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장애인권리위원의 마을살이 1편
[Editorial] 김미연 UN장애인권리위원은 위스테이별내 입주 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집은 처음이다, 53년 만에 처음으로 내 몸에 맞는 집을 만났다”라고 이야기했다. ‘입이 닳도록’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입주 3년을 넘긴 지금, 그는 ‘마을’과도 서서히 사랑에 빠져들었다. 유아차, 자전거, 휠체어 등 다양한 바퀴가 공존하는 마을에서의 일상이 편안하고 만족스럽다고 했다.
1년에 2차례 UN국제회의장을 누비는 그는, 위스테이별내가 UN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가장 중요한” 조항인 19조, 즉 “모든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을 통하여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를 실현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자부한다. 이 마을에서 경험한 일들을 혼자만 알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연재될 그의 글은 휠체어를 타며 마을에서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이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계단과 문턱, 이웃들의 따가운 시선이 있는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일상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들이 흘러흘러, 생각지 못했던 먼 곳까지 가 닿기를 바란다.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재미와 감동을 와락 안겨주는 이 이야기들이,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촉발해 주기를!
김미연 (UN장애인권리위원, 위스테이별내 입주자)
위스테이에서의 일상을 글로 옮겨 보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이 마을의 천진한 어린아이들 덕분이다. 평소처럼 전동휠체어를 타고 동네를 지나고 있던 어느 날, 자전거, 킥보드와 같은 저마다의 바퀴로 온동네를 누비며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나에게 달려오는 게 아닌가. 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와 눈맞춤을 하며 와르르 질문을 던졌다.
“아줌마는 어떻게 저절로 가요?”
“왜 아줌마는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있어요?”
너무나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만약 가능하다면 나도 이걸 타보고 싶다는 눈빛으로 전동휠체어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나 역시 너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들의 예의 바른 부모들, 나의 이웃들은 혹시라도 내게 무례를 범하는 것일까 말리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질문과 관심은 나를 더 신나게 한다. 그러니 전혀 걱정하지 마시기를.)
“여기 보면 토끼 버튼이랑 거북이 버튼 보이지?”
“네!”
“토끼 버튼을 누르면 바퀴가 빨리 움직이고, 거북이 버튼을 누르면 천천히 움직이는 거야.”
그러고는 버튼을 눌러 보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거북이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세발 자전거부터, 킥보드, 심지어 외발 자전거를 타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바퀴를 타는—그것도 동네에서 제일 신기한 바퀴를 타는—이웃 아줌마로 마을에 녹아들어 살고 있다.
위스테이별내 살이 2년차에, 동네협동조합이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장애인권 이해교육을 주최한 적이 있다. 이 교육 이후, 단지 밖에서도 나를 알아보고 달려와 인사하는 우리 동네 아이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정작 내가 그들을 못 알아본 건 비밀이다).
“어, 아줌마!! 어디 가세요?”
“동네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로 놀러 가는 길이야. 동네 카페가 오늘 월요일이라 안 열잖아.”
“아, 부럽다. 저는 지금 학교 끝나고 집으로 바로 가야 해요.”
“하하 부러워? 날도 더운데 얼른 집으로 가보렴.”
장애인권 이해교육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동네 아이들과 함께 가졌지만, 엄숙하고 비장한 눈빛으로 특별한 무언가를 가르치는 시간은 아니었다. “장애인권”이라니! 이 초등학생 어린이들과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화 물꼬를 터야 할지부터가 이미 난제인데, 교육은 무슨 교육이겠는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던진, “같은 반, 같은 학교에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니?”란 질문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을 때,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아는가!
‘어딘가 좀 이상하고 바보 같은 애’, ‘선생님 말을 유독 잘 안 듣는 애’, ‘가까이 하기 싫은 애’는 있다는 아이들의 말을 들었을 때, 이 아이들은 아직 ‘장애’라는 개념, 언어를 잘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었다(아이들에게 그동안 장애인은 ‘휠체어를 탄 사람’이라고 인식되었겠구나 싶었다. 학교에는 휠체어 타는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곧바로 ‘본인이 어딘가 다르고 몸이 불편하단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 어떨 것 같아?’라는 질문으로 바꿔 보았다. 아이들은 ‘슬플 것 같다’, ‘외로울 것 같다’는 답을 돌려주었다.
