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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다미 Jan 14. 2023

그녀는 I가 확실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고졸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치열한 삶 속에서 어쩔 수 없었기에 부끄럽지도 않다. 고3 때 취업한 뒤 돈을 벌어야 했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5년 뒤 세상을 더 알고 싶어 공부를 하려 했지만 혼자 개척하기가 힘들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해서 결혼을 선택했다. 이후 아이들 키우다 시간만 흘렀다. 중간중간에 대학이라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이내 포기했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3년 전 우연히 공부를 시작하다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배운 적이 없기에 실력도 없지만 글을 쓸 때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써왔다. 누구도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을 당시 내 글 선생은 브런치였다. 수도 없이 문을 두드렸고 수십 번 '브런치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라는 메일을 받았다. 끝도 없는 도전 끝에 브런치 문이 열렸고 이후로는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글은 중독성이 매우 강한 듯하다. 쓰면 쓸수록 자꾸 쓰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고 소재거리가 없을 때는 답답한 마음도 있다. 쓰고 싶지만 소재가 없어 답답한 이유는 내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야를 넓혀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느낀다. 마침 배우고 싶은 생각이 절실할 때 평생학습관에서 시작하는 '현대문학의 이해와 창작'이라는 수업이 개설되어 1번으로 신청했다.


비 오는 금요일 저녁 첫 시간 기대하는 마음으로 제일 먼저 도착해서 빈 강의실에 앉았다. 잠시 뒤 직원과 강사로 보이는 두 사람이 들어왔다. 강사의 얼굴은 어림잡아 2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처음 얼굴을 본 순간 약간의 실망이 몰려왔다. 내가 생각한 강사의 이미지는 나랑 비슷한 나이이거나 조금 많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짜 실망한 이유는 강의실 들어오면서 인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인의 학생인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내가 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되자 강사는 자신의 앳된 얼굴에 대해 먼저 설명했다. 자세한 이력은 얘기하지 않지만 경력이 있다는 말로 시작한 뒤 수강생 소개 시간을 가졌다. 서로 처음 대면하니 당연히 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강사는 자신 없는 듯한 말투로 "이름만 얘기해도 되고, 안 해도 돼요."라고 말한다. 속으로 이 수업 계속 들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강사의 자신 없는 리드에 이름만 얘기하는 수강생도 있었고, 소개를 거부하는 수강생도 있었다. 조금 길게 얘기하는 수강생은 40대 이상인 듯했다. 강사는 뒤이어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아요."라는 말까지 했다. 속으로 '오 마이 갓!'을 외쳤다. 강사에 대한 신용도가 급격히 추락했다. 하지만 5분 뒤 방금까지의 내 불안은 말끔히 씻겨졌다. 그녀의 눈빛을 봤다. 문학에 대해 말할 때 확신에 찬 눈빛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내향성과 외향성. 나는 문학의 깊이를 잘 알지 못해서인지 모르지만 외향적이다. 말하기를 좋아한다. 강사는 딱 봐도 내향성이었다. 처음 입장할 때 인사하지 않은 점부터 중간중간 흐름을 타는 대화는 거의 다 소심함이 느껴졌다. 강사에 대해 신용을 갖지 못한 이유는 어려서가 아니라 내향성이 드러났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강의는 성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비록 첫 수업을 했을 뿐이지만 현대 문학이 더 궁금해졌다. 내향적인 강사의 강렬한 눈빛을 계속 느끼고 싶어졌다. 문학은 쓸모없기 때문에 쓸모가 있다는 강사의 얘기에 깊은 공감을 느끼는 밤이었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어린 강사님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내 문학의 시선과 깊이가 넓고 깊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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