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403호의 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바다에 누워 Mar 20. 2022

직장생활 10년 차에 새삼 깨닫게 된 나의 사회성


이직을 했다. 아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에 있던 곳에서 도망쳤다 라는 게 맞으려나…(내가 못하겠다고 했으니 아무튼 도망친 게 맞는 듯) 그 타이밍에 감사한 기회가 주어졌다. 이참에 프리랜서로 살아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찰나, 나를 스타트업의 길로 인도한(?) 나의 귀인.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에 몇 번이고 거절을 하기도 했다. 이유는 그랬다.


1. 일로 만난 사이긴 했지만 고용주와 고용인의 사이가 될 경우 마음 상하거나 좋았던 관계를 망칠 수 있어서

2. 오래 보긴 했지만 (나의 고용주가) 내가 일하는 과정이나 그 성과에 대해 실망할까 봐

3.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것, 10년 동안 쌓아왔던 마케팅 커리어에 정지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것

4. 아무튼 서로에게 실망하고 좋은 관계를 망칠까 봐


현재,  팀에 합류해 일을 함께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고민들은 여전히 유효하고, 때때로 나를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기도 한다. (출근 2주차인데…)


첫 출근을 하고 첫 회식이 있던 날. 직원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순수하고, 밝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활기찬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야기가 단 한순간도 멈췄던 적이 없다. 어쩜 그렇게 대화가 자연스럽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 그 대화의 속도에 맞춰 리액션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다 포기하고 평온한 미소를 매 시간 유지했다. 그러다 “히라님은요? 히라님 얘기 듣고 싶어요.”라고 동료가 내게 묻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저요? 저는…”


라고 한 마디를 떼자마자 다른 분께서 “별자리가 어떻게 돼요?”라며 말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천칭…’이라고 답을 하려 했지만 이미 각자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순간 생각 하나가 단전에서부터 머리까지 꽤 빠른 시간 내에 도달했다.  ‘회사생활이 나랑 안 맞는 건가?’하는.


점심도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 먹는 게 편해졌다. 집에서 냉장고를 털어와 간단히, 호다닥 챙겨 먹고 회사 근처를 산책하며 생각들을 정리했다. 때때로 그 순간이 외롭지만 어차피 모두 이런 외로움 하나쯤은 다 느끼며 살아갈 테니까.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외로움은 결국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해 생긴 결과이기도 하다.


화요일, 모두가 퇴근하고 사무실을 정리하는데 꽤 무거운 슬픔 같은 게 파도처럼 확 몰아쳤다. 자존감이 저 땅굴, 그보다 더 밑바닥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 그 이유였다. 해가 다 지고 깜깜해진 유리창 밖으로 내 모습이 비춰졌다. 그 모습이, 그렇게 바보 같고 무능력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병(?) 같은 게 있다. 친구들은 이걸 ‘조급증’이라고 부른다. 이 조급증은 보통 첫 출근 후 1~2주 내에 발병을 하는, 급하고 아주 고약한 병이다.

 출근  한 달 내에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 라는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무척이나 괴로워하는 초기 증상을 띤다. 그리고  말고도 다른 것들을 하나  챙기기 시작한다. 물을 먹으러 탕비실에 갔을  싱크대에 누가 먹고 그대로 놓아둔 컵이 보이면  컵을 닦고, 테이블에 쓰레기가 그대로 있다면  쓰레기를 정리한다. 사소한 것들을 챙긴다는  병을 크게 키우는 증상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조직에 필요 없는 사람인  같아.’라는 환청 같은   오래 머릿속을 맴맴 돈다.


퇴근길, 친구와 통화를 하며 이야기했다.


“난, 회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왜 또”

“불안해서. 사람들은 엄청 사랑스럽고 밝아, 근데 나만 우중충해서는. 그리고 다들 일도 척척 잘하고, 프로인데 나만 아마추어 같아. 일을 하긴 하는데 뚜렷한 성과 같은 게 그려지지도 않고, 감을 못 잡고 있는 것 같아. 월급 축내는 사람 같아.”

출근한  이제 2주차 아냐?”

“그렇지.”

누가 보면    다닌  알겠어.   다녔는데 그런 기분 들면 그만두라고  텐데 겨우 2주찬데?.”


밥 값을 못 한다는 게 ‘일하는 나’로서는 가장 괴로운 사실이다. 대표들의 입장에선 연봉을 주고, 어쨌든 경력자인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그 사람이 생각보다 일도 더디고, 감도 못 잡고 있으면 얼마나 답답할까…를 항상 생각했다. 이전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퇴근 후 성취감이라는 걸 좌우하는 건 소위 말하는 그 ‘밥 값’이었다. 일에 치여 지친 상태로 퇴근했을 때도 그 밥 값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기분은 묘하게 다르다. 그렇다고 대표님들이 ‘밥 값도 못하네’라고 재촉하거나 눈치를 주는 건 아닌데, 이건 결국 오롯이 내 문제에서 비롯된 것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조금은(?) 다행인 건, 전에는 이 괴로움 때문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두려웠는데 해가 바뀌고 나름 나이를 먹었다고 단순함이라는 기능 장치가 내게도 생겨났다. 물론, 아직도 그 회의감이라는 것에서 벗어나는 게 어렵고 서툴긴 하지만.


어쨌든 직장생활 10년 차가 되어서 매우 큰 벽에 부딪쳤다.


- 내가 과연 일을 잘하는 사람인가

- 연차에 맞는 업무 스킬 같은  있긴 

- 나는 무슨 일을 해야 재미있는가

-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걸 보니 사회성이 부족한가

- 조직생활에 어울리는 사람이 맞는가


뭐 대충 이런 것들,,

직장생활은 아무리 해도  모르겠다. 어쩐지 내 인생은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판사에 뼈를 묻을 줄 알았더니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