아이들의 말은 서툴지만 정확하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사는 동네에서 배제되고 격리되는 건 그런 것이다. 슬프고 외로운 것.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따돌리고 소외시키면 안 된다는 것을.
지난 30년 동안 장애인권 활동가로서 ‘장애차별 문제’를 국내외적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찾아왔지만, 요즘은 무언가 또 다른 인권운동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장애/비장애로 이미 분리된 개념은 다시 통합하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세대가 공유하는 ‘장애’에 대한 이미지는 생각보다 꽤나 공고하다. 지하철과 길에서 마주치는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장애인을 ‘불쌍하고 비참한 존재’로 여기고, 내 몸에 불쑥 손을 대 쓰다듬는다. 이상하게 어르신들은 ‘딱한’ 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투기도 하셔서, 나를 괜히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매일 매일 겪는 현재, 나의 일상 현실이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거나, 어딘가 대하기 불편한 존재라는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는 일은 꽤나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빛과 언어로 내게 말을 걸어오는 존재, 위스테이별내의 어린이들이 있는 동네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신선한 충격이겠는가. 그것도 매일 매일 말이다. 어떤 경계심도 없이 나를 마주하는 새로운 존재들을 50대 후반에서야 만나고 있다. 내 인생에, 불현듯 만난 인연들이다. 새로운 관점과 언어로 나에게 말 거는 새로운 존재들이 드디어 나타났구나! 그렇다면 앞으로 50년 후에는 또 어떤 존재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까.
‘나 아무래도 100살 넘어서까지 오래 살아야겠어, 새로운 그 누구를 만나려면 말이지!!’
나는 가끔, 스스로를 “당신들의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부르곤 한다. 사람들이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는 일을, 나는 이미 50년 넘게 겪어 오면서, 당신에게 곧 다가올 미래에 어떻게 거침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보여 주는 사람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근시일 내 도입 예정인 ‘퍼스널 모빌리티’도 결국은 전동휠체어의 또 다른 버전이다. 젊은이들이 도심 속을 누비며 탔던 ‘전동휠’의 바퀴도, 전동휠체어의 바퀴와 원리가 같다. 퍼스널 모빌리티가 도심 속에 더 적극 도입이 되면, 나는 그들보다 먼저 퍼스널 모빌리티를 이용하고 경험한 ‘선배’가 아니겠는가. 걷지 못하는 게 무슨 문제인가 싶은 그런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다양한 탈 것의 하나로 우리 동네를 누비는 나는 당신에게 미리 온 미래이다.
미국 오리건의 유진 시(市)에서, 마을의 모든 바퀴 달린 탈 것들이 함께 즐기는 멋진 퍼레이드를 만난 적이 있다. 그 페스티벌에서는 휠체어도 그런 수많은 ‘탈 것’ 중 하나다. 자연스러웠다. 거기서는 누구도 휠체어를 환자의 그것, 나약한 그것으로 보지 않았다. 또 다른 바퀴 달린 것, 심지어 유쾌한 그것!이었다. 내가 만약 우리 마을에서 축제를 기획하는 날이 온다면, 자전거, 킥보드, 유아차 등 바퀴 달린 모든 것들을 타고 온 마을을 함께 굴러다니는 그런 퍼레이드를 만들어 보고 싶다. 이미 설계 때부터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해 만든 아파트 공간 덕에, 누구든 불편함 없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축제라면, 나도 수많은 바퀴 중 하나로 어울릴 수 있을 터다. 아니다. 속도가 나름 빠른 내 전동휠체어는 앞 줄에서 신나게 퍼레이드를 이끌지도 모른다.
위스테이별내에서 나는 UN장애인권리위원으로서가 아니라 동네 주민으로서, ‘모든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을 통하여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UN장애인권리협약 19조의 의미를 온통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게 그저 문구로만 가능한 일이 아님을 보여 주는, 우리 동네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 보려 한다.
UN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묻는 제네바 UN회의장에서는 누구보다 꼬장꼬장하고 날카로운 질의를 하는 무서운(?) UN장애인권리위원이지만, 우리 마을에서 나는 그저 평범한 이웃, ‘그냥 우리 동네 아줌마’로서 섞여 살아가고 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상인가. 이 글은 위스테이별내, 작은 동네의 이야기이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고 있는 이웃들에 대한 나의 사랑 고백이기도 하다. 부디 재미있게 읽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