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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Sep 23. 2022

Luxury at its best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Luxary at its best.”

이 문구를 보고 든 생각은?


뭐가 잘못됐는지 알겠는가?

그렇다.
“Luxury”를 ‘luxary’라고 쓴 거다.
평소라면 별 문제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광고 간판에 있는 오류라는 것.

어제 링크트인에서 어떤 마케터가 올린 사진에서 본 제네시스 간판 광고 문구다. (그 사진은 못 찾겠다.) 옆에 히브리어가 써 있는 걸 보니 이스라엘에 있는 간판 광고였다. 그 마케터는 이런 논평을 올렸다.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의 광고 캠페인에 좀 더 있어 보이려고 영어를 쓰는 경우가 제법 있다. 교정은 ‘네이티브’에게 맡기자.”

그 글을 보자마자 “니가 네이티브 아닌 사람의 설움을 알아?”는 마음이 일었다. 이어서 모국이 아닌 곳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그것도 ‘번역을 한다는 전문가’ 위치에 맞게 써야 한다는 두려움과 강박에 늘 확인하고 검색하고 또 다시 검토하는, ‘방망이 깎는 노인’으로 살아야 하는 설움에 울컥했다.

댓글에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품질관리가 왜 저래. 제네시스에 실망하게 된다.” “이스라엘에서 하는 광고에 영어가 웬말이냐. 쓰려면 제대로 쓰기라도 하지.” “이렇게 화제가 되는 걸 보면 성공적인 캠페인 아니냐.” “감수가 중요하지. (잘못된 경구문구 짤)” “Luxary라는 부문을 신설했나 보지.”

생각이 더욱 많아졌다. 링크트인 프로필 사진을 보아하건대 영미권 백인 남성인 원글 게시자는 네이티브 스피커로서 누리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과연 그 사람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을 비난한다고 봐야 할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평소에 쌓인 설움(?)으로 인한 나의 과민반응은 아닐까?’ 설령 네이티브 스피커로(로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무언가를 인지한다면) 과연 저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걸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마지막에 든 생각은  ‘Luxury라는 단어가 그렇게 어려운 단어도 아닌데, 과연 저 실수의 핵심이 ‘네이티브’에 있어야 하는가?’ 

Luxury가 그렇게 어려운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아가 한국 기업이긴 하지만, 저 문구만큼은 영어가 모국어인 카피라이터가 썼을 수도 있다. 설령 한국어 카피라이터가 썼다고 해도, 우리나라의 영어 열풍을 생각할 때, Luxury의 철자를 과연 몰랐을까 싶다.  그 뒤에도 프린트되기까지 수많은 단계가 있었을 텐데… 최종 컨펌 전에 한 사람만 저 문구에 신경을 썼다고 해도 저런 실수는 없었을 텐데. 저건 그냥 일을 못한 거다. 나는 그 실수를 그냥 ‘네이티브’로 뭉개버리는 ‘네이티브’의 무신경함에 화가 난 거고.

고민 끝에 댓글을 달았다. “망친 캠페인이냐고요? 네. 그런데 과연 그게 ‘네이티브’의 문제일까요? ‘네이티브’가 아닌 번역자로서 미국에서 수년 살면서, ‘네이티브’의 수많은 오류를 본 사람으로서, 글쎄요…” 정도의 논지로. 다행히 누군가 네이티브가 아닌 사람은 저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이미 댓글을 달았기에 저 정도로 달았다. ‘네이티브가 아닌’ 내가 너무 기를 쓰고 오버한다고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없었다고는 못 하겠다.

실제로 미국에 와서 ‘its’와 ‘it’s’ ‘there’와 ‘their’를 구분하지 못하는 미국 네이티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아닌가. ‘안되다’와 ‘않되다’를 구분 못하는 한국 네이티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걸 지적하면 ‘오히려 별 문제 아닌 걸 왜?’라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 네이티브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알진 않는다. 다만 자신의 잘못에 부끄럽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을 뿐. 모든 특권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자격 운운하는 논쟁에서 빗겨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자유가 특권의 핵심 아닐까.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유색인종 컴퓨터 그룹을 이끄는 Dorothy Vaughan이 백인 여성 관리자 Mrs. Mitchell과 화장실에서 만나는 장면이 기억난다.

“Despite what you may think, I have nothing against y’all.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너네들에게 나쁜 감정 없어.”
Dorothy는 한참 후에 이렇게 대답한다. “I know. I know you probably believe that. 그래. 아마도 그렇게 믿겠지.”

Dorothy의 승진을 거부하며 ‘조직이 그러니까 그런 거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통보하던 Mrs. Mitchell은 남자 엔지니어들이 함께 일하는 여성들은 저자로 올리지 않던 시대에 NASA에서 일하는 중간관리자다. 백인이니 흑인 여성들보다는 나았을지 몰라도, 그 역시 차별을 일상적으로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Dorothy가 정식으로 IBM 컴퓨터 관리 그룹의 매니저가 되고 나서야 Mrs. Mitchell이라고 인사하는 Dorothy에게 Mrs. Vaughan이라고 목례를 보낸다.

다시 Luxary로 돌아와 보자. 링크트인 마케터는 별 생각 없이 글을 썼을 거다. 그걸 ‘네이티브 논쟁’이라고 (약자를 자처하며) 파르르 떠는 나도 별 수 없이 또다른 지점에선 나만의 우물에 갇힌 ‘가진 자’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 사람의 별 생각 없음이 참으로 부럽다. 골치 아픈 세상에 ‘생각 없음’이야말로 ‘luxury at its best’가 아니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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