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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Mar 05. 2023

생애 첫 농구 경기

딸 덕에 NBA 직관

생애 최초로 농구 경기를 보았다. 무려 NBA 직관이다. 


NBA 팀이 두 곳이나 있는 엘에이에 6년을 살았는데 한 번도 농구 경기에 가본 적이 없다. 농구뿐만이 아니다. LA 다저스는 그나마 박찬호 선수 덕에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경기를 가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박찬호 선수를 집 근처 한식당에서 스치듯 본 적은 있다.) 아, 시부모님이 놀러 오셨을 때 야구 경기 표를 사드린 적은 있고, 그나마 남편은 친구가 싼 표가 생겼다고 해서 한 번 다녀왔다. 그게 10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 부부의 미국 생활 중 스포츠 관람과 연결된 유일한 기억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적어도 두 달에 한 번 이상 콘서트, 뮤지컬, 연극 등 문화관람을 제법 자주 했었는데, 미국에 와서는 빈한한 유학생 살림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 좋아하는 공연도 안 가는데 스포츠 경기 티켓에 돈을 쓰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온 미국, 아니 나아가 세계가 떠들썩하게 난리인 슈퍼볼도 한 번도 보지 않았던 걸 생각해 보면 그냥 운동 경기 관람 자체에 취미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그랬던 내가 무려 NBA 경기를 직관으로 보다니. 

어찌 보면 순수한 목적은 아니었다. 얼마 전 걸스카우트 모임에서 "Girl Scout Dance Clinic"이라는 행사 이야기를 들었다. 경기 티켓과 댄스 클리닉 티켓을 함께 구매한 걸스카우트들이 모여서 치어리더들과 함께 사전에 연습을 하고, 경기 전에 짧은 공연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의무 참석은 아니었지만,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가볼까 싶었지만 바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있었다.


'시아가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키즈 줌바할 때 보면 춤추는 쪽에 크게 재능은 없던 것 같던데...'
'공연은 그렇다 치고 이어지는 경기 시간 내내 잘 있을까?' 

문제는 아이만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나는 샌프란시스코 농구 팀 이름도 몰랐다. Golden State Warriors. 금을 캐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개발이 이루어진 캘리포니아의 별칭을 따서 만든 이름이란다. 처음에 팀이 생긴 건 1949년에 필라델피아에서였고 1962년에 샌프란시스코로 옮겼는데 지금의 이름을 단 건 1971년부터란다. (이것도 경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찾아본 거다.) 이름도 몰랐으니 이 팀의 경기를 직접 본다고 해도 별다른 감흥이 있으랴 싶었다. 


그러다 걸스카우트를 시작하면서 했던 결심을 떠올렸다. 우리의 이전 경험으로 아이의 경험을 제한하지는 말고,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한, 미국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를 마음껏 누리고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답은 쉽게 나왔다. 시아에게 물어보았다. 워리어스 팀은커녕, 농구 자체도 잘 모를 시아는 걸스카우트 모임이라고 하니 순순히 가겠다고 했다. 그래. 우리가 슈퍼볼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면서 바비큐 파티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단체 관람을 하는 집이 될 리는 없지만, 그래도 NBA 경기, 그것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묻어서 가는 정도는 할 수 있지. 그렇게 티켓을 결제하고 잊어버릴 즈음, 연습하러 오라는 공지가 날아왔다. 


작년에는 본 경기 몇 시간 전에 모여서 연습을 했다고 하는데, 올해는 일주일 전에 모였다. 일요일 아침 8시에 오클랜드 연습장까지 가는 길부터 쉽지 않았다. 오클랜드까지는 한 시간 좀 안 되는 거리. 다행히 7시쯤에 나와 한참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시아의 새까만 운동화가 눈에 띄었다. 헉. 연습이나 실전 때 경기장에 자국을 남길 수 있으니 검은 밑창은 피해달라고 했던 공지를 보고 전날 남편에게도 얘기해 놓고 얼마 전 산 밑창이 하얀 신발을 꺼내 놓았었다. 그러나 막상 아침에 나올 때 우리는 둘 다 아이가 무슨 운동화를 신고 나오는지는 챙기지 못했고, 시아는 시아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가 제일 즐겨 신는 낡은 검정 운동화를 신고 서둘러 차를 탄 거다. 


