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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글 Jan 17. 2024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나의 걸음을 바라는 엄마에게

엄마

나는 글을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쓰지 못하고 있었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어

글을 쓸 때마다 나를 떼어내어

글자를 만들고 문장을 만들어서

세상에 흘려보내고

내가 다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어


내 이야기보따리가 소진된 이유는

내가 고여있기 때문이겠지?

내 안에 무엇이든 넣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것 외엔

무엇도 담으려 하지 않으니까

삶의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으니까

나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엄마,

나는 엄마처럼 먼 곳을 바라보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

나에게 있는 것들로만

부족하고 소박하게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제한하며 더 큰 꿈을 꾸지 못했어


지금껏 이루어 낸 것이 없으니까

앞으로도 이룰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했나 봐


그런데 엄마는 항상

먼 곳을 향해 바라보고 서 있어

늘 자신감을 가지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잖아


엄마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하고 있는 일도 참 많지

그래서 엄마에게서는 늘 빛이 나나 봐


엄마, 나도 엄마처럼 될 수 있을까?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용기 내볼까?


아무리 노력한대도

결국 빛을 얻지 못할 것 같대도

그 노력 자체가

빛이 된다고

엄마는 그렇게 말해줄 것 같아


엄마,

내가 아무리 못나도

내가 아무리 어둡게 살아도

엄마에게는 언제나 내가

엄마의 빛나는 딸이라는 게

가끔 무겁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 마음 때문에

아직도 나의 문장이 끝나지 않은 것 같아


엄마,

언젠가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글을 적어볼게

그래서 엄마가

더없이 빛나는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역시 엄마의 눈을 틀리지 않았노라고

말할 수 있도록


그때까지 엄마

해 같이 빛나는

뚜렷한 시선으로 버텨줘

엄마의 뒤에서

엄마가 걸은 길을 따라 밟고 싶어

그렇게 나도 빛으로 살아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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