은 것들을 그냥 흘려 보냈던 건지. 왜 그렇게도 힘들해 했던 건지. 돌아보니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들인데.


성당에 들어온 많은 사람들의 표정도 제각각이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간절함을 가지고 들어와 성당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를 드리고 배출을 했다. 뭐, 나라고 그 방식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종교도 없는 내가 두 눈을 감고 딱 한마디 마음으로 읊조렸다.


"행복해지고 싶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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