급하게 가는 길에 있는 월마트를 검색했다. 다행히 5분 거리에 한 곳이 있었다. 부랴부랴 들어가서 바닥이 하얀 신발을 한 켤레 사고 다시 연습장인 컨벤션 센터로 향했다. 남편이 우리를 먼저 내려줬다. 컨벤션 센터가 호텔 안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와야 한다고 알려준 다른 걸스카우트 부모 덕에 빠듯하지만 연습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모이는 시간이 있어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2시간 정도 연령별로 팀을 나눠 연습을 하고 나중에 모여 전체 리허설을 했다. 가장 어린 팀의 앞줄 맨 가운데에서 삐걱거리며 틀리는 시아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래도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는 걸 보면, 본인은 충분히 즐기는 것 같았다. 그거면 됐다.


주최 측에서 수요일에 리허설 비디오와 연습 영상을 보내주면서 연습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연습 날에는 깔깔거리며 웃으며 넘어갔는데 맨 앞 한가운데에서 유난히 못하는 모습이 박제된 영상을 보니 연습을 시켜야만 할 것 같았다. 마침 일주일 방학이라서 시간 여유도 있었다. 금, 토, 일 3일간의 고난의 행군이 그렇게 시작됐다. 하루에 1시간 반~2시간씩 연습했다. 물론 안 하겠다는 아이를 설득하는 데 쓴 시간이 반 이상이다. 엎어져서 울면서 연습하기 싫다고, 자기는 바보라 아무것도 못한다고 소리치는 애를 얼르고 달래서 일으켜 세우는 걸 무한 반복했다. 30초의 짧은 루틴이지만, 치어리더가 보내준 영상을 바로 따라 하는 건 버거웠다. 처음에는 0.5배속으로 느리게 플레이를 했는데 그것도 안 되겠어서 4박자씩 구분 동작으로 바꿔주고 시범을 보였다. 그래도 꽤 좋아졌다. 동작과 동작 사이가 살짝 딜레이 되는 것만 빼면. 


웅장한 음악이 깔리고 본 경기에서 완벽한 안무를 선보이는 아이의 모습. 벅차오르는 어미의 마음으로 마무리하면 참으로 좋았겠으나, 세상 일이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연습 후반부에는 그럭저럭 잘하는 것 같던 아이는 본 공연 때는 삐걱삐걱 엇박을 선보였다. 그나마도 나랑 남편은 공연을 끝내고 나올 아이를 데리고 오느라 이동 중이어서 제대로도 못 봤다. 아무리 멀고 높아도 그냥 자리에서 볼 걸. 경기장 중앙의 전광판에서 보면 좀 나았을 텐데. 두고두고 아쉽다. 


응원전에 이어 본경기도 흥미진진했다. 예전에 배웠던 농구 규칙이 가물가물했지만, 남편에게도 묻고 검색도 해가며 농구 경기를 관전했다. 다만 경기 흐름이 생각보다도 더 빨라서 잠깐 딴 눈을 팔다 보면 명장면을 놓치기 일쑤였다. 농구 경기라고는 만화 슬램덩크로만 봤으니 멋진 슛이나 덩크 장면을 몇 번이고 멈추고 혼자 리플레이를 할 수 있었으니 이런 빠른 호흡에 익숙할 리 없었다. 실제로 경기 중에도 전광판에 리플레이를 해줬는데 리플레이를 보다가 실시간으로 멋진 3점 슛을 몇 번 놓치고 나니 그냥 리플레이를 잘 보지 않게 되었다. 놓친 것에 미련을 두다가 계속 따라잡으려고만 하기 바쁘니 그냥 지금 일어나는 장면에 집중하는 게 나았다. (어디 농구뿐이랴.)


워리어스는 물론 농구 팬도 아니었어서 시아는 물론, 나나 남편도 긴 시간 동안 경기를 잘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홈경기장인 체이스 센터를 가득 메운 워리어스 팬들을 따라 하며 "우리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시아도 목이 터져라 함성을 외쳤다. 뜨거운 응원 열기를 느끼며 홈경기 어드밴티지가 상당하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워리어스는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를 상대로 첫 쿼터 때만 해도 15점 넘게 뒤지다가 엎치락뒤치락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다가 끝내 109대 104, 5점 차이로 이겼다. 양 팀 모두 경기 중 화려한 3점 슛을 많이 선보였기에 5점 차이가 굉장히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아쉬운 게 있다면 3점 슛의 대명사로 알려진 스테픈 커리가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는 거?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선수였는데... 흑.) 그래도 팀을 응원하러 나온 커리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보며 위안했다. 그가 아니어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첫 관람이다 보니 미숙한 게 많았다. 혹시라도 직관을 계획한다면 매우 일찍 가고 가져가는 게 경기장에 반입 가능한지를 미리 알아보기를 권한다. 우리도 나름 일찍 출발하고 출발 전에 입장 시 주의사항도 읽다가 예약 주차를 할 수가 없길래 주차도 좀 떨어진 저렴한 곳에 하려고 미리 계획했는데 거의 모든 계획이 다 어그러졌다. 막상 현장 근처에 가서 교통 통제에 맞춰 빙글빙글 돌다가 시간이 빠듯해졌다. 주차장을 찾는다고 해도 그곳에 대고 돌아올 길이 요원해서 $50이었나? 하는 주차료를 내는 센터 바로 옆 주차장에 차를 댔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배낭은 가져갈 수 없다고 하는 표지판을 멀리서 보고 가지고 갔던 배낭을 남편에게 들려 다시 주차장으로 보냈는데 입장 직전에 보온물병도 가지고 갈 수 없다고 해서 또다시 남편을 돌려보내고 기다렸다. 재입장은 금지라고 하고 내 폰에 다운로드했던 디지털 티켓을 남편에게 양도하려고 보니 제대로 될지 불안해서 그냥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걸스카우트 댄스 클리닉 행사 모임 시간에 10분 정도 늦어버렸다. 다행히 시간을 여유롭게 잡은 건지 행사 참여에는 문제가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도 걸스카우트를 대상으로 경기장에서 슛을 날리는 무료 행사가 있다고 해서 내심 기대했는데 결국 참여하지 못했다. 우리 자리가 있던 위쪽에서 빙글빙글 인파에 떠밀려 나오다가 헤매다가 그냥 체이스 센터 밖으로 나오는 계단으로 나와버린 것이다. 다시 입구로 돌아가 이 행사에 참여하려고 했고 위의 안내 요원이 저 문으로 나가라고 안내해 줬다고 메일을 보여줘도 완강하게 재입장이 안된다고 해서 포기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시아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계속 워리어스 팀과 선수들을 검색하면서 남편과 시아에게 알려줬는데 계속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첫 농구 경기의 열기가 벌써 지난 주말의 일이다. 농구에 이어 오늘은 아이스하키다. 역시 걸스카우트 대원들과 가족들과 함께 단체관람한다고 했는데 고민 끝에 이번에는 남편과 시아만 보냈다. NBA만큼 NHL의 열기도 뜨거우려나. 그 순간을 같이 하지 못해 조금은 아쉽지만, 오늘은 2시간 남짓한 나의 자유 시간이 더 소중하다. 덕분에 이렇게 글도 마저 쓴다. 아, 세탁기 알람이 울린다. 건조기 돌리러 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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